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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서른 일곱의 늦은 나이에 만난 탓에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첫째는 일곱 살이고 둘째는 23개월이다. 앞으로 한 달만 더 있으면 내 나이가 마흔 넷인데 둘째가 아직 두 돌도 지나지 않았다니,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하다. 둘째를 볼 때마다 저걸 언제 키우나 싶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건 둘째만이 아니다. 아빠 닮아 전체적으로 몸이 부실한 아들 녀석도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첫째 강민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는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사랑을 아들에게 쏟아 부었다. 아내의 아들 사랑은 흔한 말로 과잉보호라 할 만큼 유별났다. 아내는 아들에게 마음과 시간과 기타 모든 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베풀었다.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아들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나는 아빠가 될 준비가 덜 된 탓에 마음으로도 행동으로도 아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 기저귀 한 번 내손으로 갈아준 적이 없고 아들을 제대로 사랑스럽게 안아준 기억도 없다. 애는 당연히 엄마가 키우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참 한심스럽다.

 

내가 아들 강민이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때가 아마 강민이가 커가면서 아빠인 나를 닮아 체격이 왜소하고 연약해지면서부터 인 것 같다. 어릴 때는 그렇게 약한 줄 모르겠더니 조금씩 자라면서 또래에 비해 점차 체격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한 다섯 살 쯤 되었을 때는 또래에 비해 눈에 띄게 왜소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려움을 많이 겪은 지라 아들의 체격이 점차 왜소해지자 아들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때부터 아들과 나 사이에 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들과 친해져서 아들이 어린이집 갔다 오면 같이 비행기 날리기 놀이도 하고 유희왕카드 놀이도 하고 또 총싸움에 칼싸움, 때로는 귀신놀이도 한다.

 

그동안 어렸을 때 제대로 사랑해 주지도 못했는데 날 닮아 허약한 아들을 보면서 아들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아빠인 나는 나이 43세에 평상시 몸무게 43킬로그램. 아들은 일곱 살에 16킬로그램이다). 지금도 아빠 닮아 왜소한 아들을 보면 아들한테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심정이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하루 빨리 강민이가 건강해져야 할 텐데.'

 

능력 없는 아빠가 뭐 하나 제대로 해 주지도 못하고 마음만 태울 뿐이다.

 

한편 둘째 지민이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첫째 강민이는 외할머니가 키워서 편하게 자랐지만, 둘째 지민이는 첫 돌 지나고 얼마 안 되어서부터 어린이집에 맡겼던 탓에 나름대로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정성으로 보살펴 주지만 지민이 하나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할머니 손에서 큰 아들 강민이 보다는 고생이 많았으리라.


남의 손에서 커서 그런지 지민이는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다. 처세술에 아주 능하다. 필요할 때면 낯선 상대방에게 거침없이 안겨서 아양을 떤다. 엄마가 없을 때면 아빠한테 안기면서 얼굴을 비벼댄다. 아빠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빠에게 안기고 매달린다.

 

그러다가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완전히 외면해 버린다. 아빠하고 언제 놀았느냐는 듯이 아빠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엄마 품에 매달려 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없을 때는 누군가 자기를 오라고하면 금방 달려가 품에 안기면서도 엄마가 있는 상황이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오라고 해도 좀체로 가지 않는다. 어쩌다가 기분 좋을 때 빼고는.

 

이런 지민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왜 내 딸 지민이는 이렇게 영악할까? 타고난 성격이 이럴까? 아니면 주어진 현실에서 살아가려다 보니 스스로 이런 영악한 처세술을 익히게 되었을까?

 

두 돌이 안 된 어린 나이에 때때로 낯선 사람들에게 무작정 안기기도 하고 아양도 떠는 영악한 지민이. 지민이를 이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무능한 아빠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딸 지민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때로는 ‘지민이의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지민이가 남의 손에 크면서 고생하는데 대한 미안한 마음은 여전히 어찌할 수가 없다.


저녁이면 아들 녀석과 딸이 나란히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딸 지민이는 아들 녀석에 비해 체격이 튼실하다. 밥도 잘 먹는다.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누가 먹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숟가락질을 해 가며 밥을 떠먹는다. 먹는 양도 일곱 살 된 오빠의 밥 양과 비슷하다. 지민이가 스스로 밥을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엄마 품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저렇게 스스로 하게 되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면 또 한 번 마음이 아파온다.


오늘은 주말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오름엘 갔었다. 도토리를 주워올 생각이었는데 이미 12월에 접어든 늦은 때라 산에는 도토리가 별로 없었다. 작년 가을에는 꽤 주워왔었는데 오늘은 경우 썩은 도토리 몇 개 건졌을 뿐이다.

 

하지만 도토리를 많이 줍지 못해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즐거워한다. 썩은 도토리를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 녀석은 도토리 책을 꺼내들고 내게로 와서는 책하고 맞춰보자고 한다. 딸 지민이도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손에 있는 도토리와 책을 번갈아 살펴보던 아들 녀석이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아빠, 이거 졸참나무 도토리야."

"그래? 우리 강민이 똑똑하네. 도토리도 구별할 줄 알고."

 

어느 한 군데 흠잡을 데 없이 잘 생기고 똑똑한 아이들을 보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들 녀석이 아빠를 닮아 체격은 왜소하지만 얼굴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꽃미남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자 다짐해 보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금방 다짐을 하고서도 돌아서는 순간 내 머릿속은 세상걱정, 살아갈 걱정으로 가득해진다. 내 머릿속에도, 내 마음속에도 아이들이 들어올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참 나쁜 아빠이다. 능력이 없어서 해 주는 것도 없는 아빠가 마음도 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나쁜 아빠를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강민아, 지민아,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태그:#미안함,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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