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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자동차를 위한 차도였지만 지금은 서울 관광객을 위한 명소로 바뀌었다. 근처 목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외국 간판이 들어서 있고 과거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그 시대 그 분위기들을 다시 느낄 수는 없는 걸까? 손님들을 따뜻한 석유난로로 안내하며 고소한 커피를 내주던 그 시대의 다방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세운교를 건너면 펼쳐지는 70년대 그 풍경

청계천 세운교를 건너 세운상가 근처 골목을 누비다 보면 여기가 21세기의 청계천인가 아니면 너도나도 열심히 일하던 70년대인가 구분하기 힘든 곳이 있다. 군밤 파시는 할머니 마저도 과거의 한 시점처럼 느껴진다. 불을 피운 큰 드럼통 주위에 아저씨들 여럿이 모여 불을 쬐고 있고 그 옆을 지나며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잠시 발길이 멈춰진다.

이 곳 공장들은 전기, 전자제품의 부속품을 만드는 철강, 선반 공장이다. '드르륵, 끼익…' 소리나는 나무 미닫이문에 기와지붕 가게와 공장들이 많다. 뿌연 유리창 안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 보면 낡은 기계가 보이고 그 안에서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청계천 거리는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구석엔 아직도 과거의 풍경이 남아있다.
▲ 청계천 골목 풍경 청계천 거리는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구석엔 아직도 과거의 풍경이 남아있다.
ⓒ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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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는 옛날 다방 역시 예전 분위기 그대로이다. 다방 카운터에는 테이블 번호에 따라 가격을 표시해 놓은 색색의 딱지들이 있다. 수시로 주문하는 손님들 덕분에 카운터에는 주인이 꼭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출에 신경 쓰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마음인가보다.

과거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은 다방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스레인지 위 큰 주전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고 그 옆에 전골냄비 같이 생긴 기구에서는 커피잔이 소독되고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세 분이 따뜻한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손님이 오면 주인장은 석유난로 근처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참 오랜만에 맡아본 석유난로 향이 과거를 생각나게 해주었다. 청계천 밖은 2008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청계천 안은 과거 그대로였다.

주방의 모습과 카운터에 있는 손님 주문을 기록하는 도구.
▲ 다방의 오래된 풍경들 주방의 모습과 카운터에 있는 손님 주문을 기록하는 도구.
ⓒ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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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옛 것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그들만의 고충이 있었다. 이 곳 다방에 들를 때 마다 느낀 것은 종업원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한두 명 정도 이다. 그만큼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접실 다방 사장님은 "청계천 공사 전에는 종업원이 3~4명 있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 운영하고 있다. 이 근처 공장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장 안에도 근로자 수가 적었다. 한두 명의 사람만이 작업을 하고 있을 뿐 이었다. 이 지역 경제가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영다방 사장은 "사람들도 가게를 팔지 못해 여기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나도 가진 게 이 가게 전부니까 버리고 갈 수 없지 않느냐"며 청계천 개발 이전을 아쉬워 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우리나라 '다방커피'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데도 다방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서는 맛보기 힘든 '다방커피' 때문이 아닐까? 

다방커피 비법은 커피 프림 비율이 아니라 '순서'

다방커피를 시키면 첫번째는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두번째 고소한 향에 또 놀란다. 참기름을 넣은 걸까? 커피콩을 갈아 압축해서 나온 에스프레소도 아닌데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쓰는 다방에서 고소함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가끔씩 커피를 타서 마시지만 그때마다 그저 가벼운 맛일 뿐이었다. 다방커피라고 하면 설탕, 프림, 커피가루의 비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면 하와이에 놀러 온 팽귄이 되는 꼴이다. 다방을 운영하는 사장님께서 직접 알려주는 비법을 듣기 전에는 말이다.

"비율이라면 커피는 2, 프림은 3, 설탕은 2.5 라고 할 수 있지요. 아니 설탕은 입맛에 맞게? 하하..."

아니 이렇게 전문가답지 않은 대답이라니. 약간 실망스러웠다. 사장님은 커피를 다시 만들어 보여주셨다. 그 시연에 나의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비율은 단지 개인의 입맛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순서였다. 우선 커피잔에 프림을 먼저 2~3스푼 넣는다. 그리고 커피가루를 2스푼 넣고 계속 데우고 있던 주전자의 따뜻한 물을 커피잔에 반정도 부었다. 이 상태에서 스푼으로 젓지 말고 마지막엔 설탕으로 간을 맞춰 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피의 향은 고소했고 맛도 역시 프리미엄급 이었다.

보기에는 가정집 커피와 똑같지만 맛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 다방커피 보기에는 가정집 커피와 똑같지만 맛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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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방커피를 주변 공장 근로자들은 하루에 아침, 점심 두번씩 꼭 챙겨먹는다고 한다. 마치 마약같은 커피향과 맛에 습관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다방에는 커피 외에 전통적인 메뉴들도 많다. 두번째로 잘 팔리는 쌍화자, 걸죽한 율무차, 달큰한 대추차, 칼칼한 생강차, 요구르트도 있다.

사장님께서 직접 추천하는 겨울 메뉴로는 쌍화차, 대추차, 인삼차가 있고, 여름엔 아이스 다방커피와 마차, 요구르트이다. 이 모든 것들이 2천원에서 3천원 선으로 에스프레소 커피점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도심카페에서 어쩌다 한번 소파에 앉아 여유를 느끼지만 이 곳 다방 의자는 모두 푹신한 소파이다. 다방은 한가한 오후에 들러 따뜻한 햇살과 기운으로 낮잠을 잘지도 모르는 포근한 장소였다.

커피가 약간 모자른 감이 있어 아쉬움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면 사장님께서 커피를 더 주겠다고 하신다. 리필을 요청해도 반갑게 한잔을 더 주신다. 언제나 리필 가능한 것도 이 곳의 매력이다.

커피 외에도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할 메뉴가 다양하다.
▲ 대추차와 율무차 커피 외에도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할 메뉴가 다양하다.
ⓒ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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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과거모습. 한 사람이라도 더 이 곳을 느껴보기를

중국산에 밀리는 made in Korea. 이 아름다운 청계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겉은 화려했지만 청계천 구석은 외로웠다. 이제 이 지역도 재개발 붐이 일어 곧 없어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만약 없어진다면 이 곳의 공장, 사람들, 오래된 골목, 다방까지도 모두 이동하거나 없어질 것이다.

몇 년 후 이 자리에는 반대편과 같이 외국어 간판을 앞세우고 고소한 다방커피가 에스프레소 커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커피믹스의 선두주자 다방커피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이제 공장에서 나오는 커피믹스로만 그 느낌을 이어 받아야 하는 걸까. 그러기에는 다방커피의 가치가 높다. 이 장소들이 서서히 없어지기 전에 언제 만나볼지 모르는 다방커피를 만나러 가보자.

서울의 상징이 된 청계천에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겉과 다른, 과거의 속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를 보존하자고 말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그 문화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이 곳에서 내일이란 것은 사치스러운 명사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라져 가기 전에 한번쯤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태그:#청계천 골목, #청계천 다방, #다방 , #다방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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