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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사형제도폐지 선포식에 앞서, 행사장 앞에는 한국앰네스티 지부가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난 10월 10일 사형제도폐지 선포식에 앞서, 행사장 앞에는 한국앰네스티 지부가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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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보통의 백성은 어깨에 올려져있던 짐을 내려놓고 지난 한 해를 정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리를 하려 해도 백성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형제도입니다. 하여 지금 이 순간 몹시 무겁고 답답한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불과 일주일 전, 작지만 힘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온갖 역경을 딛고 비로소 한 나라의 제왕이 되신 겁니다. 지금쯤 그 기쁨이 하늘에까지 닿았으리라 믿습니다.

비록 대한민국 인구의 1/3 정도가 당선자에게 표를 찍었다지만, 당신의 신분은 대통령 당선자입니다. 그로 인해 주어지는 권력은 또 얼마나 많고, 그 힘 또한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선 동네 반장도 해 본 일이 없는 백성으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많은 권한 중에서 가장 고귀한 권력이 있다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 있는 일일 겁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면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들은 하루 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합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권력입니다. 백성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력 중에서 가장 무서운 '힘'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절대권력이기도 합니다. 법으로 보장받는 일이기에 대통령이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비인간적이라며 따질 명분도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는 64명입니다. 64명의 사형수는 한 해에 생겨난 사형수가 아니라 자그마치 지난 10년 동안 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은 사형수 중 감형이 되지 않은 이들의 전부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형 집행은 김영삼 정부 임기 마지막 시기인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적으로 단행된 후 지난 10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소시민인 백성이 보기에 그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께서 직무를 유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엔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지난 10년 동안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것은 죽임으로서 범죄에 대한 인간의 복수를 내리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더 중하게 여긴 까닭이라 생각됩니다.

인혁당 사형수들이 숨져간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앞에 추모객들이 '진상규명, 명예회복, 민주투쟁' 이 적힌 종이를 국화꽃과 함께 꽂아두었다.
 인혁당 사형수들이 숨져간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앞에 추모객들이 '진상규명, 명예회복, 민주투쟁' 이 적힌 종이를 국화꽃과 함께 꽂아두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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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상대를 죽여야 살아남는 전쟁터가 그러했고, 절대권력자의 '못된 권력' 하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무고한 백성을 무참하게 학살한 광주항쟁에서도,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자인 유영철 등도 그런 범주에 속합니다.

진보당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조봉암 선생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사형을 언도 받은 '최악의 판결'로 기억됩니다. 더불어 인혁당 사건은 사형 언도 18시간만에 형이 집행된 사건으로 '사법 살인'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인혁당 사건의 경우 올 초 재심 끝에 무죄로 결론 났으니 이를 어째야 한단 말입니까. 비록 법적으로는 무죄로 판결났지만 그 무죄가 죽은 이들까지 살려내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의 대통령이 망령이 들었던 걸까요. 아니면 사형제도를 즐겼던 것일까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대통령의 지위가 이렇듯 장난놀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에선 자신에게 대든다고 사형을 내리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런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때엔 권력이라는 것이 지엄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론 무서운 척 했지만 속으론 '죽일 놈'하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곧 2008년입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국민 중에는 지게꾼도 있고, 무슨 짓을 해서건 돈을 벌어야 겠다며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이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는 이도 있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탕진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 곁엔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도 있습니다.

현재 자리하고 있는 입장과 장소만 다를 뿐 그들은 다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적어도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으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인의 목숨을 벌할 순 없습니다

이렇듯 장황하게 사형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당선자께서 선거를 치르면서 한 공약에 있습니다. 당선자께서는 많은 대선 후보 중에서도 유일하게 사형제를 찬성한 후보였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백성은 당선자께서 왜 사형제에 찬성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보통의 백성들은 아직도 사형제에 관해 찬반이 엇갈립니다. 진지한 토론도 있지만 대개는 막연한 찬반에 머무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통령처럼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지 않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릅니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은 이의 공약은 보통의 백성들이 술자리에 남기는 말과 달리 사형수를 진짜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보통의 백성은 당선자의 말이 두렵습니다. 사람을 살리기보다 죽이고자 말했기 때문입니다.

선거 기간 중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사형제도의 존치를 주장했습니다. 사형을 언도 받고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64명의 사형수들에겐 당선자가 어쩌면 염라대왕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선자의 눈빛만 봐도 간담이 서늘해질지 모릅니다.

예수께서도 간음한 한 여인을 두고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쳐라"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말에 돌팔매 질을 하던 이들 모두가 슬그머니 꽁지를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인 세상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세상입니다. 

당선자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죄인이 조금 더 큰 죄를 진 죄인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대통령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책임이라도 우리 모두가 죄인인 점을 감안하면, 죄인이 같은 죄인을 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형 10년 미집행국인 대한민국, 당선자께서는 대통령 당선 소감으로 '화해와 포용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말했습니다. 부디 국민과 한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당선자께서 선거기간 중 말한 사형제 찬성, 그 말에 죽음을 기다리는 64명의 어린 양들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개 자욱한 아침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사형수들의 마음도 안개속입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이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이젠 당선자께서 말한 대로 '화해와 포용'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자만이 세상을 품을 수 있으며, 자신의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2007년 말, 예수께서 말합니다.

"누구든 죄 없는 자 있다면 사형제를 찬성하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합니다.


태그:#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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