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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청학동 겨울나기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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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게 언 얼음 밑으로 물이 흐른다. 고드름에 겨울 햇살이 쏟아진다. 아이의 하얀 속살처럼 매끈하고 하얀 얼음에서는 빛나는 가시광선이 나와 눈을 부시게 한다. 깊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싱그럽다. 보는 것으로도 목마름이 시원하게 풀린다. 아직도 먼 봄이 성큼 계곡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장난기가 많은 민주는 얼음 한 덩이를 떼어 들었지만 차가워 손이 시렸는지, 얼음덩이를 금방 내려놓는다.

지리산 자락 깊은 곳 "청학동"
▲ 청학동 지리산 자락 깊은 곳 "청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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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아래로 흐르는 물
 골짜기 아래로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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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6일) 지리산 청학동을 찾았다. 산골짜기에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두툼한 잠바를 입은 아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방학을 맞은 개구쟁들에게 방학은 더 이상 휴식의 시간이 아닌 분주한 계절이다. 언제부터 알려졌는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아이들은 엄한 훈장선생님 앞에서 인성과 예절을 배우느라 땀흘린다.

서당 옆 응달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서당 정심시간. 신발장에는 아이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층층이 쌓여 있고 훈장 선생님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서당 주변을 청소한다.

가을수확을 하지 않은 감나무에 감은 이미 홍시가 된지 오래. 불그스레한 빛깔을 잃어 약간 검은색으로 변하여가고 있다. 까치밥으로 남겨두기는 너무 많은 홍시. 까치집의 평화를 배려한 감나무 주인의 후한 인심의 배려인 듯하다. 조금 만 더 있으면 자연스럽게 곶감이 될 것 같다.

오르막길을 올라 모퉁이 돌아서자 산기슭에서 학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지리산 자락에 숨어있는 청학동은 잎을 다 떨어뜨린 나목의 숲속에 있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닐던 지상선경(地上仙境)이라고 하여 중국의 무릉도원처럼 천하 명승지라고 일컫는 곳이라고 한다.

‘청학하처재(靑鶴何處在)’ ‘청학은 그 어디에 있을까’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돌탑이 보인다. 천하태평을 꿈꾸어온 사람들이 찾고 있는 이상향인 모양이다. 청학동은 옛 사람들이 사는 집보다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과 토속상품을 파는 가게가 더 많이 들어선 곳이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옛 전설이 숨어 살아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모친은 이 곳에 산지가 몇 년이나 되었소.”
“47년.”

올해 나이을 묻자 할머니는 모른다고 답한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다. 곱게 늙으신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넘어가는 짧은 햇볕을 쬐고 있다. 산골의 겨울 해는 빨리 진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방인들의 방문에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90평생을 이 골짜기에 의지하면서 살아온 할머니는 나이도 잃은 채 살고 있다. 

산죽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 흙벽에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 초가집 산죽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 흙벽에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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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장독이 정겹게 보입니다.
▲ 장독 크고 작은 장독이 정겹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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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키 작은 대무인 산죽을 엮어 이은 초가집 사이 돌담길을 돌아가면서 흙으로 쌓은 벽과 초가의 옛 정취에 점점 빠져 든다. 아마도 이 들도 청학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 위해서 오는 사람일 것이다.

초가집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은 따뜻한 날을 이용하여 겨울 땔감용으로 마른 장작을 더 보충하느라 바쁘다. 한 번씩 눈이 많이 오면 길이 막힌다고 한다. 지난 가을,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땔감을 가득 쌓아 놨는데도, 열심히 나무를 하는 이유는 더 혹독한 고난의 시간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잠시 따뜻한 날씨을 이용하여 땔감준비를 하고 있다.
▲ 겨울 땔감 잠시 따뜻한 날씨을 이용하여 땔감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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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땔감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참나무를 아궁이에 들어가기 좋은 만큼의 크기로 자르기 위해 연신 톱질을 한다. 방을 따뜻하게 하는 땔감용으론 불살이 좋은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제일 좋다고 한다.

한문을 배우고 싶어 이 곳에 잠시 머문 지도 2년. 이제는 길을 떠나야 하는데 초심으로 발을 디뎠던 곳. 배우고 싶었던 한문은 여전히 초보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단다.  

900고지에 가까운 청학동. 여름철은 시원하고 가을단풍은 더 없이 고와서 좋다고 한다. 이른 봄에 나오는 고로쇠 약수는 우리 몸에 좋은 음료라고 한다. 도인 촌에서 아직도 선인들의 옷차림으로 생활하신 청강 김덕존(81) 선생님을 만났다.   

이 곳 도인촌(道人村)은 보발정신(保髮精神) 및 의관정제(衣冠整齊)의 예법과 유불선 동서학 합일(儒佛仙 東西學 合一)사상을 이어 받아 만방일화 수성단가(萬邦一和 遂成單家)를 구현하려는 사명을 안고 수도정진 하는 곳이란다.

선생님은 이 곳이 옛 선인들은 꿈에도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던 곳이라고 한다. 나무도 뿌리가 있어야 번성 하듯이 한때 선인들이 수도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뿌리를 지켜야겠다고 모여든 곳이기도 하단다.

북은 함양이고 남은 하동, 동으로 진주란다. 영신봉 줄기 따라 아래쪽 내려오면 청학동이다. 둘레가 사십리 상대 중대 하대로 나누어 상대에 위치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란다. 십리 위쪽 영신봉에 올라 지리산 자락을 빙 둘러 다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이 청학동을 빙 둘러 싸고 있어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군신지상의 형세’라고 한다. 마을이 생긴지 300여년이 되었지만 천하제일의 명승지인 이 곳도 6.25전쟁의 아픔을 피해 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한때 수도를 위해 찾아 들었던 스님들이 다 떠날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마을이 생긴 이래 13여년을 주인 없는 곳으로 비워야 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선생님은 이제는 밝은 기운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단다. 평소 생활 할 때 검은 옷은 기운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밝은 옷이 좋은 기운을 받기가 좋다고 한다. 검은 꽃이 없듯이 생기 넘치는 봄기운을 닮은 밝은 옷을 입으라고 권한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태그:#지리산, #청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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