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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을 만나면 어김없이 던지는 질문들이 있다고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한국의 무엇이 좋아서 왔나요?", "한국과 당신네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김치나 비빔밥 맛있죠?", "한국인들은 친절한 것 같아요?", "배우자감으로 한국인은 어때요?"

 

여기에 그 외국인의 나이와 결혼 여부, 연봉에 대한 질문까지 포함시키면 좀 말이 통한다 싶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받게 될 질문 목록이 완성된다. 얼마 전 한 외국인을 만났는데 과장해서 말하면 그는 한국인들이 묻는 질문의 순서까지 맞출 자신이 있다고 했다.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주고받을 수 있는 수많은 대화와 질문이 있는데 왜 한국인들은 엇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당장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수출입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나라이고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지금도 이런저런 분야에서 동북아 허브를 꿈꾸는 열린 나라이지 않은가?

 

한국인 박노자는 왜 한국사랑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표현을 하자면, 피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 박노자 역시 한국인을 만날 때면 반드시 들어야 했던 질문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어떻게 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됐느냐? 정말 한국을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다.

 

왜 박노자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임을, 그리고 한국 사랑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마음에 드는 '한국'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한국'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는 영원히 귀화인일 뿐 한국인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박노자 현상'은 우리 사회에 너무 소중한 경험이다. 그의 뛰어난 학문적 성취나 언어 실력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머리색이 노란 한국인, 피부색이 검은 한국인, 한국어보다 아랍어에 더 유창한 한국인, 인도양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한국인과 함께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만 인종적인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때 러시아인으로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했고,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있는 한국인 박노자가 한국어로 풀어놓는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문화'의 일부를 형성해가고 있다. '검은머리의 한국인이 한반도 남쪽에서 한국어로 습득한 경험만이 한국적'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박노자, 그의 앞길에 놓인 수많은 과제들...

 

나는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읽으며 그의 앞길에 놓인 수많은 과제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경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보편주의자이면서도, 특히 한국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귀화인'이라는 타이틀을 쉽게 벗어버릴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한국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노르웨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박노자.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노르웨이가 영원한 고향일 수는 없다. 지금도 그는 한국의 산야를 그리워하며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진짜(?) 한국인이 되기 위해선 자식들 교육열의 열기에 휩쓸려야 하고, 그 어느 패거리와 서열 사회에서 들어가야 하며 결국 하고 싶은 말과 지키고 싶은 소신을 접어야 한다. 그는 러시아에서도, 노르웨이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시원찮은 돈벌이 때문에 새벽까지 차를 모는 택시기사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보면서 지배욕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권력자를 싫어하는 박노자, 관악산의 연주암에서 내려다보이는 청구의 신록을 사랑하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찢고 있는 철책을 싫어하는 박노자. 그의 문제는 바로 지금 한국의 문제이자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박노자는 한국의 미래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결국 부딪치고 풀어야 숙제들을 박노자는 지금, 그리고 조금 빨리 앓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미래를 긍정한다면 우리가 언젠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박노자는 바로 한국의 미래다. 또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언젠가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한 개인의 은밀한 속살이다.

덧붙이는 글 | 홍석봉 기자는 <박노자의 만감일기> 편집자입니다.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인물과사상사(2008)


태그:#박노자, #만감일기,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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