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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책 표지
 박노자의 만감일기 책 표지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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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가 그동안 블로그에 쓴 수필을 모아 펴낸 <만감일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으면서도, 극단적인 면면도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자유와 인권 신장이라는 커다란 주제에 대해 대중은 동의하면서 세간의 인식이 신장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90년대 한국 사회가 동성애를 바라봤던 시각과, 2014년의 시각을 비교해보면 풀어야 할 숙제는 많으나 진전은 됐다고 평할 수 있다.

그것은 강압을 혐오하고 인권을 주창하는 박노자와 자유와 인권 진보에 눈을 뜨는 대중의 절대적 연결고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박노자의 물음에 '극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극단이 아닌 넓은 안목으로 가야

"오늘날의 한국인이 한국 건설업체가 미 점령군 총독부로부터 수주를 잘 받게 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자이툰 부대에 지원해 사지에 몸을 내던지는 게 과연 합리적이고 올바른 일인가?" (본문 中)

이라크가 커다란 위험이 상존하는 나라임에 분명하나 지금의 자이툰 부대가 말 그대로 사지로 내몰리는 형국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파병이 불편한 것일 수 있어도, 파병 결정 이후의 상황을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나갔는가도 연장선상에서 같이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이툰 부대는 전투 목적이 아닌 공병 지원에 주안을 두는 부대일뿐더러 파병 지역이 장병을 사지로 몰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살펴본다면 이러한 결과물은 파병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 속에 정부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들이 아닌가 한다. 양 상황을 살피고 그 가운데 대중과 소통의 가능성을 높일, 좀 더 세련된 비판을 가하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있다.

다른 극단은 대안 제시를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군집의 일반화를 한다는 점이다.

"대형 교회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성령'을 받아 미쳐보는 것이, 마약복용이나 알코올 중독, 인터넷상에서 유명 연예인 팬클럽활동에 빠지는 일 등 또 다른 종류의 '자기 물화'보다 낫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맞다." (본문 中)

이러한 박노자의 주장은 교회가 철저히 신앙에 입각하지 못하고, 사학법 찬성 등에 나서는 것에 대한 신랄한 비판 위에 논의된 것이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교회가 박노자가 주장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될 것인지, 그리고 '대형'이라는 범주 속에 모든 것을 일반화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풀 고리는 찾아볼 수 없다.

대안이 없는 극단의 폐해를 우려한다

대안 제시 없는 '극단'은 그 맥락에 동의하는 사람의 분노는 부추길 수 있어도 사회 진전의 해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또 범주 안에 모든 것을 간단하게 일반화시키는 것도 주장의 반감만 높일 수 있는 구사 방법이다. 사학법에 찬성한 교회 중 대형 교회는 몇이나 되는가? 교회가 대형화되면 물신 주의에 빠진 것으로 즉결 해석이 가능한가? 규모로 일반화된다면 그 범주에 들지 않기 위해 쪼개져야 하는가?

사회 현상에 통렬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그 사회 구성원이 긍정의 방향으로 자극을 받는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 제시 없는 비판의 열거는 자극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고, 긍정의 방향보다는 갈팡질팡하게 하는 길을 안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맹렬하고 자극적인 언사 속에 일반화로 재단해버리는 것은 무의미한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자극적 표현은 주목도를 극대화할 수단이지만, 그 표현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과제를 안겨줄 수 있다.

박노자는 귀화인이라는 내지의 시선으로, 혹은 소련 출신인 타지의 시선으로, 두 시선을 오가며 통렬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에는 자율과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향한 힘찬 울림이 담겨있다. 그러한 울림이 한국 사회로 하여금 성찰과 뒤돌아볼 거리들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변혁을 이끌기 위해서는 대중과의 호흡과, 수긍하는 열기가 퍼져나갈 수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 공감의 확산을 위해선 그래야 한다.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인물과사상사(2008)


태그:#박노자, #대안, #극단, #자이툰부대,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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