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가 2월 22일 8주년을 맞이합니다. 8살배기가 된 <오마이뉴스>는 올해 여러가지 연중기획 가운데 하나인 '백인보-희망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백인보-희만사'는 작지만 소중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 의미있는 도전과 실험을 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땀방울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백인보-희만사'의 첫번째 주인공은 '변산공동체'와 교수에서 농부로 변신한 윤구병 선생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16일 오전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에서 돌 나르기 작업중인 구자민 인턴기자.
 16일 오전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에서 돌 나르기 작업중인 구자민 인턴기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으음…, 벌써 이틀째 아침인가?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으니, 해가 뜨면 아침이고, 지면 저녁이다. 배고프면 밥 때고 출출하면 새참 때다.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고 앉아 있으니 돌이 떠오른다. 억세고 무거우며 크기는 딱 농구공만 한 돌 말이다. 트럭도 덩달아 생각난다. 나는 오늘도 농구공 혹은 수박만한 돌을 주워 트럭에 실을 것이다. 1.5t 용달차 짐칸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2월 17일 오전 7시'. 핸드폰 배터리는 마지막 한 칸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액정에 비친 내 얼굴은 퉁퉁 부어 있다. 양쪽 코는 꽉 막혔다. 머리는 벌써 까치집이 돼 있었다. 동료인 김혜민 인턴기자에게 물었다. 

"내 머리 어때? 안 감아도 되겠어?"
"응, 괜찮은 것 같아."
"(손가락으로 내 머릴 가리키며) 그래, 이 곳 사람들도 머리가 꼭 이렇더라."

"이틀째 돌 나르기... 취재는 언제 하지?"

어떻게 입어야 조금이라도 덜 추울까…, 주섬주섬 챙겨 입고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잡곡밥에 김치찌개가 나왔네.' 따뜻한 국물에 밥 한 그릇을 후루룩 말아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굳었던 내 몸도 스르르 풀리는 듯 했다.

선배기자와 함께 길을 나섰다. 트럭이 대기 중인 일터로 가기 위해선 약 200m를 걸어야 한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돌을 날라야 할까?' 발걸음이 무겁다. 걷는 동안 선배와 돌에 관해 이야기했다. 더러 웃음이 나왔다. 이틀 동안 주야장천 돌이라니….

돌을 나르는 인턴기자의 모습.
 돌을 나르는 인턴기자의 모습.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그나저나 오늘은 아침부터 걱정이 앞선다. 어젯밤 작업회의에서 연상(18)이가 "손님 분들 오늘은 (트럭) 여섯 차 옮기셨으니, 음… 내일은 여덟 차 가능하시죠?"라며 은근히 압박했기 때문이다.

돌 나르는 일도 힘들었지만 그만큼 취재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돌만 나르다 보니 공동체식구들과 이야기 나눌 틈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작업 현장은 사람들과 외떨어져 있는 냇가와 과수원이라서 이런 걱정은 더욱 컸다. 돌은 열심히 날랐지만 '기사'는 어떻게 하나.

어설픈 내 질문에 새참 시간은 어색해지고...

1.5t 트럭이 또다시 뭉툭한 돌들로 가득 찼다. 추운날씨였지만 오히려 덥게 느껴졌다. 옷을 무진장 껴입었기 때문이다. 돌을 가득 실은 트럭이 이동하는 동안 나는 짐칸에 탔다.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 좋다. 이런 느낌,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생각도 잘 안 났다. 눈을 지그시 감아보니, 바람이 뺨을 간질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느낌도 잠시, 트럭은 덜덜 거리며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살짝 한 쪽 눈을 뜨니 돌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틀간 우리가 모은 돌이다. 참 많이도 모았다.
 이틀간 우리가 모은 돌이다. 참 많이도 모았다.
ⓒ 구자민

관련사진보기


또 한 차를 비우니 아주머니들이 와서 새참 먹으라고 소리쳤다. 옳거니, 새참시간이 되면 사진기도 꺼내고 식구들끼리 하는 말들을 귀담아 들으려고 했다. 언제든지 수첩도 꺼낼 준비가 돼 있었다.

식구들은 기자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신 듯 보였지만, 이야기들 속에서 기삿거리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간혹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바보 같은 내 질문에 분위기는 더 어색해졌다.

"고구마가 참 맛있네요. 어떻게 해야 이렇게 달 수 있죠?"
"뭘 어떻게 해요. 유기농이니까 그런 거죠."

'갈수록 걱정이네….'

즐거운 '참' 시간, 유기농 고구마가 나왔다.
 즐거운 '참' 시간, 유기농 고구마가 나왔다.
ⓒ 구자민

관련사진보기


새참을 먹고 밖을 보니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동시에 기막힌 말이 떠올랐다. "우린 주말에도 안 쉬어. 비오는 날만 쉬지. 눈도 많이 오면 쉬어야 되고."

함께 돌 나르던 김씨 아저씨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조금 기대해 보기로 했다. '눈아 제발 더 많이 와라, 펄펄~' 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눈이 더 와서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던 건 지나친 기대였다. 눈은 이내 그쳤고, 햇빛마저 쨍 나기 시작했다. 눈부신 하늘을 보고 "허허" 웃었다. 새참을 먹고 나서는 통나무를 날랐다. 김희정 아저씨가 잠시 대패질에 가담하는 동안, 돌 나르는 작업이 멈춰진 것이다. 통나무도 무거웠다. 그래도 돌보다는 나았다.

통나무를 나르는 일은 '돌'나르는 일보다 더 재미있었다.
 통나무를 나르는 일은 '돌'나르는 일보다 더 재미있었다.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기다리던 점심시간. 조미료 없는 밍밍한 잔치국수를 점심으로 먹고는 2시 30분까지 쉴 수 있었다. 박상규 선배와 김혜민 인턴기자는 식사 후 곧바로 낮잠을 청하는 듯 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되지도 않는 무선 인터넷을 해보려 20여분을 애썼지만 끝내 실패했다. 시계는 오후 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누워있어야 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일어나!" 박상규 선배가 날 깨웠다. 시계는 2시 30분이었다. 김혜민 인턴기자는 양치질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날 깨우던 선배는 김 기자가 양치질을 하러 가자마자, 바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정말 힘들어 죽겄네. 미칠 것 같아!"

나는 듣고야 말았다. 선배 박상규 기자가 한 말은 또렷하고 분명했다. 그토록 우리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던 선배가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난 자는 척 하면서도 귀로는 다 듣고 있었다. 속으로 배시시 웃었다. '역시 선배도 사람이구나.'

'몸 취재'가 '머리 취재'보다 나은 이유

톱을 든 인턴기자 - "처음으로 해본 전기톱질은 세번째 했을때 가장 잘 됐다."
 톱을 든 인턴기자 - "처음으로 해본 전기톱질은 세번째 했을때 가장 잘 됐다."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그나저나 취재가 정말이지 큰일이다. 변산공동체에 오기 전, 선배기자들에게 이번 취재는 '몸 취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체험을 통해 공동체를 겪어보자는 것이었다. 허나 2박 3일 동안 돌만 날라서는 아무리 체험이라고 해도 기사가 나올 리 만무했다.

걱정에 사로잡혀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뒷짐 진 손엔 빨간 고무가 발린 작업용 장갑이 끼여져 있었고, 발은 능숙하게 작업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어디에 가면 누구의 집이 있는지 금방 알게 됐다.

웬일일까? 주머니엔 핸드폰도 사진기도 수첩도 없었다. 오로지 일 하기 편한 복장이었다. 

17일 오후에는 변산공동체 최고의 목수인 일명 '염소아저씨'가 톱질을 가르쳐 줬다. 처음해본 전기 톱질이 서툴러 애꿎은 나무만 망쳐버렸다. 말없이 두 번째 톱질을 했는데 처음보다는 나았다. 염소 아저씨가 웃으며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줬다. 덩달아 나도 웃었다.

세 번째는 긴장하지 않고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나무를 자르는 데 성공했다. 즐거웠다. 함께 땀 흘리며 교감을 나누는 데에는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내 입가에도 변산공동체 식구들과 비슷한 웃음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기사를 쓰려면 수첩에 뭔가 많이 적어야 한다고 조급증을 냈던 것은 어쩌면 좁은 생각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17일) 저녁, 나는 하루 노동을 마치고 영재(28)씨와 규현(19)이가 사는 '메주 방'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궁이 앞에 오도카니 앉아 불을 지피니 마음이 편안했다. 나무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그 순간 몸의 피곤도 취재의 걱정도 사라진 듯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했던 나의 '몸 취재'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를 괴롭혔던 건 '노동'이 아니라, '머리취재'에 대한 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안에서는 즐거운 대화가 오고간다.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안에서는 즐거운 대화가 오고간다.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17일 밤 10시 30분. 우리 일행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 시각, 변산공동체 식구들은 윤구병 선생의 집에 모여 비디오 한 편을 감상하고 있었다. 끝나면 영화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떠나는 날 밤하늘은 도착했던 날처럼 별들로 반짝였다. 그리고 윤구병 선생의 집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난 2박 3일. 충분히 힘들었고, 또 괴로웠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윤구병 선생의 집을 보며 속으로 "다시 올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구자민 기자는 <오마이 뉴스> 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변산공동체, #백인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