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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전교생 19명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분교는 뒤로는 지리산이 옆으로는 피아골 계곡이 흐른다.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분교 전교생 19명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분교는 뒤로는 지리산이 옆으로는 피아골 계곡이 흐른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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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 연곡초교 구례군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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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이 오고 있다. 여덟살인 경옥이도 올 봄에 새 출발을 한다. 오는 3월 3일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하지만 그는 도회지의 여느 초등학생 입학생들과는 다르다. 짝꿍이 없다. 같은 학년 친구들이 없다. 경옥이는 그가 다닐 학교의 '나홀로 입학생'이다. 경옥이처럼 3월초에 짝꿍없이 혼자 입학하는 초등학교 1학년생은 전국적으로 130여명에 이른다.

경옥이의 학교는 지리산 피아골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학교 옆으로 피아골의 계곡물이 거침없이 섬긴강으로 흘러간다. 뒤에서는 지리산 반야봉과 토끼봉이 병풍처럼 학교를 품고 있다.

전남 구례읍에서 하동방면으로 국도를 달리다보면 외곡리(구례군 토지면)가 나오는데, 이 곳에서 지리산 피아골 매표소 방면으로 꺾어 산길을 타고 10여분 들어가면 이 작은 학교가 나온다. 경옥이가 입학할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의 고민

피아골로 향하는 등산객이 이 학교에 들른다면 분명 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 터와 풍경으로만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라는 이름을 붙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학교엔 한 가지 큰 걱정이 있다. 학생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연곡분교의 올해 전교생은 14명. 한 때 400여명에 달했던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어 이젠 폐교를 걱정해야할 정도다.

연곡분교를 찾았을 때, 경옥이의 예비담임 김현숙 선생님이 개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 선생님은 "올해 입학생은 경옥이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떠난 피아골 인근의 농민들. 젊은 부부들은 씨가 말라가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가는 농촌의 풍경을 '나홀로 입학생' 경옥이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경옥이마저 없었다면 연곡분교의 봄은 쓸쓸했을 것이다. 올해 연곡분교의 1학년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1학년 담임도 없고, 2학년에게는 후배도 없어진다. 경옥이는 연곡분교의 '마지막 잎새'다.

올해 연곡분교 유일한 신입생 경옥(오른쪽)이와 동생 경미(가운데) 그리고 할머니
▲ 할머니와 함께 올해 연곡분교 유일한 신입생 경옥(오른쪽)이와 동생 경미(가운데) 그리고 할머니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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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옥이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니 선생님은 경옥이가 사는 마을을 일러준다. 경옥이는 학교에서 피아골 계곡 도로를 따라 차로 아래로 7분쯤 달리면 나오는 원기마을에 산다. 계곡을 끼고 있는 원기마을은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을 찾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집에 도착하니, 세 자매 중 둘째인 경옥이는 언니 경인, 동생 경미와 함께 놀고 있었다. 경옥이 엄마 미자비안비(36세)씨는 필리핀에서 왔다. 엄마는 근처 농공단지에 일하러 나가 없었다. 지리산 토박이인 아버지 문성호(49세)씨도 인근 순천에 일하러 나갔다.

낮에 이 세 자매를 돌보는 일은 할머니 몫이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너무 장난을 많이 친다"면서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자랑을 하신다.

"우리 경옥이가, 저 어린것이 학교를 어찌 갈지 걱정이여, 그래도 머리가 좋으니까 잘 할 것이구만."

경옥이한테 물어봤다.

- 학교 들어가니까 좋아?
"모르겠어요, 그래도 공부하니까 좋을 것 같아요."

경옥이는 또래가 없어 한 살 터울인 동생과 가장 친하다.
▲ 경옥이와 동생 경미 경옥이는 또래가 없어 한 살 터울인 동생과 가장 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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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놀던 세 자매가 밖으로 나간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놀이터로 가니 동네 친구 진희와 유림이도 나와 있다.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여기 뭣 하러 왔어요." 아이들은 이런 저런 궁금증이 돋았는지 질문이 쏟아진다.

- 너희들도 모두 연곡초교에 다니지?
"네"
- 학교 재미있어?
"네"
- 너희 3학년은 몇 명이야?
"4명이요!" "꼴찌 해도 4등이에요!"
- 그럼 경옥이는 한 명이니까 6년 내내 일등이네.
"와와…. 정말 그러네요. 경옥이 부럽다. 맨날 1등 하구."

그러던 아이들이 갑자기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근데 아저씨, 우리 학교 없어질지도 모른대요. 학생들이 적어지니까요. 우리가 처음 입학할 때도 그런 이야기 있었는데 학교 없어지면 어떻게 해요?"

폐교가 될 것이 걱정스럽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학교자랑에 침이 마른다.

"우린 지금 학교가 너무 좋아요. 우리들이 학교 언니들도, 선생님도 다 아는데 다른 학교가면 모르잖아요. 집에서도 멀고요. 그리고 우리 학교는 정말 예쁘다고요."

경옥이의 동네친구들 모두 연곡분교 학생들이다. 오른쪽부터 문경미(7살), 문경옥(8살), 김진희(10살), 김유림(9살).
▲ 동네친구들 경옥이의 동네친구들 모두 연곡분교 학생들이다. 오른쪽부터 문경미(7살), 문경옥(8살), 김진희(10살), 김유림(9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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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가 적은 시골학교는 유지 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폐교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다 보니 아이들도 벌써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에 학교가 없어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인구가 줄어드는데,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귀농을 하려는 젊은 가정도 학교가 없으면 꺼리게 된다. 시골학교는 농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아이들은 마을뒤편에 키 큰 나무로 달려갔다. 가파른 언덕길을 잘도 뛰어간다.

"아저씨 힘들죠. 우리는 매일 뛰어다녀서 괜찮아요. 아저씨 조심하세요."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학원에 다녀야 하는 도시 아이들과는 다른 생동감이 넘쳐난다. 경옥이는 훌쩍 나무 위에 올라간다.

"이 나무에 올라가서 보면요. 저 멀리 골짜기도 보이고요, 지리산도 보이고요, 다 보여요. 마을도 다 보이고요. 여름엔 정말 시원하고 좋아요."

아이는 나무에서 보고 싶은 것은 다 본다고 한다. 경옥이는 동생이 부르자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가파른 산길을 훌쩍훌쩍 잘도 뛰어 내려간다.

"짝꿍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경옥이의 꿈은 많다.

"선생님도 되고 싶어요, 어른도 되고 싶고요. 짝꿍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고향에 가보고도 싶어요."

경옥이는 엄마의 고향을 필리핀의 어느 섬마을이라고만 알고 있다. 그곳에 엄마와 함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어려운 산골 살림으로는 비행기값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엄마가 사는 필리핀은 매일 따뜻하다는데 경옥이는 그 말이 잘 믿겨지지 않는단다. 지리산 산골은 이렇게 추운데 말이다.

경옥이는 짝꿍도 없이, 같은 학년 친구들도 없이 오는 3월 3일 연곡분교에 입학한다. 나홀로 입학생이어서 입학식은 본교인 토지초등학교에서 할 거란다. 6년 뒤 그가 연곡분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학교는 폐교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경옥이가 이곳에서 졸업할 때는 짝꿍이, 같은 반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산에서 매일 뛰어 놀아서일까? 아이들은 가파른 산길을 잘도 오르고 내린다.
▲ 산골아이들 산에서 매일 뛰어 놀아서일까? 아이들은 가파른 산길을 잘도 오르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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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의 연중기획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공동으로 참여해 만들어집니다. 시민기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조태용 시민기자가 쓴 이 기사는 조 기자가 구례군 토지면에서 운영하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리산, #피아골, #연곡분교, #참거래농민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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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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