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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 현손을 만나다

매천 현손 황승연 월등초 교감 선생과 순천대 홍영기 교수(오른쪽)
 매천 현손 황승연 월등초 교감 선생과 순천대 홍영기 교수(오른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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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8일(토) 오후 2시, 순천 역 앞 한 찻집에서 매천 현손(玄孫 고손) 황승연(63) 월등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굳이 당신을 소개치 않아도 매천의 후손임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매천 영정과 똑같을 정도로 닮았다. 인사 몇 마디만 나누었는데도 매천의 깐깐한 성품까지 그대로 빼닮은 듯,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 분 같지 않았다. 어딘가 매천 후손으로서의 자존이 물씬 배어 있는 듯하였다.

나의 오랜 경험에 따르면, 좋은 인터뷰가 되려면 빨리 대담자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게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순천대학교 홍영기 교수가 도착하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홍 교수가 구례에서 오는 길이라고, 당신 집(문전재)이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로  매천과 이웃이라는 말에 황 교수는 당신 고향집 이웃으로 그제야 온 얼굴에 반색을 띠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듯 했다.

홍 교수는 매천을 흠모하던 나머지, 당신도 매천처럼 구례에다 집을 마련하여 서실을 꾸미고 역사공부를 하는 듯 했다. 우리 세 사람은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매천 후손과 전문 학자를 앞에 모셨으니 더 이상 바랄게 있으랴. 나는 매천야록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매천 영정
 매천 영정
ⓒ 매천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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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에 보면 국내 소식은 물론, 미국 이태리 러시아를 비롯한 구미 각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 점이 매우 궁금하였다.

100년 전인 그 무렵에는 오지 중의 오지인 구례 산골에는 인터넷은 물론 방송도, 전화도 없을 텐데 말이다. 두 분 답은 매천 선생은 구례에서 신문(주로 대한매일신보)과 관보를 받아보았을 뿐 아니라, 서울이나 중국에 있는 친구 이건창이나 강위, 김택영 선생의 편지 등으로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수집하였다는 답을 들었다.

매천의 위대한 점은 그 글에 따른 처신과 책임감을 다한 점이다. 흔히 글 쓰는 이들의 단점은 글 따로 행동 따로의 언행불일치인데, 매천도 살아서는 이 점을 매우 부끄러워하며 마지막 절명시에서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라는 경구를 남기고 순절한 일이다. 두 분 모두 매천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기에 자연히 이런 얘기들이 화제의 초점이 되었다.

녹천과 매천의 일화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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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정미 음력 9월 11일 묘시, 지리산 연곡사 뒤뜰에서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을 비롯한 부대원들이 적탄에 쓰러졌다. 적은 의병들을 소탕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연곡사에 불을 질렀다.

그 불길이 의병들의 시신에 옮겨 붙을 것을 염려하여, 부근에 사는 농사꾼 임준홍(林俊洪)이 일군 몰래 시신들을 모두 사위토(寺位土 절에 딸린 밭) 채마밭으로 옮기고 급한 대로 솔가지를 꺾어 덮어 두었다. 나흘 뒤인 9월 보름날 임준홍은 상포를 가지고 다시 와서 땅을 파고 그 자리에 시신을 임시로 묻어 두었다.

다음날인 9월 열엿샛날, 구례에 사는 매천이 현곡 박태현(玄谷 朴泰鉉)과 함께 이곳을 찾아 곡하고, 부근의 인부들을 끌어다 봉분을 크게 지은 뒤에 칠언율시 한 수를 남겼다.   

哭義兵將鹿川高公戰死(곡의병장녹천고공전사)  의병장 녹천을 애도하노라.

千峯燕谷鬱蒼蒼(천봉연곡울창창)  수많은 연곡의 봉우리 울창한 속에서
小劫虫沙也國殤(소겁충사야국상)  이름 없는 백성들이 나라 위해 싸우다 죽어 갔구나.
戰馬散從禾壟臥(전마산종화농와)  전마는 흩어져 논두렁 따라 널려 있고
神鳥齊下樹陰翔(신조제하수음상)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내려앉을 듯 돌고 있구나.
我曹文字終安用(아조문자종안용)  나 같은 글만 아는 선비 무엇에 쓸거나!
名祖家聲不可當(명조가성불가당)  이름난 가문의 명성을 따를 길 없나니.
獨向西風彈熱淚(독향서풍탄열루)  가을바람 속에 홀로 뜨거운 눈물 뿌리는데
新墳突兀菊花傍(신분돌올국화방)  국화 옆에 새 무덤 하나 우뚝 솟아났구나.

"나 같은 글만 아는 선비 두었다 무엇에 쓸거나!"하며 매천은 당신 처사에 대한 부끄러움의 눈물을 뿌렸다. 이는 녹천이 그해 8월 11일 연곡사에 들어온 며칠 뒤, 구례에 사는 매천에게 부하를 보내어 뭇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격문을 한 장 초해 주기를 청하였다.

매천 생가 마당에 새겨진 절명시
 매천 생가 마당에 새겨진 절명시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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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매천은 세상 돌아가는 시세를 꿰뚫고 있었기에 의병들이 보잘것 없는 무기를 가지고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제와 대항해서 싸우는 것은 바위에 계란 던지는 격임을 알고서, "오늘날의 정황은 격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오직 더 노력하여 또다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며 그냥 빈손으로 녹천 부하를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막상 녹천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아뿔싸!' 하고 매천은 자괴감이 들며 자신의 문약(文弱)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그런 매천도 삼년 뒤에 경술국치를 당하고는 더 이상 ‘글만 아는 선비’가 될 수만은 없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녹천의 뒤를 따라 자결로 순절하였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이 나라가 망하고 말았구나.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고 옛일 돌아보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구나!
- 절명시 네 수 중 제3수

구례 매천사
 구례 매천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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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이 이야기를 다시 듣고 보니 나도 마음이 몹시 아팠다. 1980년 7월 하순, 막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집에서 쉬고 있는 어느 날 한밤중에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연인즉 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학교 음악실로 나와 달라고 했다.

이튿날 약속 장소로 가보니 10여 명의 동료교사들이 침울한 얼굴로 그 즈음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한 선배 교사가 교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그 구제 방안을 숙의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바, 그 선배 교사는 비리를 저지를 만큼 부정부패한 이도, 사상이 불온치도 않은 분인데,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교단에서 내보내는 일은,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 꼴로,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었다.

그날 모인 동료 교사들은 하필이면 방학 다음 날 학교에서 상부에 정화대상 교사를 보고하였다고 하면서, 이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의 동요를 사전에 막고자 한 비열한 처사라고 몹시 비분강개하였다. 그러면서 선배 교사의 억울함을 탄원서에 담아 서울시 교육위원회(현 교육청)와 사회정화위원회에 제출하자고 하면서 그 탄원서 문안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그 무렵 나는 동료교사에게도 비밀로 붙인 집안(아버지의 수감) 일로 살얼음 세상을 살고 있던 중이었다. 순간 그 일이 전광석화로,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래서 탄원서를 부탁한 이에게 서명은 하겠지만 탄원서 문안만은 이 일을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쓰는 게 좋겠다는 말로 완곡히 거절하자 후배 교사가 그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매천이 순절한 매천사 대월헌
 매천이 순절한 매천사 대월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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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탄원서가 교육위에 접수된 지 얼마 뒤 서명한 교사들은 장학사 앞에서 죄인들처럼 시말서를 쓰는 곤욕을 치렀다. 그때 탄원서를 쓴 후배 교사는 시말서를 한 장 더 쓰는 중징계를 받았었다.

나는 그 일 이후, 그 후배를 보거나 생각할 때면 그 때의 일이 떠올라 몹시 부끄러웠다. 자기 보신(保身)을 위해 비겁함을 택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의 일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부끄러움일 것이다.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거나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들의 삶은 고단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난국에 희생하는 게 의로운 사람이다. 의사(義士)는, 의인(義人)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난국에 자기를 온통 버리는 사람만이 의로운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홍영기 지음 한국사시민강좌 41집의 <황현>, 녹천기념사업회 발간 <고씨 가문의 충의와 효제>, 국가보훈처 공훈록 들을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태그:#매천 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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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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