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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전자조작식품(Non OGM)' 표시가 돼 있는 유기농 제품.
 '비유전자조작식품(Non OGM)' 표시가 돼 있는 유기농 제품.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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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도시건 시골이건 크고 작은 슈퍼마켓에 가보면 진열대 앞에서 물건 하나를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무엇을 그렇게도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가격이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물건임에도 슈퍼마켓마다 가격 차이가 나는 편이다. 또한 몇 년째 월급 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구매력이 하강하는 추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살펴보는 것은 유효기간이다. 가끔 유효기간이 하루 이틀 정도만 남은 상품을 만날 수도 있는데,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진열장 앞쪽에 있는 물건일수록 남은 유효기간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대체로 맨 뒤에 있는 물건을 고르는 게 좋다.

세 번째로 확인하는 것은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성분이다. 건강과 아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기에 다른 요소들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상품에 화학 첨가물이나 색소 등이 들어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더 꺼리는 게 있다. 바로 유전자조작식품(GMO)이다. 이들은 인체에 어떤 해를 끼칠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기에 더 무서운 GMO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핀다. GMO 표시가 눈에 들어오면, 벌레에 물리기라도 한 듯이 상품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이들이 많다.

CSA-그린피스에서 1월 30~31일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GMO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조사의 세 가지 질문 및 답변 상황은 다음과 같다.

▲ GMO가 없는 제품을 구매하는 게 당신에게 중요한가? (중요함 72%, 중요하지 않음 22%, 무응답 6%)
▲ 물건을 살 때 바라는 점은? ('GMO 성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아야 한다' 71%, 'GMO 성분이 0.9%까지 포함돼 있는 건 괜찮다' 20%, 무응답 9%)
▲ 프랑스가 GMO 제품보다는 GMO가 아닌 제품 생산을 강화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의 60%, 동의하지 않음 12%, 무응답 28%)

2월 4일(이 날은 프랑스 상원에 GMO 관련 새 법안이 제출되기 전날이었다) 그린피스는 '많은 프랑스인이 GMO 작물을 거부한다'는 근거 중 하나로 이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식품에 GMO 성분을 조금도 넣어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0.9% 미만의 GMO 성분은 허용하는 유럽연합 방침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GMO 재배까지 허용한 프랑스... 2005년 이후 2년 만에 경작지 40여 배로

유럽연합이 처음으로 GMO 옥수수의 수입을 허가한 것은 1996년 12월이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1997년 2월, 프랑스도 GMO 옥수수 판매를 허가했다. 단, GMO 성분 포함 여부를 제품에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는 조건에서였다. 유럽연합은 2000년 4월부터 GMO 성분이 1% 이상일 때 제품에 의무적으로 명기하는 방침을 적용하다가, 2003년 9월 그 기준을 0.9%로 낮췄다.

프랑스는 GMO 제품의 수입과 판매뿐 아니라 자국에서 GMO 재배를 허용한 나라 중 하나이다. GMO 재배는 2002년 7월 프랑스 농업부가 8곳에서 GMO 실험 경작을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프랑스는 유럽에서 GMO 재배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1위는 스페인). 2005년에 492헥타르이던 프랑스의 GMO 옥수수 재배지 면적은 2006년엔 5000헥타르, 2007년에는 2만1174헥타르로 급격하게 늘었다(2년 만에 40여 배, 자세한 내용은 표 참조).

ISAAA(International service for the acquisition of agri-biotech applications)의 2007년 1월 발표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1억200만 헥타르의 경작지가 GMO 재배에 이용됐는데(이 중 50%가 넘는 5460만 헥타르가 미국에 있다) 이는 2005년에 비해 13% 증가한 수치다.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 중국이 GMO 재배의 선두국가들이고 유럽에서는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체코가 유럽연합이 허가한 GMO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프랑스는 많은 원자력 발전소(50여개)를 가동하고 있고, 농약을 많이 쓰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의 GMO 재배 면적이 유럽에서 두 번째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유럽 8개국의 GMO 재배 관련 바이오테크닉 현황. 2005~2006년 콩을 기준으로 한 루마니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옥수수 재배지(단위 : 헥타르) 현황이다.
 유럽 8개국의 GMO 재배 관련 바이오테크닉 현황. 2005~2006년 콩을 기준으로 한 루마니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옥수수 재배지(단위 : 헥타르) 현황이다.
ⓒ The European Association for Bio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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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년 유럽과 미국의 GMO 경작지 비교(단위 : 100만 헥타르, 출처 : National Statistics Service of th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2006~2007년 유럽과 미국의 GMO 경작지 비교(단위 : 100만 헥타르, 출처 : National Statistics Service of th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GMO 작물을 뽑아버려라'... 시민들, 2006년 GMO 경작지 40% 파괴

반생태적 정책을 펴는 프랑스 정부를 저항 정신이 강한 프랑스 국민들이 두고 볼 리가 없다. 프랑스에서는 오래 전부터 원자력 발전소 폐기 및 GMO 재배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발적으로 작물을 파괴하는 사람들'이라는 독특한 그룹이 형성된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 단체는 2003년에 400명이 참가하면서 결성됐다. 2005년 6월, 이 수는 4800명으로 늘었는데, 조제 보베가 지도하는 프랑스농부연합과 녹색당,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론자들이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은 GMO 작물이 재배되는 밭에 가서 작물을 모두 뽑아 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법의 제재를 받게 되는데,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최고형은 5년형의 징역과 7만5천 유로의 벌금형이다.

이들은 2003년 정부에서 허락한 GMO 실험재배지의 절반을 파괴했다. 2004년에는 실험재배지 48개 중 27개가 파괴됐는데, 면적으로 따지면 이는 GMO 재배지의 70%에 해당한다. 2006년 7월 31일 농업부 발표에 따르면 GMO 재배지의 40%가 이들에 의해 파괴됐다.

2004년 7월 25일 프랑스 남서부 망빌(Menville)에서 '자발적으로 작물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GMO 옥수수를 뽑아내고 있다.
 2004년 7월 25일 프랑스 남서부 망빌(Menville)에서 '자발적으로 작물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GMO 옥수수를 뽑아내고 있다.
ⓒ Jean-Marc Desfil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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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도 이들의 저항은 계속되어 8월 18일 포엥빌에 있는 세계적인 곡물 메이저 몬산토의 GMO 옥수수 밭이 파괴되는데, 이들 중 58명이 연행되고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8월 25일, 100여 명이 다시 제르스 지방의 옥수수 밭을 파괴하는데 이들은 그날 오후 GMO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몽베끼에 있는 몬산토 공장에 간 뒤, 옥수수를 그 앞에 두고 오는 상징적인 행동을 벌였다.
이들은 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지만 가끔 경찰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들이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에게 최루탄을 쏘아 분산시키는데,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육박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협회 형태를 만드는 대신 자유롭게 만나는데, 환경단체 '땅의 친구들(les amis de la terre, Friends of the Earth France)'에서 GMO를 담당하고 있는 베르도씨는 중형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협회일 경우 당연히 협회장이 중형을 받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모임으로 진행할 경우 개인적인 차원의 가벼운 형벌에 그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경찰이 현장에서 이들의 행동을 목격할 경우, 단지 몇 명만 임의로 잡아내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외치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도 GMO 재배 작물 파괴에 가담해 여러 차례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등 GMO 반대 운동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슈퍼마켓에서 GMO 제품 찾기 어려운 까닭

프랑스가 유럽에서 GMO 재배 2위국이지만 실제로 프랑스 슈퍼마켓에서 GMO 성분이 담긴 제품을 찾기란 힘들다. 이에 대해 베르도씨는 전 세계 GMO의 80%는 선진국의 동물 사료로, 나머지는 식용 이외의 목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재배되는 GMO 작물은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모두 스페인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게 베르도씨의 설명이다. 베르도씨는 유럽연합이 GMO 식품의 수입과 재배를 허용하고는 있지만, 유럽인들은 이 제품을 꺼려한다고 덧붙였다.

기자도 이 기회를 이용해 GMO 표시가 있는 식품을 찾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에 들렀지만, 그런 성분이 들어있는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 베르도씨 말대로 프랑스에선 소비자나 중간 유통 단위의 대다수가 GMO 식품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법으로는 수입 및 재배가 허용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의 몸으로 들어가는 양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우유나 달걀, 고기, 크림, 버터 등의 식품에선 문제가 달라진다. 이런 식품들은 GMO 표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GMO 사료를 먹은 동물을 재료로 이런 식품들을 만들어낼 경우, 소비자는 그것이 GMO가 들어간 식품인지 알 방법이 없다. 유럽연합 중 독일만이 이런 경우에도 GMO 성분 표시를 하도록 최근에 규정했다고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2월 5일 프랑스 상원에 GMO 관련 새 법안이 제안됐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르몽드> 2월 5일자).

▲ GMO 옥수수 Mon810의 재배를 보류한다.
▲ GMO 작물의 소비와 생산은 자유다.
▲ 그러나 GMO 재배로 인해 그 근처에 있는 비GMO 작물에 어떤 피해가 생길 경우에는 GMO 재배자가 경제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 GMO 실험재배지의 장소와 성격을 일반에게 공개해야 한다.

GMO 반대 세력으로서는 이 입법안에 1998년 프랑스의 제안에 따라 유럽연합에서 수입을 허가했던 GMO 옥수수 Mon810의 재배가 보류된 것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지만(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검토 중이다), 두 번째 조항은 달갑지 않은 내용이다.

GMO 반대론자들은 이 문제에 관한 국회 토론(4월 1일~3일)에 맞춰 지난달 29일 시위를 벌였다. "GMO가 들어있지 않은 제품을 소비하고 생산할 권리를 위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렌느, 클레르몽-페랑, 툴루즈, 보르도, 아비뇽, 낭시, 릴 등 프랑스 각지에서 벌어진 이 시위에는 그린피스, 아탁, 땅의 친구들, 자발적으로 작물을 파괴하는 사람들, 프랑스농부연합, 유기농 국민연대 등 단체 회원을 비롯한 2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친GMO를 표방했던 시라크 정부와 달리 사르코지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생명공학을 장려하겠다고 말했지만, 농업부와 내무부 등 관련 부처에서는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어 향후 정책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GMO에 스며든 초국적 곡물 메이저의 책략, 터미네이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GMO 재배와 엄청난 양의 농약으로 인해 토지가 수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지구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신호다. 자연 파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됐다. 예컨대 벌의 수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도 농약 등의 화학제품 및 GMO 재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환경론자들의 의견이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벌이 이 세상에서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GMO 찬성론자들은 지금 더욱 무서운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GMO에 터미네이터(terminator)라는 유전자를 집어넣어 종자를 오로지 한 번만 이용하게 하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농부들은 해마다 새로운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 전 세계 농부들이 구입해야 할 종자의 양을 생각해보라. 이는 몬산토나 카길 같은 초국적 곡물 메이저의 배를 불리기 위한 책략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까지 상업화하려고 애쓰는 대기업들. 언젠가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마저 팔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GMO 재배가 더 확산되기 전에 GMO 재배와 소비를 반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린피스 "GMO, 이렇게 퇴치하세요"

그린피스 사이트의 '사설탐정' 화면.
 그린피스 사이트의 '사설탐정' 화면.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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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GMO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그린피스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GMO 반대'를 공식적으로 내건 그린피스에서는 GMO 관련 '사설탐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슈퍼마켓이나 밭에서 GMO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는 식품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해 달라는 것이다. 다음은 그린피스 사이트에 있는 관련 내용이다.

어떻게 GMO를 거부할까?

▲ GMO를 산 슈퍼마켓에 가서 제품을 반환하고 소비자들이 이런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진열대에서 이런 제품을 모두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라.
▲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GMO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사지 않도록 홍보하라.
▲ GMO 식품인 줄 모르고 샀다면, 알고 난 직후 바로 슈퍼마켓에 가서 반환을 요구하라.
▲ GMO를 제조한 국내 제조업체 및 수입품일 경우엔 수입업체에 이와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라.
▲ GMO 선전 스티커를 떼어내 GMO 식품에 붙여, 그것이 GMO임을 널리 알려라.

동시에 그린피스는 소비자들의 협조로 찾아낸, GMO 성분이 들어있는 제품 리스트를 발표해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8만여 가지의 식품 중 현재까지는 30여 개의 식품만이 '사설탐정'에 걸렸는데, 대부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수입한 식품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린피스는 GMO 성분이 들어있는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 리스트와 GMO 성분이 들어있는 식품을 거부하는 슈퍼마켓 리스트를 공개하고 있다.


태그:#유전자조작식품, #GMO, #터미네이터, #곡물메이저, #몬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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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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