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충청남도 천안시 두정중학교 앞. 아이들이 삼삼오오 교문을 빠져 나온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재잘대는 아이들은 흰 지팡이를 짚은 선생님에게 합창하듯 인사한다.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답을 해준다.

 

"어 그래, 조심히 잘 가거라."

 

 영어를 좋아했던 소년의 꿈 

 

"혹시 최유림 선생님이신가요?"

 

시각장애인 최초로 일반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최유림 선생. 기자의 물음에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준다. 특수교육 전공 임용고시가 경쟁률도 낮고 준비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그는 왜 영어교사를 선택한 것일까.


 영어를 좋아했던 아이는 몇 년 뒤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특수학교 중등교육 과정의 영어 과목 선생님이 될 생각으로 영어교육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특수교사에서 영어교사로


어린 시절 선물 받은 영어 테이프를 온종일 듣고 또 들으면서 그는 막연하나마 영어를 가르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 대상은 그와 같은 장애인이었다. 일반인들을 가르친다는 꿈은 그의 입장에서 환상이었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는 과정이 남다르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경쟁할 때 같은 출발선에 설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영어교사 임용고시 응시를 권한 이가 있었다. 늘 아버지같이 그를 살펴주던 강용구 교수와 공격적으로 그를 다듬어주신 영어교육학과 지도교수인 휴버트 교수다.


중등교사 임용고시 2차 시험준비가 한창이던 2007년 1월. 영어교육과 임용캠프 강의실에서 있던 일이다.

 

"얘들아, 유림이 봐라. 병신 같지 않아?"


수업 시연을 끝낸 그를 보고 휴버트 교수가 다짜고짜 하신 말씀이었다.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최유림씨는 너무 놀라서 움찔했다. 비록 시각장애인이긴 하지만 대놓고 그에게 그런 욕설을 퍼부은 사람은 없었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이 "너무한다.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이런 말들이었다.
 

그런 소리를 무시한 채 교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희들이 보기엔 유림이의 어디가 이상해 보이니? 자, 하나씩 지적해 보자."


잠시 뒤에 어느 학우가 마지못해 말을 꺼냈다.

"시선이 한 방향에만 고정되어 있어서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유림아, 우린 지금 강의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어. 그런데 넌 처음부터 끝까지 대각선 방향만 바라보고 수업을 진행했어. 사람은 여기 있는데 왜 그 구석만 바라보고 있는 거니?"


임용고시 1차 시험은 지필고사지만 영어교육과 2차 시험은 한글면접과 영어면접, 논술과 학습지도안 작성, 그리고 수업 시연까지 모두 다섯 가지나 된다. 교수님은 면접위원들에게 그가 일반인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자세와 제스처들을 집중적으로 고쳐주셨다고 한다.

 

영어교사, 수학과 씨름하다

 

요즘은 맹학교에도 취업반과 대학입시반이 나뉘어 있지만 그가 맹학교에 다닐 때에는 대학입시반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도 일주일에 몇 시간씩 안마와 침술을 배워야 했다. 영어와 수학은 일주일에 2시간씩뿐이고 공통영어를 고등학교 3년 내내 배우는 형태였다. 수학은 교과서 자체가 일반고교의 것과 달라서 미분과 적분 등은 아예 정규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학교가 끝나는 오후 4시부터 부족한 부분들을 따로 공부해야 했다.


영어는 평소에 좋아하던 터라 큰 걱정이 없었지만, 문제는 수학이었다. 처음엔 점자로 계산과정을 써가며 공부를 했는데 쓰다가 다시 읽어보고 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공부의 맥이 자꾸 끊겼다. 결국 암산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몇 번씩 반복하며 참 미련하게 공부했다. 몇몇 친구들은 수학을 아예 포기하고 언어와 외국어, 사회과학만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했다면 나머지 과목을 공부할 여유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공부를 도와주곤 했는데 수학에 대해서는 다들 손사래를 쳤다. 그래프와 계산식이 잔뜩 나오는 수학을 말로 모두 설명한다는 것이 힘들었던 탓이다. 다행히 수학전공자인 봉사자를 만나게 되어 공통수학을 2학년 때 다 마치고 3학년 1학기 때 수Ⅰ을 마칠 수 있었다. 종이를 그래프 모양으로 접어서 만지게 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최씨가 수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이다.


과목별로 하루 공부분량을 정하여 언어랑 사회·과학 공부를 먼저하고 나머지 시간을 수학공부에 쏟아부었다. 그렇다 보니 새벽 3시 정도나 되어 잠드는 날이 많았다. 서서히 수학에 재미를 느낄 즈음 수학능력시험이 닥쳤다.

 

그가 수능을 치렀던 2002년은 2001년 쉬운 수능의 반작용으로 무척 어렵게 출제되었던 해였다. 지난해 기출문제 수준으로 공부해온 그였기에 시험결과는 그가 기대했던 점수에 미치지 못했다. 재수를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까 하다가 부모님의 설득으로 공주대에 가게 된 것이다.

 

반복해 들으니 들리기 시작

 

"넌 눈도 안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냐?"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친구들조차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그의 공부 방법은 바로 반복학습이다. 강의도 녹음하여 반복해서 듣고 영어도 그랬다. 특히 EBS 라디오 영어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들었다. 처음엔 어려워도 계속 반복해 듣다 보면 서서히 더 잘 들린다.
 

임용 공부를 할 때는 중고등학교 자습서를 사용했다. 자습서의 한글 풀이를 보며 영어로 옮긴 후 본문과 비교하는 것이다. 영작이 늘면서 말하기도 더 쉬워졌다. 말하기 역시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정리되어야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의 영어 수업이 다른 선생님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테이프를 듣고 따라 말하도록 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거기에 발음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그것이 좋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단다.

 

"나는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든 새내기 교사예요. 내가 영어교육을 잘하고 있다 아니다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아요. 그저 멀리서 나를 보고는 뛰어와서 즐겁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보며 기쁘게 생각할 뿐이죠. 그들이 나를 교사로 인정한다는 의미니까요.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도전! 도전! 도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후 그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문의전화를 참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할 만 하느냐. 힘들지 않느냐. 하는 질문들이었다. 그는 전혀 모르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던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그 역시 할 수 있었다면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먼저 이 길을 간 사람이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었다. 모두 그가 알아서 헤쳐나와야 했다.


아직은 이 사회에 '시각장애인은 안된다'는 편견이 분명 존재하고, 동료와 학교 분위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도전해 보라 격려했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주저하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비록 아주 큰일을 해낸 것은 아니지만 의지를 갖고 도전해보니 꿈을 이룰 수 있게 되더라고. 그렇게 과감히 도전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시각장애인들의 활동분야도 넓어지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그들이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다시 안내자가 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수업에는 보조교사가 늘 함께한다. 교육부에서 지원을 받아 학교 측에서 채용한 40대 여성으로 영어교육(테솔)을 이수한 사람이다. 하지만 보조교사는 그가 수업하는 교실 한편에 서서 수업 중에 딴 짓을 하는 아이들을 단속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 수업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사실 영어교사 임용고시 합격 기사가 처음 나왔을 때 그는 임용에 완전히 합격한 것이 아니었다. 2차 시험까지는 통과했으나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력 0.3 이하는 교사가 될 수 없다. 시력 때문에 교육청에서 불합격시킬 수도 있었다. 그로 인해 충남교육청에서는 심의위원회가 열렸고 안과의사, 사회복지관 관장, 특수학교 교장 등 다양하게 구성된 심의위원 앞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심의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한 것이다.

 

삶을 향한 독기가 없어지다

 

중고등학교 때의 그는 열심히 해서 뭔가 이루고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뭐든지 열심히 했고 1등을 향해, 성공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영어교사의 꿈을 이룬 현재는 자신의 삶을 향한 독기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큰 성공을 이루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게을러진 것에 대한 핑계일 수도 있지만 좋게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졌다는 의미가 된다.

 

그에 대한 기사를 보고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내가 무슨~'이라는 생각에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시각장애인들이 낸 책은 대부분 강영우 박사처럼 큰 사건에 대한 얘기들뿐 아닌가. 시각장애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세세한 얘기들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가 쓴 책 <최유림이 사는 세상>에는 신동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하던 학창시절, 그리고 임용캠프 이야기와 현재 교사 생활까지 인간 최유림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범했던 나의 일상생활을 책에 담음으로써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가 서문에 적어놓은 이야기처럼, 혼자 길을 다니고 정안인들과 어울려 지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평범한 시각장애인 최유림씨. 이제 그의 소원은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을 위한 격월간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4월호 게재


태그:#시각장애, #영어교사, #최유림, #자서전, #한국점자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