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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전라북도로 가다

 

2008년 3월 8일(토) 오후, 전남 순천에서 매천 황현 선생 후손 황승연 선생과 순천대 홍영기 교수와 한 찻집에서 대담을 나눈 뒤 임실로 가고자 순천역으로 갔다.

 

매표 창구에서 임실로 가는 가장 빠른 차표를 부탁하자 1시간 뒤에 있다고 하면서 곧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는 임실을 통과한다고 했다. 무궁화호 차도 통과하는 곳이라면 어지간한 오지다. 하룻밤 묵을 여사마저도 없을지 몰라 임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열차가 서는 곳을 부탁하자 남원 표를 주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호남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 흔한 승용차도 없이 묵직한 여행용 가방을 끌고, 카메라를 둘러멘 채, 시외버스로 열차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떠돌아다니며 얻어먹고 지냄)하는 내 행색이 초라해 보이기도 처량해 보이기도 할 테다.

 

직장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이 시대에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 교사직을 뿌리치고 전라도 산골을 찾아다니는 나그네가 어찌 한심치 않겠는가.

 

15: 43, 정시에 순천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는 한 시간 정도 달린 끝에 남원역에 닿았다. 남원은 역과 시가지가 멀었다. 택시를 타고서 시가지로 간 뒤 숙소를 정하고는 산책에 나섰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지, 거기가 거기로 천편일률적이다. 남원도 광한루 일대에서나 춘향의 고향임을 알 수 있을 뿐, 중심가에서는 이 고장의 특색을 찾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고인과의 만남

 

이튿날 이른 아침 세면을 한 뒤 밥집을 찾았으나 문을 연 집이 없었다. 가방을 들고서 시외버스정류장에 가자 문을 연 밥집이 있기에 선지해장국으로 요기를 한 뒤, 8시 20분 행 임실 경유 전주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하는데 승객이 나 혼자였다.

 

"기름 값이 더 올라야  손님이 있을지 이대로 가다가는 밥줄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구먼요."

 

기사는 임실로 가면서 이런저런 세태 이야기를 했다. "이대로 가면 농촌은 곧 텅 빌 것"이라는 둥, 지나는 길가의 대학(서남대학교)을 보고서는 "한때는 서울 학생까지 내려왔지만 요즘은 정원 채우기도 어려운 모양"이라는 둥, "별 잡스러운 이도 장관을 하고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등, 점차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 뭔 일이 또 터질 것 같다"는 둥, 시정인으로 우국지정을 쏟아놓았다.

 

"이곳 분이 아닌 듯 한데 이른 아침에 무슨 일로 어딜 가시오?"

"임실 성수까지 갑니다. 이석용 의병장 생가마을을 찾아갑니다."

"뭣이오, 아, 사기꾼이 판치는 세상에 의병장 고향은 뭣 하러 찾으시오?  참 답답한 양반이구먼요."

 

오수라는 곳에 이르자 대여섯 승객이 오르자 나와 기사의 대화는 끊겼다. 기사는 승객 가운데는 자주 만나는 여성 단골 승객에게로 대화 상대를 옮겨갔다. 차창 밖에는 봄기운이라기보다는 지난 겨울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석용 의병장 행적을 살피고자 가방 속의 유인물을 꺼내 펼쳤다.

 

하늘에는 항상 해와

달과 별빛이 비치지만

내 가슴 속에는 일편단심

나라를 구하는 것뿐이다.

천추에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죽는 일이요

이것만이 나를 편안케 하는 것이다.

- 이석용 의병장이 대구 옥중에서 읊은 마지막 시

 

차창 멀리 임실 들판에서 이석용 의병장 환영이 손을 흔들고 반기는 듯하다. 솔직히 나는 이런 아름다운 고인과의 만남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다. 이 어른들의 영정을 대하거나 말씀을 들으면 잦아든 내 가슴의 피가 끓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잠을 잊기도 한다.

 

한말 구국운동인 의병전쟁은 망해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민중들이 오로지 불타는 애국심에서 맨주먹 하나로 일으킨 전쟁이었다. 따라서 승패는 처음부터 불 보듯 뻔했다. 그 점은 의병 자신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하였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추호도 굴복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 홍순권 지음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 355쪽

 

이십팔 의사 기적비의 유래

 

9시 20분 임실 버스정류장에 닿았다. 매표소에서 성수행 버스는 10시에 있다고 하였다. 이석용 후손 이명근씨와 10시에 성수면사무소 옆 노인회관에서 만나기로 하였기에 10시 차를 타도 크게 늦지는 않겠지만 자꾸만 정류장 택시로 눈길이 갔다.

 

거기로 다가가 요금을 묻자 6000원만 달라고 하였다. 나는 가방을 택시 뒤 트렁크에 싣고는 올랐다. 가는 길에 소충사까지 차비를 물으니 1만원을 요구했다. 이명근씨가 차를 대기 시켜 놓지 않으면 그대로 이용키로 하고 성수면으로 달렸다.

 

성수면 노인회관 문을 두드리자 이명근 성수면 노인회장이 반겨 맞았다. 3년 전에 뵌 적이 있어 그때를 회상 시키자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의병선양회 회원들이 소충사를 들러본 뒤 바로 버스에 오르자 이명근 회장은 "점심을 준비 해 뒀는데 그냥 가면 어쩌느냐"고 버럭 화를 내시던 일이 어제 같았다.

 

내가 택시를 대기 시켜 뒀다고 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택시를 한 대 부를 참이라고 하면서 곧장 차에 올라 소충사로 달렸다. 전북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산기슭 2만여 평에 자리 잡고 있는 소충사(昭忠祠)는 이른 아침 탓인지 고즈넉하고 아담했다. 숭의문을 통해 사당 내로 들어가자 빈 터에는 이석용 의병장 동상을 세우고자 한창 기초공사 중이었다.

 

호남창의동맹단(湖南倡義同盟壇),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조의단(弔義壇), 이십팔의사기적비(二十八義士紀積碑)가 가지런히 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이십팔의사기적비' 유래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여기에 모신 28의사는 이석용 의병장 부하를 기념하는 비로, 무덤으로 올라가는 정면 아래에는 28개의 돌에 새긴 비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소충사 사당에는 그분들 위패가 모셔져 있을 뿐 아니라 이석용 의병장 묘지 바로 아래에 합장으로 모셔두었다.

 

 

이명근 회장은 "28의사 가운데는 나이가 어린 소년 의병도, 스님도 있고, 대부분 손이 끊어진 분들이라 당신 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그분들의 유해를 모아 이곳에 모두 모시고 합장으로 무덤을 만들었다"는 유래를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그 장군에 그 아들, 그 손자라고, 이들 세 부자의 마음씀이 갸륵해 보였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망해 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어찌 높고 낮음이 있겠는가. 오히려 최일선에서 몸을 던져 이름 없이 산화한 의병의 애국심과 충성심이 더 가상치 않은가. 역사는 늘 승자 중심, 장군 중심으로 기록되기에 무명 전사들의 넋은 정처 없이 떠돌고 있지 않은가.

 

당신 아버지(靑菴 李元泳)는 이 비석을 세우기 위해 요강장수도 하였다는데, 매국노 이완용의 친족 이아무개가 전북경찰국장으로 부임한 뒤 기마경찰을 동원하여 그 비석들을 부셔버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명근 회장은 당신 아버지도 그 일로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당신 증조부(이석용 의병장 부친)는 임실경찰서에 붙들러 가 수염을 붙잡힌 채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또 당신 어머니도 수갑을 찬 채 뭇매를 맞아 기절했고, 당신도 머리를 박박 깎이면서 구둣발길 질로 피멍이 든 채 어머니를 업고 돌아온 지난 얘기를 하시는데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당시 당신 집안을 괴롭히던 고등계 형사 악질 옹아무개는 해방 후에도 유지 행세를 하며 잘 지냈고, 그 아들도 병원장으로 부귀를 누린다고 하였다.  

 

나는 이십팔 의사 묘와 이석용 의병장 묘에 두 번 절을 드린 뒤 차에 올랐다. 생가가 그리 멀지 않다고 하여 기사에게 부탁하자 모두 1만5000원을 요구하는데, 2만원을 주기로 하고 임실까지 부탁하자 마침 일요일 아침 별 손님도 없는데 좋다고 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홍순권 지음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와 이태룡 지음 <의병 찾아가는 길 2> 등을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태그:#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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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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