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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같은 사람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변화를 느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웃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말수가 많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정폭력으로 쉼터를 찾았던 비쩍 마른 몸매에 큰 눈만 멀뚱멀뚱 뜨고 제대로 말을 못했던 탐의 얼굴에 어느새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결혼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교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한국에 온 지 5년이 넘은 틔이가 받아 적었다.

 

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탐의 아버지는 탐이 초등학생일 때 아이 여덟을 놔두고 출가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탐은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고생이 많았고, 그런 그가 외국 사람인 한국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주위 친구의 권유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받아 적은 글에는 탐이 한 말과 받아 적으며 느낀 점을 함께 기록하고 있었다.

 

탐의 이야기

"탐씨는 1980년생이에요. 고향은 베트남 남쪽입니다. 형제는 8명입니다. 탐씨는 막내입니다. 그리고 탐씨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탐씨 아빠가 많이 힘들어요. 그래서 집사정이 어려워요. 그러니까 탐씨는 학교 조금밖에 못 다녔어요.

 

가족과 농사일을 했어요. 27살 베트남 사람을 만났는데 한국 사람을 소개해 줬어요. 탐은 외국 사람하고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 사람하고 결혼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까 생각대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신랑 가족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신랑 아들 2명, 신랑 이렇게 5명이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잠자서 많이 힘들었어요. 시아버지하고 시어머니는 매일 야단치고 때리기도 했어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48kg이었는데 8개월이 지난 뒤에는 38kg까지 살이 빠졌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시아버지가 다리를 때려서 집에서 도망 나와서 경찰에 도와달라고 했고, 경찰에서 용인이주노동자쉼터로 보내줬어요. 그렇게 쉼터에 와서 저하고 만났어요. 며칠 동안 같이 이야기하다 보니 탐이 불쌍하다."

"외국 사람하고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 사람하고 결혼했어요"라는 문장에 이어 생각대로 행복하지 않았던 8개월간의 결혼 생활에 대해 쓰여 있었다. 글의 마지막에는 "같이 이야기하다 보니 탐이 불쌍하다"는 결혼이주여성 틔이의 감정이 독백처럼 적혀 있었다.

 

사실 탐이 쉼터에 처음 왔을 때부터 틔이는 키에 비해 너무나 마른 탐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애가 둘이나 딸린 나이 많은 남편과는 그다지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시부모의 구박과 구타로 인하여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탐. 그녀는 처음 쉼터에 왔을 때 여권을 손에 쥐는 대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현재 탐은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아 쉼터를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그나마 베트남 음식을 스스로 해 먹기도 하고, 말이 통하는 고국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사람을 보고 밝게 웃기도 한다.

 

그러나 철들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남편과의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탐. 귀국을 소원하는 그녀의 웃음 뒤에 여전히 슬픔이 배어 나오는 이유다.

 


태그:#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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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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