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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98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내 방이 생긴다면 이렇게 저렇게 꾸며야지 하고 수많은 계획을 세우곤 했었는데, 모든 짐들이 나가고 휑하게 남겨진 네모난 방을 보자니 가슴이 애잔해진다. 눈을 감고 손을 뻗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처음 모습 그대로 새 집 같은 이 집도 벌써 8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다. 처음으로 생긴 "내 집"이라 결혼 생활 27년 만에 장만한 집 안 곳곳에는 평생 함께 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들이 담겨있었다. 손톱만큼 아주 작은 소품들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어머니 눈빛에 쓸쓸함이 스친다. 벽들에 꼭 맞게 짜맞춘 붙박이장들을 뜯어내고, 어색하게 다시 설치하며, 이제 다른 집에 왔다는 걸 느낀다.

정 붙이고 사는 곳이 우리 집이고 내 집이다. 험난한 세상살이에 등 붙이고 따뜻하게 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내 이름이 적힌 집은 이제 없지만 대신 우리 가족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동안 같은 집에 살면서 얼굴 마주쳐도 각자 생활에 쫓겨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하는 것도 잊어버린 가족들이었다. 무언가를 잃은 뒤에야 그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당연하다는 듯이 있어주던 집이 없어지자, 그동안 잊고 있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삿짐을 다 나르고 난 후, 우리는 둘러 앉아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루 종일 이사온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느라 기진맥진해진 저녁, 우리는 마음의 허기까지 채우려는 듯이 삼겹살을 치열하게 먹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아버지와 소주도 한 잔 했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잃어버림으로 가지는 것보다 소중한 것들을 배워간다.

아버지는 성철 스님의 시계를 훔쳐간 도둑이야기를 하셨다. 도둑이 훔쳐간 시계를 다시 돈 주고 사온 스님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우리는 도닦는 스님이 아니란 어머니 말씀도 맞는 말이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편히 가져야겠다.

아버지 연세도 적지 않고, 나는 돈 벌려면 멀었는데 언제쯤 다시 우리집을 가지게 될지,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부에서 내놓은 말 한 마디에 '억' 소리 나게 가격이 올라가는 집 값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에 자기 이름이 적힌 집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이 가졌었는지 알게 되었다.

막상 나와서 보니 가는 곳마다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우리집이 될 수 있으려나 막막하다. 그 많은 집들은 누구를 위한 집들일까. 살 수만 있으면 사놓고만 있어도 여의도, 청와대 분들처럼 부자될 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경찰이 시민과 몸싸움을 벌이고, 경유값은 치솟고, 무한 경쟁에 내던져져 일 할 기회가 막막한 상황에 놓인 지금,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에 희망이란 말을 입에 웅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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