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학교에서 받는 수업 중 팀별 프로젝트로 한 카메라 회사의 DSLR 브랜드를 홍보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팀원들이 모여 자료 조사하느랴, 아이디어를 내느랴, 보고서 작성하느랴, 정신이 없지만 이렇게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평소에 생각지 못한 것들을 보곤 합니다.

처음에 저희 팀은 대학생 정도의 젊은 층을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월드컵 이후 싸이월드 같은 블로그에 디지털 사진을 올리는 것이 일반화되며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크게 확대되었고, 디지털 카메라의 상위 기종인 DSLR 또한 젊은 층에게 한 번 매력이 전파되면 금방 유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DSLR이 100만원대의 고가이긴 하지만 요즘 학생들, 유행이라면 100만 원도 두렵지 않아 하는 학생들도 많을 거라는데 생각이 닿았습니다.

여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보면 명품 로고가 없는 것이 없고 한잔에 6천원 이상하는 커피도 매일 들고 다니고, 용돈을 많이 받는건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런건 아니겠지만 찍지도 않을 고가의 사진기를 목에 두르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다니는 대학생들도 많이 보입니다. 커피숍에서 셀카를 찍는데 과연 100만원이 넘는 DSLR 카메라가 필요한 건지 전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DSLR을 팔아야 하는 저희에겐 소중한 고객들로 보였고 명품 브랜드와 협력해서 카메라 줄을 만들자, 카메라 가방을 만들자, 블로그에 유명 연예인이 들고 있는 모습을 올리자, 티비 드라마에 주인공이 들고 다니게 만들자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 되니까 아이디어들이 술술 나왔습니다. 평소 자신들이 원하는 걸 이야기하면 아이디어가 되니까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갑자기 4~50대의 중년 남성으로 타겟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당황했지만 교수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어쩔 수 없이 새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주신 방향은 가정에서 부인들의 힘이 강해지고 아이들은 거의 다 커서 말도 안 들어 기가 죽어 버린 가장들에게 기운을 줄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요.

팀원들은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일에 치이고 가정에 시달려서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사진을 찍으러 가신 아버지가 첫번째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자식들의 추억을 남겨주시려고 사진을 찍어주시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의 좋은 취미로 사진 찍기를 권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어떻게 아버지들에게 이 좋은 취미를 권할 수 있을지 아무도 답을 내지 못하고 벽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저도 역시 제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취미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보아온 아버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항상 밤에 들어오셨고 오시면 잠시 티비를 보시다 일찍 잠자리에 드셔서 제가 깨기 전에 출근을 하시곤 했습니다. 하루 집에 계시는 일요일에도 조금 늦게 일어나 낮에 티비를 보시며 꾸벅꾸벅 졸고 계시다가 엄마와 집안 청소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위키백과를 보면 취미(趣味)란 논리의 개입이 적은, 인간이 기쁨을 얻는 활동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취미의 성질은 좋아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지속성 있게 실행하는 활동이고 결정적으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과 구별되는 데 있답니다. 가끔 취미가 직업이 되는 일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취미는 먹고 사는 일과는 다른 순수한 즐거움을 찾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의 취미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거였을까요. 즐거우셨을까요. 딴에 대학생이라고 얼마전 공부하는데 써야 한다며 100만원이 넘는 노트북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공부에 쓴다니 선뜻 사주신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내야할 정답에는 답을 달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좋은 취미로 100만원 짜리 카메라를 사시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아온 아버지에겐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으셨습니다. 단지 남들이 쓰는 건 자기도 사야 한다는 철없는 아들을 위해 매일매일 열심히 일만 하셨습니다. 그게 아버지에게 취미라고 부를만한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비싼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으러 다니시는 모습을 상상하긴 힘들었습니다.

다른 조원들도 끝내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나온 다른 조의 의견들은 골프장에서 홍보를 한다, 보험을 연계한다, 가족 사진 콘테스트를 연다 등이었습니다. 그 의견들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파는 일이 쉽지만은 않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순수한 취미를 갖게 될 때가 빨리 와야 할텐데요.


태그:#아버지, #취미, #조경국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