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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의 분위기라는 것이, 막 입학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우르르 몰려다닐 때도, 처음 선배 되었다고 어리버리 할 때도 아닌, 적당한 인간관계에 적당히 나태해져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다.

 

내가 다닌 문예창작학과는 과 특성답게(?) 20명이 채 되지 않는 구성원이었지만, 그 20명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업 빼먹고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한 사람, 글 쓴답시고 잠수탄 사람, 연애에 푹 빠져 친구도 뭐고 다 버린 사람, 시험 기간만 되면 술 마실 시간이 많아진다며 좋아하던 게 우리 과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개인적인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같은 과에서 3년을 보내도 끈끈한 정이랄까 그런 게 좀 적었다. 몇몇 친한 사람들과만 연락할 뿐, 다른 아이들은 간간히 소식이나 듣는 상태였다.

 

이렇게 길게 내가 다닌 학과를 설명하는 이유는 한 친구의 당황스런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 친구도 여자고, 나도 여자다. 그리고 우린 3년 동안 같은 과, 심지어 같은 학회에서 공부했지만 따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친하다곤 할 수 있으나, 마음을 준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 친구가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평소 같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니한테만 할 말이 있다. 들으면 니도 좋아할낀데."

 

난 부산 사람이다. 아무튼 그 아이는 말을 이었다.

 

"목요일부터 시험 기간인데 니 시간 되겠나? 목요일 저녁에 보까?"

 

나는 엄청나게 궁금해졌다. 나와 그 아이 사이에 꼭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기다리는 소식이라지 않나. 난 안달이 났다.

 

"뭔데? 전화로 얘기하면 안 되나? 궁금한데."

"안 된다. 꼭 만나서 해야 하는 이야기다."

"쫌만 갈키도."

"안 된다. 그라면 니 목요일 날 시간 되나?"

"어…시험이지만 뭐…알겠다. 보자."

 

이렇게 통화는 끝이 나고, 난 끝도 없는 궁금증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고민끝에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그 당시 내가 짝사랑하던 철학과 선배가 있었는데 말도 못 붙여본 상태였다. 혹시 그 선배랑 관련된 일인가? 내 가슴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친구의 전화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뤘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었다.

 

우리가 만난 곳은 패스트푸드점. 친구는 만났는데도 금방 말을 터놓지 않고, 햄버거를 다 먹고 이야기를 하자는 거다. 점점 느낌이 이상해졌다. 우린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날은 비가 왔는데 우산을 펴더니 다정스레 내 팔짱을 꼈다. 그리곤 드디어 입을 연다.

 

"너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아나?"

"어? 그게 뭔데?"

"다단계. 근데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오 마이 갓! 이럴 수가. 내 친구가 다단계라니.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다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아이었다. 과에서도 그렇게 활발하거나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고,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수수한 아이었다. 나는 순간 혼란에 빠져 휘청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궁금해지기도 해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건물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떤 사무실에 들어가자, 문 앞에 붙어있는 종이.

 

'미성년자는 출입금지'

 

방안에 들어서자 정말 '징그러운' 장면이 이어졌다. 그 넓은 사무실에 동그란 책상들이 수도 없이 놓여있는데 동그란 책상마다 의자가 딱 3개씩이다. 그 의자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있다. 척 봐도 내 또래의 학생들. 그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 이게 우리나라 취직의 현실이구나. 궁지에 내몰린 우리 세대들은 이렇게 꼬임에 넘어가는구나. 암담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때부터 동그란 책상에서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맨 처음엔 A4용지 위에 자기 이름을 크게 쓰더니, 강의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신뢰를 얻기 위한 행동인 듯 했다. 내 친구는 옆에 앉아서 바람을 넣고 선배란 사람이 와서 설명을 해주는데, 암기한 듯 내용을 속사포처럼 내뱉어서 정신 안 차리면 쓸려갈 판이었다.

 

친구는 그 선배를 마치 '신'처럼 받들면서 나에게 깍듯하게 대하라고 했다. 돈이 명예와 권력을 흔드는 세계였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지 이해가 안 갔다. 결국 친구를 데려와서 그 돈을 내가 먹는다는 거 아닌가? 호기심에 2시간쯤 설명을 들었지만, 대판 싸우고선 밖으로 나왔다. 그날 인간적인 배신감에 잠을 설쳤다.

 

우린 글을 써보겠다고 같은 학회에서 공부를 했다. 꿈을 먹고 살았고, 또 열정이 있었다. 그랬지만 여자 동기 세 명 중 한 명은 공무원 준비, 한 명은 다단계, 다른 한 명인 나는 백수다.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해보는 거다. 하지만 나는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벼랑 끝에선 취업 준비생들의 돈을 갈취하는 그런 사회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는 학자금 대출로 500만 원을 받고, 그 뒤에도 대출을 한 번 더 받았단다. 친구는 여행도 보내주고, 엠티도 자주 가고 재미있다고 하지만, 얼굴은 이미 생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짝사랑하는 오빠를 소개시켜주는 줄 알았던 순진한 날에 내린 벼락같은 거짓말. 그래도 그 친구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돈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꿈을 찾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돈이 좋고, 돈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사람을 팔아서 돈을 버는 다단계는 너무 나쁘다.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한 걸까?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응모작입니다. 


태그:#다단계, #잊을 수 없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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