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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인수 마을 곳곳을 누비며 쓰레기를 줍는다. 붉은색 조끼를 입고 수십 명이 활동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지나치는 이웃들은 구청이나 후원단체에서 돈을 받고 청소하는 줄로 생각하기 싶지만, 이들은 순도 100% '자원봉사자'다. 회비까지 내면서 활동한다.

 

60~70대 할아버지들이 마을 고샅을 누비는 사이, 이들을 파송한 작은봉사원(원장 성영모)에서는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청소하러 나간 30여 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기 때문에 미리 밥상을 차려놔야 한다.

 

왁자지껄 점심을 치른 뒤에는 비슷한 연배의 노인네들이 줄지어 방문한다. 비누 같은 생필품을 타가기 위해서다. 작은봉사원이 직접 만들어 나눠주는 비누는 때를 잘 빼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인기가 좋다. 이렇게 매주 월요일 작은봉사원은 북적거린다.

 

월요일마다 마을 청소하는 어르신들

 

작은봉사원은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일손이 필요한 지역 단체에게 파송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냥 사람만 보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이 약속대로 일터에 나왔는지, 일은 제대로 하는지 살피기 위해 일일이 찾아다니며 확인한다.

 

혹여 봉사자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대타 요원을 확보해 보내는 '애프터서비스'까지 확실하게 책임진다. 이 일은 베드로자원봉사자후원회(베봉회·회장 박요섭)가 맡는다. 작은봉사회는 활동, 베봉회는 지원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성 원장과 박 회장이 부부기 때문. 박 회장이 평생 공무원으로 살다가 퇴임하면서 두 사람은 천주교 봉사 단체에서 활동했다. IMF사태 이후 부쩍 늘어난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지속해서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 2000년에 베봉회를 만들었다.

 

 

처음엔 사무실도 없이 수유 지역 복지관 등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자동차가 사무실이고 회의실이었고,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었다. 꾸준히 봉사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1년을 못 버티고 떠나기 일쑤였다.

 

"봉사도 신용이 우선이다. 봉사자 보낸다고 하면 단체들은 그 사람이 할 일을 준비해놓고 있는데, 가지 않으면 낭패를 봐. 그런 일이 반복되면 봉사를 반기지 않아. 차라리 돈을 주고 사람을 쓰고 말지. 그래서 단체들에게 내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고 계약서까지 체결했어."

 

돈을 받지 않고 봉사하는데 약속 꼭 지키겠다고 계약서까지 쓰는 낮은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박 회장은 믿음을 주지 못하는 봉사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봉사를 하면 하루 이틀 반짝 일할 게 아니라 최소한 반년에서 1년을 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하겠다고 찾아온 이들은 박 회장이 내세우는 정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동안 600명이 거쳐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박 회장이 말한 대로 봉사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봉사자들은 회비도 내야 한다. 회비는 매월 5000원이고 이 돈은 봉사자들 식비로 쓰기에도 빠듯하지만, 봉사하는데 돈까지 내라고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가입비 만원도 내야 한다. 박 회장은 "참여하겠다고 서명하면 몇 번 오다가 말아. 그런데 가입비를 내면 1년을 버티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돈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는 생각을 경험으로 확인한 것이다.

 

"65살은 넘어야 제대로 봉사한다"

 

 

박 회장과 성 원장은 봉사자가 최소한 65살은 넘어야 안심한다고 입을 모은다. 젊은 사람들은 돈 벌어 가족 지키느라 바쁘고, 나이 들어도 돈 벌려는 욕심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면 조금 봉사하다가 괜찮은 일자리가 나면 떠난다. 손자까지 어느 정도 키운 뒤에야 돈 욕심이 줄고 그래야 제대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에 맞는 말인지 따지는 건 부질없다. 두 사람이 10년 가까이 사람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체득한 견해로 이해하면 족하다.

 

"내 나이가 70인데, 자원봉사자 중에서는 막내 축에 들지. 제일 나이 많은 분이 83세야. 그분은 10년 동안 꾸준히 봉사하셔. 60짜리들만 해도 잘 안 오더라고. 한둘 왔다가도 금방 떠나고. 세상에서 고민할 게 많은 거지 뭐."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지난 2003년부터는 사비를 털어 전세로 사무실도 임대하고 제법 봉사단체다운 모습도 갖췄다. 그리고 2005년 지금 인수동 북부시장 근처에 가정집을 얻어 사무실로 꾸몄다. 얼마 뒤에는 집주인이 권해 아예 집을 사서 2층은 박 회장 내외가 쓰고 있다. 아들 부부에게도 도와달라며 인수동으로 이사오게 만들었다. 컴퓨터 작업은 며느리가 도맡아하고, 자원봉사센터 일도 돕고 있다.

 

가족이 돕더라도 제법 돈이 들어갈 텐데 어떻게 돈을 마련하느냐 물었다. 공무원 출신이라 연금 타는데 그 돈을 조금씩 쓴다고 했다.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그러는데, 이일도 하다보면 즐겁다고.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연금 털어 운영비 충당

 

 

돈이 풍족하지 않기에 독거노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비누 정도다. 그것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국수 잔치를 벌인다. 100여 명이 한 끼 먹는데 5~6만 원이 드는데, 봉사자들 가운데 여유 있는 사람들이 내놓는다고 한다. 더러는 둘이 합쳐 내기도 한다. 그러면 잔치하는 날 작은봉사원 현관 옆에 누가 돈을 냈는지 알리는 방을 붙인다.

 

"얼마나 좋아. 봉사도 하고 기부하고 인사도 받고."

 

봉사하면서 늙어갔고, 이제는 점점 힘에 부친다고 했다. 그래서 한 주에 세 번 마을을 청소하다가 월요일 한 번으로 줄였다. 여러 곳에 봉사자를 파송하던 것도 올해는 무의탁 아동을 돌보는 혜솔의집 한 곳만 보내고 있다. 어쩌면 동네 청소도 내년에는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정들었으니까"라고 답한다. 봉사자들끼리 정이 들어 그 맛으로 서로 만나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태그:#작은봉사원, #베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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