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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보! 나 있잖아?'

 

함께 살면서 아내가 나를 가장 감동시킨 말이다. 아내와 나는 결혼 26년째다. 아내는 태어나 장인 장모 슬하에서 자란 만큼의 세월을 나하고 살았다. 다투기도 했지만 사랑한 날이 훨씬 많았다.  유행가 가사를 보고 따라한다고 남세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침에 항상 먼저 일어나는 나는 아내가 옆에서 잠자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특히 외롭고 힘들 때면 더더욱 의지가 된다. 나이 들었다는 느낌이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조그만 소망이 있었다. 나는 못하지만 내 아내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했고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도 피아노 수업을 한다는 얘기에 점수를 더 줬다. 나 또한 가끔 클래식이나 명곡을 들으며 가슴 설렜던 기억이 있어 언젠가 기회가 오면 악기를 연주할 수 있기를 꼭 바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합격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포기하고 공사판에 일하러 다니던 때,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사이먼 &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를 듣기만 하면 가슴이 설렜다. 관심이 있어 가사의 의미를 알았을 땐 슬픈 내용과 함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묘한 울림이 들려왔다.

 

잉카족의 마지막 추장인 투팍 아모르(Tupac Amaru)가 죽어 콘도르가 돼 눈 덮인 안데스 산맥 하늘을 마음대로 날며 비상하는 모습, 인디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내용의 슬프고도 장엄한 내용과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여기 저기 날아다니는 백조처럼

자유롭게 항해하고 싶어

 

넓은 곳으로 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슬픈 일만 전할 뿐이야. 슬픈 일이지

 

조그만 길거리가 되는 것보다는 숲이 될 거야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10월 31일은 내가 색소폰을 배운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2007년 10월 31일 “내가 과연 저걸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하며 학원에 들어섰는데 학원 선생님이 “환갑이 넘은 사람도 정년퇴임 후 색소폰을 배워 양로원에 가서 봉사하고 자신도 즐기는 분도 있어요”한다.

 

내가 직접 색소폰을 배우겠다고 나선 것도 '아름다운 가게' 행사에 우정 출연한 65세 사장님의 색소폰 공연을 보고 나서,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그렇게 멋지게 사십니까?”하며 물었을 때 학원에 가서 배우라는 안내 덕분이다. 또한 아내는 피아노, 아들은 클라리넷, 딸은 플루트를 하고 무대에 섰는데 나도 음악가족으로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첫날 도레미파…로부터 시작해 ‘학교종이 땡땡땡, 나비야 나비야’ 등등의 초등학교 노래를 배우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퇴근만 하면 바로 학원으로 갔다. 한곡, 두곡 유행가를 배우며 어느 정도 운지가 잡히자 ‘철새는 날아가고’를 운지만 따라가며 그냥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지만 내손으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과 기쁨에 열심히 배웠고 욕심이 생겼다. 학교 축제에 출연해서 공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원장에게 부탁했더니 아직은 무리지만 한번 해보자는 대답이었다. 1년 배운 실력으로는 안될 거라는 염려와 해낼 수 있을까? 아니 나는 해낼 수 있어! 라는 자기최면을 걸며 도전해 보기로 했다.

 

축제에 출연하기로 결심하고 두 달 전부터 열심히 연습했다. 곡목은 ‘마이웨이’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다. 마이웨이는 아내가 추천한 곡이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내한테 내 맘을 전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마이웨이는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곡이다. 특히 가사가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더욱 애착이 간다.

 

난 충만한 삶을 살았고,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며 돌아다녔지만,

그보다 훨씬 더 굉장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을 겪는 도중

의심이 생길 땐 전적으로 신용했다가도

딱 잘라 말하기도 서슴지 않았어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나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해냈던 거야

 

사나이가 사는 이유가 뭐고,

가진 것이 과연 뭐겠어?

그 자신의 주체성이 없다면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거지

비굴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진실로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게

진정 남자 아니겠어?

 

3년 전 부당한 권력이 부당한 법으로 나를 짓밟았을 때 치를 떨며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루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설날에 입으라고 권하는 한복도 안 입던 내가 다음날부터 한복을 입고 출근했다.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의미였다. 출근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일만 하고 있었고 동료들은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한 열흘쯤 수염도 안 깎고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 나를 안고 울면서 말했다.

 

 

 

여보! 당신이 왜 잠을 못 자? 당신이 패배자야? 당신은 진정한 승리자야. 부당한 권력에 타협하지 않았을 뿐이야. 부패한 자들이 문제지. 부당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 싸워. 여보! 나 있잖아?

 

분하고 억울해 치를 떨며 잠 못 자고 있었지만 직장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고 가족 문제까지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아내의 동의가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아내의 말 한마디는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런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살아오면서 아내한테 여러 번 좋은 얘기도 들었지만 이 말 만큼 나를 감동시킨 말은 없다.

 

내가 진정 힘들어 할 때 같이 힘들어 해줬고 그 당시 아내가 깰까봐 조심해서 몸을 뒤척일 때 아내도 똑같이 뒤척이는 모습만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친구 말마따나 “차라리 타협을 하고, 네가 부당한 것을 끊었어야 했다”라는 말에 일면 수긍이 가기도 했다. 석 달 정도 잠 못 들고 증오심에 시달리며 심신이 피폐해졌던 때를 생각하면…

 

당시 <연합뉴스>와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내 사건이 기사화됐고, 그 사건은 나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돼 현재는 시민운동 대표가 됐다. 이후 도덕성과 정당함은 내가 어디에 있건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다음해 8월 15일 나는 부당한 권력의 종속 변수가 아닌 독립된 주체라는 의미에서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썼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기사는 나를 흥분케 해 잠이 안 왔다. <오마이뉴스>는 내 안의 사회정화에 대한 의지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가 됐다.

 

지금 시간이 새벽이다. 나는 편안히 잠자는 아내에게 가볍게 입맞춤하고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아내는 내 안의 포로가 되어 아니 서로의 포로가 되어 가슴속에서 나이만큼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나는 원장한테 직접 색소폰 소리를 녹음 해달라고 말해 차를 타고 오갈 때 들으며 귀에 익혔다. 귀에 익히고 아름다운 소리 내는 법을 배워 연습한 마이웨이는 그런대로 됐지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하는 것은 초보자로서는 어려움이 있었고 자주 틀렸다.

 

바장조의 서정적 왈츠인 이 곡의 색소폰 연주는 시플랫을 표현하기 위한 특별한 운지법이 필요하다. 한 손가락으로 두 코드를 잡고 있어야 하니 초보자로서는 힘들고 더군다나 첫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해왔다.

 

공연 전날 시민회관에서 가진 리허설은 나를 정말 불안케 했다. 틀리는 운지가 계속 틀렸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서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지도받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또 다시 연습했다. 수백번 연습한 입술은 터질 것 같이 쓰라리고 손가락 끝이 먹먹했다.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된 나는 물을 열 번쯤 마셨다. 화장실도 몇 번이나 갔다. 토론이나 무대에서 사회를 본 경험도 있고 자신도 있지만 색소폰 운지는 기능이다. 후회막급이다. 치기였을까? 아니면 만용?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도 “선생님 떨려 죽겠어요”한다. 심지어 어느 여학생은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하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다. 나를 소개하는 사회자들의 소리가 들리고 자연스럽게 무대에 섰다. 무대 체질일까? 오히려 담담해지며 두 세 번의 실수를 제외하고 괜찮게 해낸 것 같다. 내년에는 훨씬 더 잘할 수 있겠지. 독수리가 비상을 꿈꾸듯!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흐트러졌던 내 마음을 평정심으로 돌아오게 했고, 색소폰 연주는 미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안내했다. 앞으로 음악으로도 사회봉사를 할 예정이다.

  

‘마이웨이’. 내 길을 간 것에 후회는 없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드디어 해냈다. 나로서는 아내에게 첫 색소폰 연주를 통해 사랑을 전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가을노래' 공모 기사 입니다.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가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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