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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부대가 주둔했던 로스팔로스 가는 길. 고원지대에 끝없이 초원이 펼쳐져 있다.
 상록수 부대가 주둔했던 로스팔로스 가는 길. 고원지대에 끝없이 초원이 펼쳐져 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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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로 뜨거운 햇볕이 쏟아진다. 더운 날씨다. 한참을 달리니 로스팔로스 28km, 뚜뚜알라 5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에는 녹이 검버섯처럼 피어 있다. 그래도 방향을 가리키는 데는 지장이 없다.

로스팔로스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의 상록수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곧장 뚜뚜알라로 가지 말고 로스팔로스를 거쳐서 가기로 한다. 상록수부대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로는 폭이 점점 좁아진다. 도로 옆으로 나무가 보이고 집이 보이고 초원이 보인다. 도로만 좁을 뿐 그 옆은 넓다. 사람이 다니는 곳이 더 넓다는 게 마음에 든다.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는 차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사거리라고 해야 하나. 중심에는 떼뚬 신전 모양의 탑이 놓여 있다. 로스팔로스라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표지판은 없다. 상록수부대의 흔적도 없다. 'RUA MARUKA KOREA'라고 쓰인 표지판 하나를 봤을 뿐이다.

로스팔로스 입구 빛바랜 표지판에서 만난 'KOREA'. 로스팔로스 부근에 주둔했던 상록수 부대 덕분에 한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로스팔로스 입구 빛바랜 표지판에서 만난 'KOREA'. 로스팔로스 부근에 주둔했던 상록수 부대 덕분에 한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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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전깃줄이 모두 이어질 날은?

물소 한 마리가 어느 집 담벼락 아래 앉았다가 긴 울음을 내뱉는다. 길 한쪽으로 노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하교 길인 듯한 아이들이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 앞에 모여 있다. 동전을 내고 먹을 것을 받아드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다. 우리나라 학교 앞의 하굣길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야채무더기를 쌓아놓고 한쪽에 다듬던 여자가 시선이 마주치자 웃는다. 야채를 가리키며 사란다. 한 무더기쯤 사주고 싶지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예정이 없으니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도 있다. 탁자 위에 한 무더기의 생고기가 놓여 있고, 한쪽에는 저울과 묵직해 뵈는 칼이 있다. 그래도 이 고기에는 파리가 몇 마리 달라붙어 있지 않다. 딜리의 한 시장에서 본 생고기에는 파리떼가 잔뜩 앉아 있었다. 손을 휘저으면 파리떼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곤 했다. 그걸 보면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 그렇다고 고기를 안 먹은 건 아니지만.

돼지고기를 파는 상인. 동티모르에선 대부분 고기를 이렇게 야외 매대에 놓고 판다.
 돼지고기를 파는 상인. 동티모르에선 대부분 고기를 이렇게 야외 매대에 놓고 판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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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니 전깃줄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는구나, 한다. 점점 더 동쪽으로 갈수록 전깃줄은 보이지 앉는다. 전봇대는 남아 있는데 전깃줄이 없다는 건 전기가 끊어졌다는 의미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철수할 때 전깃줄을 걷어갔다고 했다. 물론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나서서 그런 짓을 했을 리는 없고, 혼란한 시기를 틈타 누군가 민간인이 전깃줄을 걷어간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녹슨 철 전봇대만 도로 옆에 띄엄띄엄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끊어진 전깃줄이 죄다 이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군데군데 파인 도로를 보수하고, 우기에 떠내려간 도로를 다시 잇고, 전깃줄을 다 이으면 동티모르는 지금보다 문명의 혜택을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 봐서는 먼 미래가 될 것 같다.

가톨릭 국가를 지키는 떼뚬 신전

긴 사다리꼴 모양의 떼뚬 신전. 국민의 98%가 카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산간지방에선 민간신앙을 믿는 사람도 많다. 카톨릭 신자라고 해도 민간신앙을 부정하진 않는다.
 긴 사다리꼴 모양의 떼뚬 신전. 국민의 98%가 카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산간지방에선 민간신앙을 믿는 사람도 많다. 카톨릭 신자라고 해도 민간신앙을 부정하진 않는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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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팔로스에도 호텔과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하룻밤쯤 이곳에서 묵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뚜뚜알라였다.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다.

멀리서 떼뚬 신전이 보였다. 긴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을 가진 나무 건물이다. 높이는 십 미터쯤 될까? 딜리보다는 시골 마을로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신전의 모양은 해안지방과 산간지방이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재료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가톨릭교도가 98%인 나라에서 신전이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티모르 사람들에게 가톨릭과 더불어 토속신앙도 지켜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뚜뚜알라에서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참 보기 어려운 것인데 운이 좋게(?)도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떼뚬 신전 아래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이방인이 신기한지 커다란 눈망울 또록또록 굴리면서 우리를 보았다. 아이 두 녀석은 목에 새총을 걸고 있었다. 저걸로 무엇을 맞힐까?

아래에서 올려다본 신전에는 나무장식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림이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신전 위로 어떻게 올라가지? 사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하지만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구경만 했다. 

아이들에게 과자와 사탕을 나누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떼뚬 신전 안에서 놀던 아이들. 신전은 어른들에겐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지만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떼뚬 신전 안에서 놀던 아이들. 신전은 어른들에겐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지만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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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된 도로는 사라지고 흙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호텔이 나온다. 산 위에 세운 호텔이다. 먼 바다까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호텔.

수평선 끝과 바다가 맞닿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저 푸른색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푸른빛에 눈이 부실 따름이다. 아름답다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바다와 하늘이다.

이렇게 전망이 좋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호텔은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채 비어 있었던 것이다. 호텔 건물 옆 부속건물의 양철지붕은 발갛게 녹이 슬어 있었고, 오래도록 사람들이 기거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건물 앞에 놓인 두 개의 미끄럼틀이 적막해 보인다.

바다는 보이나 그 바다에 가려면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 호텔에 묵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이 호텔에서 바다까지 가려면 차를 타고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은 달려가야 한다고 했다. 바다만 바라보려고 사람들은 바다를 찾는 것이 아니지 않나.

호텔 주인은 포르투갈 사람이고, 두 달 전에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포르투갈 사람이 운영하다 문을 닫고 떠난 호텔. 바닷가 절벽위에 위치한 이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다.
 포르투갈 사람이 운영하다 문을 닫고 떠난 호텔. 바닷가 절벽위에 위치한 이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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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호텔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포르투갈 호텔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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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10리터를 위해 3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노인 하나와 아이들이다. 노인과 여자 아이  하나는 슬리퍼를 신었지만 나머지 세 아이는 맨발이다. 자동차가 호텔 마당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타난 것이다. 조개껍질을 엮어 만든 목걸이를 들고서. 드물게나마 우리처럼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가 보다. 물론 방문객의 대부분은 유엔경찰이거나 외국인이겠지만.

여자 아이가 물건을 내민다. 하지만 누구 것을 사주고 누구 것을 안 사줄 수 없지 않나. 그냥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뚜뚜알라 해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한참 걸린단다. 포장된 도로는 이미 끝났고, 남은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산길이다. 그래도 길이 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덜컹거리면서 자동차는 달린다. 길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닭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어, 태극기다. 길 앞에 작은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고, 한쪽에는 유엔기가 다른 쪽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태극기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여기서 상록수부대의 흔적을 만나는구나, 싶었다. 하긴 상록수부대가 철수한 게 2003년이라니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 내전까지 겪은 나라에서.

상록수 부대가 건설한 다리. 다리 오른쪽 편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상록수 부대가 건설한 다리. 다리 오른쪽 편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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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세탁장에서 만난 검고 깊은 눈망울을 가진 소녀.
 공동 세탁장에서 만난 검고 깊은 눈망울을 가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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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가니 마을이 나온다. 공동 세탁장이다. 여자들이 빨래를 하고 있고, 아이 몇이 놀고 있다. 양철을 세워 만든 간이 샤워장도 보인다.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물을 길어다 사용한다고 했다. 일종의 공동우물터인 것이다. 집이 가까운 사람은 괜찮지만 먼 사람들은 물을 길어다 먹으려면 힘들겠다, 싶었다.

우리가 묵은 바닷가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이곳으로 물을 뜨러 온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7km, 왕복 14km란다. 걸으면 세 시간이 걸린다나. 한 사람이 길어올 수 있는 물의 양은 대략 10리터쯤이라고 했다. 10리터의 물을 위해 세 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 물, 참으로 귀하다.

산에서 내려오니 바다가 보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다 건너편으로 자코섬이 보인다. 바닷가로 가니 나무로 만든 작은 배 세 척이 나무에 매어져 있다. 장작이 타면서 나무 타는 냄새를 풍긴다. 남자 서너 명이 앉아 있다. 어부들인가 보다. 어둑해지는 시간에 나타난 이방인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본다.

자코섬에 배를 타고 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다음 날 아침에 배를 빌려 타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동티모르, #뚜뚜알라, #상록수부대, #로스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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