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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아이가 말을 끌고 가고 있다. 수아이 가는 길은 사진에서 처럼 높은 산이 연달아 이어져 있다.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아이가 말을 끌고 가고 있다. 수아이 가는 길은 사진에서 처럼 높은 산이 연달아 이어져 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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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이 가는 산길을 포장하고 있는 인부들. 도로 포장 비용은 일본의 원조로 이뤄지고 있다. 사진 속에선 도로에선 가드레일이 있으나 극히 일부. 대부분의 길은 낭떠러지다.
 수아이 가는 산길을 포장하고 있는 인부들. 도로 포장 비용은 일본의 원조로 이뤄지고 있다. 사진 속에선 도로에선 가드레일이 있으나 극히 일부. 대부분의 길은 낭떠러지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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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이 가는 길은 뚜뚜알라로 가는 길과 많이 달랐다. 뚜뚜알라로 가는 길에는 넓은 초원과 평야가 펼쳐져 있고 바다가 수시로 보이는데, 수아이 가는 길은 그렇지 않았다. 내륙 지방을 가로질러 가니 바다는 보이지 않고 대신 높은 산이 연달아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산은 자동차가 산간도로를 달려 올라갈수록 높아졌고 기온 또한 낮아졌다. 그렇다고 한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산 위에 사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산 아래 사는 사람들과 달랐다. 어느 지점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반소매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라지더니 두터운 겨울 외투나 오리털 파커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여름 나라에서 겨울 나라로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졌다.

여름 나라에서 겨울 나라로 공간이동... 산간지역 기후는 서늘 

수아이 가는 길에 두리 전기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를 만났다. 딜리시에선 이렇게 외국에서 원조로 들어온 옷들 길거리에서 판린다.
 수아이 가는 길에 두리 전기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를 만났다. 딜리시에선 이렇게 외국에서 원조로 들어온 옷들 길거리에서 판린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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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잠깐 쉰 곳에서는 가슴에 '두리전기'라고 새겨진 점퍼를 입은 남자를 보기도 했다. 누가 입던 옷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먼 곳까지 여행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10일부터 11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수아이로 여행을 떠났다. 오전 10시에 김수일 동티모르 대사 인터뷰(아래 박스기사 참조)를 하고 수아이를 향해 출발한 시간은 11시가 얼추 다되어서였다. 수아이 여행에는 EPC의 장근호 이사가 동행했다.

수아이까지의 거리는 170~180km 정도라고 했다. 그 정도 거리라면 몇 시간 걸리지 않아서 수아이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고 어림짐작 했으나, 수아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수아이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반. 길 위에서 8시간 반이나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마우비시 호텔에 머문 시간이 한 시간 반 남짓. 이따금 구경을 하기 위해 길에서 멈춰 섰던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8시간 반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짧은 거리에 비해 시간이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그 대답은 산간도로에 있다. 딜리에서 수아이까지 가는 길은 절반 이상이 포장되지 않았다. 그나마 포장된 도로는 군데군데 파이거나 부서지거나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길 위에서는 아무리 성능이 좋은 지프차라고 해도 제 속도를 내기는 어려운 법이 아니겠나.

현지인 운전기사 아또이는 이 길을 시속 20km 남짓한 속도로 달렸다. 뒷좌석에 앉았던 나는 속도를 얼마나 내나, 하면서 고개를 빼고 속도계를 확인하곤 했다. 물론 전 구간을 그렇게 달린 것은 아니지만 경사가 심하고 커브가 급한 산간도로라면 조심스럽게 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동차가 산간도로를 달릴 때 길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천 길 낭떠러지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그 길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면 목숨은커녕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그래도 산 아래의 풍광은 봐둬야겠기에 계속해서 내려다봤더니 장 이사가 겁이 없다고 놀린다. 자신은 무서워서 못 내려다보겠다면서.

위험천만한 산간도로에는 가드레일이 아예 없었다. 자동차가 커브 길을 돌다가 그대로 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명색이 2차선인 도로는 커다란 트럭이 한 대만 달려도 길이 꽉 차는 것 같았다. 아또이는 커브 길을 돌 때면 미리 경적을 울렸다. 커브 길 저쪽에서 자동차가 달려오다가 미처 이쪽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아이 가는 길에 거쳐가는 마우비시의 호텔. 마우비시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수아이 가는 길에 거쳐가는 마우비시의 호텔. 마우비시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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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오디오, 닭... 그리고 사람. 동티모르에선 트럭이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위험한 길도 저렇게 즐기며(?) 간다.
 기타, 오디오, 닭... 그리고 사람. 동티모르에선 트럭이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위험한 길도 저렇게 즐기며(?) 간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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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산간도로, 트럭 짐칸 탄 사람들은 여유만만

그렇게 위험한 길인데도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시외버스나 트럭을 개조한 버스들은 잘도 달린다. 차에 탄 사람들은 위험한 산길이 조금도 무섭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트럭 뒤에 올라탄 사람들은 더 위험할 텐데 말이다.

아무튼 조경국 기자와 나, 장 이사, 아또이는 목숨을 걸고(?) 이 길을 달렸다. 지나고 나니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나보다.

뚜뚜알라 여행에 동행했던 현지인 운전기사는 아자노였다. 이번 수아이에 동행한 운전기사는 아또이. 운전기사가 아자노에서 아또이로 바뀐 것은 아자노의 손 때문이었다. 수아이에 가는 날 아침에도 아자노는 엘리자베스 호텔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여행 준비까지 해서.

그런데 아자노의 오른손이 심상치 않았다. 뚜뚜알라 여행길에서도 아자노의 손은 퉁퉁 부어 있었는데 이 날 아침에는 더 심했다. 아자노에게 손을 가리키며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냥 씨익 웃는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전 날 뚜뚜알라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뚜뚜알라에 병원이 있기에 들르려고 했는데 아자노가 거절해서 그냥 돌아왔던 것이다. 그 때 억지로라도 병원에 데려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후회했다.

김수일 대사 인터뷰가 끝난 뒤에 차를 타니 아자노의 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우리가 인터뷰 하는 사이에 전흥수 고문이 아자노를 끌고 병원으로 갔단다. 전 고문의 설명에 따르면 아자노가 손을 다친 것은 3주전의 일이었고, 곪을 대로 곪아서 째고 고름을 짜냈다고 한다.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것은 아무래도 치료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치료비와 약값은 전 고문이 대신 냈다고.

마우비시에서 수아이 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트럭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위쪽은 마우비시 공동묘지.
 마우비시에서 수아이 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트럭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위쪽은 마우비시 공동묘지.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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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퉁퉁 부은 것도 감추고 운전을 했던 아자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아픈 것도 참았을 것이다.
 손이 퉁퉁 부은 것도 감추고 운전을 했던 아자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아픈 것도 참았을 것이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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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 붙잡고 운전했던 아자노,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장 이사가 아자노의 손을 보고 그 손으로 수아이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렌트카 회사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운전기사를 대신 보내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운전기사는 아또이로 바뀌었다.

아자노는 식사를 할 때나 차를 마실 때 우리와 대부분 같이 있었다. 사흘쯤 계속해서 같이 다니다 보니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하긴 몸짓은 세계적인 공통언어 아닌가.

그런데 아또이는 달랐다. 식당에 가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물론 음식은 같이 먹었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사흘을 내리 같이 지냈다고 그 사이에 익숙해진 것일까. 아자노를 그의 집 앞에 내려주었을 때 괜히 미안하고 서운했다.

"동티모르 희망은 에너지 분야 개발 통해 국부 창출하는 것"
[인터뷰] 김수일 동티모르 대사
김수일 동티모르 대사
 김수일 동티모르 대사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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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에서는 해안을 따라 대사관들이 늘어서 있다. 호주대사관, 미국대사관, 일본대사관 등이 눈에 띄는데 그 중에 한국대사관도 있다. 우리나라는 동티모르가 독립을 하는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해 2001년 6월에 대표부를 설치했고 2002년 8월에 대사관으로 승격됐다. 현재 김수일 대사가 공관장으로 있다.

지난 10월 10일, 동티모르 한국대사관에서 김수일 대사를 만나 동티모르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 대사는 동티모르에 대해 세계에서 이렇게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생활환경이 열악하며 자연환경이 척박한 곳은 드물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아프리카에도 이렇게 낙후된 곳은 없을 것이라며 동티모르가 아프리카보다 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수일 대사 인터뷰 전문.

- 동티모르에 간다고 하니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티모르 국내정세는 어떠한가?
"2006년 내전으로 불안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동티모르에는 현재 유엔경찰 3천여 명과 ISF라고 하는 호주·뉴질랜드군이 중심이 된 국제안전군 1천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유엔경찰은 현재 44개국에서 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6명이 와 있다. 이들이 치안이나 민정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유엔이 치안유지를 한다면 현지(동티모르) 경찰의 역할은 무엇인가?
"현지경찰은 규모가 크지 않다. 2천 명 정도? 13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군도 현재 800여명 정도다. 이들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우선 숫자가 적다는 것이고,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이나 경찰의 창설 역사가 6년밖에 안되어 역량이 개발되지 않았다."

- 동티모르의 정치상황은 어떤가?
"이 나라의 정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역주의다. 종교는 가톨릭 하나라 갈등은 없지만 동서간의 갈등이 상당히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서쪽은 딜리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쪽을 말하고 동쪽은 예전에 반 인도네시아 투쟁을 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역사적인 과정에서 서로 앙금과 갈등이 존재해왔다. 현재 경찰은 서쪽 사람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군은 과거 게릴라군 저항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06년에 군·경간의 충돌이 이뤄진 것을 내전이라고 하는데, 한 껍데기 벗겨서 보면 동서간의 충돌이자 갈등이었고, 지역주의 갈등이었다. 내전이 결국에는 동·서 주민들의 충돌로 번졌다. 이것이 아직도 수면 아래서 작동하고 있다."

- 현지에 와서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큰 것 같다. 어떤가?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산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최근에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산업이 전혀 없어 실업률이 높고 그에 따라 빈곤현상이 수반되고 있다. 빈곤하니 유아사망률이 높고 평균 수명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것들에서 사회불안이 유래된다."

- 동티모르에는 석유나 천연가스 등의 자원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떤가?
"석유나 천연가스 등의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는 개발되었으나,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다고 한다. 동티모르의 유일한 희망은 에너지 분야의 개발을 통해서 국부를 창출하는 것인데, 관련 사업인 건설사업이나 그 외의 LNG, 플랜트, 석유화학 쪽의 관련 사업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5년에서 10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 당장 몇 년 내에 가스파이프 라인이 연결된다거나 서플라이 베이스 기지가 건설된다는지 LNG 플랜트가 건설된다든지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교육수준은 어떤가? 여행을 다녀보니 초등학교도 많고 학생들도 많았다.
"교육은 세계 평균보다 취학률이 낮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큰 변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전을 겪은 뒤 치안이 불안한 것이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빈곤이다. 아무리 의무교육이라고 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돈이 들 수밖에 없다. 학용품도 필요하고, 도시락도 싸야 하는 등 수업 외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어려운 것으로 안다."

- 대사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외교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에서 하는 것이다. 우리의 최대 외교과제는 에너지 자원 확보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에너지 고소비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하다. 가급적이면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동티모르는 에너지 자원 부존량이 있으므로 이곳을 중시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30여 개의 에너지 거점 공관을 운용하는데 우리 공관이 그 중 하나다. 에너지 외교적인 측면에서 할 일이 많다. 13일 지식경제부 장관이 와서 동티모르와 14일에전략적 관계를 수립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한다. 이 나라(동티모르)에서 외국정부와 맺는 에너지 분야 최초의 MOU로 외교적인 큰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동티모르) 대외원조 규모가 1/20밖에 안 된다. 후진국에서는 대외적인 원조가 양국관계에 영향을 많이 미칠 수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원조폭탄'을 쏟아 붓고 있다. 중국은 대통령궁을 지어주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원조를 제공하는 우리나라가 동티모르와 에너지 분야의 파트너십 관계를 도출해낸 것은 우리 외교의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
"나는 집사람과 함께 와 있지만 다른 대사관 직원들은 가족을 동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월에도 대통령이 저격당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환경도 중요한데 그런 여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총체적으로 생활환경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레저나 문화시설 등이 전무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 직원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고 있다."

- 동티모르의 경제발전 가능성은 어떻다고 전망하나?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독립) 6년 만에 상당히 성공을 했다. 민주주의의 지표는 수십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정치로 다당제, 정당성립의 자유, 언론의 자유,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 등을 척도로 봤을 때 이 나라는 다 갖추고 있다. 물론 유엔에서 멘토를 해줘서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제는 최빈국이다. 경제발전이 되어야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낙관할 수 있다. 경제발전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내전이 재발한다면 어렵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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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동티모르, #수아이, #김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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