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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색딱따구리 지난 19일 광양백운산 억불봉 가는 길에 딱따구리를 만났습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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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입니다. 가을과 겨울이 겹쳐지는 산골짝에는 아직도 단풍이 곱기만 합니다. 민주엄마는 갑자기 등산을 가자고 합니다. 평소 집 가까운 가야산(광양, 497m)에 가기도 싫어하는 양반이 오늘(19일)따라 백운산(1,218m)을 가자고 하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산을 오르는 일이라면 온갖 핑계를 동원하여 거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필자는 평소 뒷산은 자주 다녔습니다. 뒷산보다 2배가 더 높은 높은 산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민주엄마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지나친 염려인양 민주엄마의 모습에서는 먼 거리를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가벼운 짐을 꾸려 정상보다는 낮은 봉우리 억불봉(1008m)을 등산하기로 하였습니다.  

 

첫눈이 내렸습니다

 

지난밤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산길로 접어든 지 20여 분,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쌓인 눈이 보입니다. 접시처럼 오목하게 마른 상수리나무 낙엽 위에 오롯이 쌓인 눈이 예쁘게 놓여있습니다. 첫눈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는 것 못지않게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아직 나무 가지에 달려있는 낙엽은 한잎 한잎 쉼 없이 떨어집니다. 황량한 가지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여전히 천고마비의 가을 하늘입니다. 그러나 숲속을 헤집고 불어오는 바람결에서는 겨울의 예리한 차가움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낙엽이 떨어져 나간 나목가지가 허전하게 보입니다. 하늘을 촘촘히 덮었던 지난 계절의 낙엽은 산등성이로 오르는 작은 길을 덮어버렸습니다. 낙엽은 이정표까지 덮어 잘못 숲속 길을 잃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납니다.

 

겨울로 접어든 숲은 길고 차가운 겨울나기 준비를 마치고 이제는 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처럼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뿌리로부터 작은 싹을 틔워 왕성한 생명력의 보탬을 주었던 잎은 거름으로 그 뿌리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딱따구리와의 첫 만남

 

산길을 접어든 지 제법 되었습니다. "탁탁"하는 소리가 숲속에서 메아리치듯 들립니다. 가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살폈습니다. 딱따구리 녀석이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녀석과는 첫 만남이지만 딱따구리 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 빨간 깃털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녀석은 암컷 오색딱따구리였습니다. 언젠가 녀석을 꼭 한번은 만나고 싶었습니다.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는 이렇게 직접 만나기는 처음입니다. 어젯밤에 좋은 꿈을 꾸지도 않았는데 첫눈이 쌓인 아침에 녀석을 만나게 되어 더 반가웠습니다.

 

녀석은 긴 부리를 이용하여 상수리나무를 계속 쪼아대고 있습니다. 딱딱한 나무를 숲속이 울릴 정도로 쪼아대는 녀석의 모습에 갑자기 필자의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습니다. 녀석의 단단한 부리로 먹이가 있을 만한 나무 일부분을 한 두 번 쪼아대면 나무껍질이 뚝뚝 떨어져나갑니다. 능숙한 몸놀림에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녀석은 단단한 나무를 뚫기에 적합한 특수한 뇌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뾰족한 부리가 시속 20~25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나무를 두드리더라도 촘촘한 연골로 이루어진 뇌 근육은 충격을 흡수하여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막는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나무에 수직으로 붙어서 먹이사냥 등 활동을 하는 녀석은 다른 새들과 구별되는 재미있고 독특한 모습입니다. 날카로운 앞발톱과 빳빳하게 내린 꼬리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 아래로는 내려오지 못하고 옆으로나 위로만 움직인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나무에 수직으로 붙어 잠을 자곤 한다고 합니다. 

 

딱따구리의 모습을 더 가까이 보려고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자 나무를 열심히 쪼아대던 녀석은 접근하는 이방인을 알아보았는지 숲속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녀석과의 만남의 거리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는 욕심에 첫 만남은 짧게 끝이 났습니다.

 

백운산 억불봉에 도착

 

오색딱따구리와의 이별을 뒤로 하고 굴참나무가 빼곡히 모여 있는 능선을 오르자 목적지 억불봉이 보이는 노랭이재에 도착했습니다. 지명이 재미있습니다. ‘속 좁은 사람, 깍쟁이’를 ‘노랭이’라고 부르는데 왜 ‘노랭이재’라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속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코앞에 보이는 억불봉으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는 억새평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칼바람에 눈물이 절로 솟아납니다. 조금이라도 더 차가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나무와 바위를 방패삼아 도착한 억불봉. 멀리 섬진강이 보입니다. 어렵게 올랐던 길이 너무나 가깝게 보입니다.

 

지난밤에 내린 눈으로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희끗희끗하게 보입니다. 북쪽 등성이의 벌거벗은 나무들은 차가운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고 있습니다. 남쪽으로 뻗은 봉우리 계곡 쪽으로는 아직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민주엄마의 갑작스러운 등산 부추김 덕분에 첫눈과 오색딱따구리와의 첫 만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딱따구리처럼 쪼아대는 그녀 “민주엄마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태그:#딱따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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