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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달여만에 고향에 갔습니다. 아버지 형제 분들이 일곱이었는데 다들 돌아가시고, 집들만 남아 있습니다. 둘째 큰 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사람이 산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쓸쓸했습니다.

장독대에 남은 옹기는 겨우 두 개였습니다. 장독대에 낙엽만 쌓여 있습니다. 20년, 아니 수십년을 옹기는 장독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된장과 장, 고추장을 자기 몸 안에 가득 담고 주인의 먹을거리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았을 것인데 이제는 어느 누구 하나 동무로 삼는 이가 없습니다.

장독대에 낙엽만 쌓여 있고, 주인잃은 옹기가 두개만 남아 있다.
 장독대에 낙엽만 쌓여 있고, 주인잃은 옹기가 두개만 남아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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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도 무너졌습니다.
 장독대도 무너졌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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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옹기는 주인 사랑을 엄청 받았겠지만 이제는 누구 하나 알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큰 옹기는 주인 사랑을 엄청 받았겠지만 이제는 누구 하나 알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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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까래는 떨어져 나갔습니다. 기와집이고, 서까래로 쓰인 나무는 아주 귀한 나무이지만 온갖 비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기와집에 서까래는 아주 귀합니다. 서까래는 사람으로 치면 갈빗뼈와 같습니다.

서까래가 떨어졌다는 것은 집이 생명을 고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사람 손길이 멀어져 가니 집도 세상을 놓을 모양입니다. 하지만 서까래는 옛 주인이 세상을 놓았지만 생명이란 낳고, 낳는 것이니 또 다른 생명이 자기 주인이 된다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떨어져나간 서까래는 주인 잃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떨어져나간 서까래는 주인 잃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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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휑합니다. 문을 보니 둘째 큰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설만 되면 세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 문을 열면 머리 숙여 오래오래 사시라 했는데 시간은 육신의 생명을 영원히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문만 휑한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휑한 느낌이었습니다. 쇠락한 문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지가 떨어져나갔습니다. 주인이 있었다면 벌써 새로운 한지로 갈았을 것인데 겨울이 와도 그냥 그대로입니다.
 한지가 떨어져나갔습니다. 주인이 있었다면 벌써 새로운 한지로 갈았을 것인데 겨울이 와도 그냥 그대로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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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로 돌아갔습니다. 흙돌담이 무너졌습니다. 흙돌담은 얼마나 넘어 다녔는지 모릅니다. 넘다가 아버지와 큰아버지께 꾸중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때는 높고 높아 어떻게 넘어갈까 걱정했는데 이제는 누구 하나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흙돌담이 무너졌습니다. 주인 없는 집은 도둑도 그냥 들어올 수 있습니다.
 흙돌담이 무너졌습니다. 주인 없는 집은 도둑도 그냥 들어올 수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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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놈" 하면서 꾸중할 사람도, 높은 흙돌담을 넘을 걱정도 없습니다. 꾸중할 사람은 생명을 놓은 지 20년이 지났고, 흙돌담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큰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흙돌담이 낮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바람이 이루어졌지만 가슴만 아릴 뿐 기쁘지 않았습니다.

뒷마루는 추억이 스린 곳입니다. 흙돌담을 넘고 나서, 숨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어른들이 마루에 계실 때 우리는 뒷마루에서 쉬었기 때문입니다. 뒷마루는 온갖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람막이가 잘 되었기 때문에 따뜻했습니다. 쌀가마니, 보리가마니가 쌓일 때도 있었고, 먹을거리가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어른들 간섭없이 노닐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뒷마루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는 뒷마루입니다. 나도 얼마 후에는 뒷마루처럼 세월에게 육신을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뒷마루도 쓸쓸하게 마지막 길을 가고 있습니다.
 뒷마루도 쓸쓸하게 마지막 길을 가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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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팠습니다. 쓸쓸했습니다. 둘째 큰아버지 집을 나오면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때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살아 있는 먹이는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주인없는 집 하늘 위를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 독수리처럼 하늘 위를 훨훨 날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저 하늘을 훨훨 날아가겠지요. 세월에 육신을 맞기고 말입니다. 그 때는 내 육신 때문에 근심, 걱정을 하지 않겠지요. 욕심을 과하게 가지는 것보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게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늘을 나는 독수리 주인 잃은 집 하늘에 독수리가 날고 있다. 독수리는 죽은 자만 먹는 데 이 집도 주인 없는 집이라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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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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