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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광복 첫날인데도 장준하 일행은 무장도 풀지 못한 채 목침대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장준하 일행은 8월 13일에 비행기로 조국 가까이 갔다가 되돌아와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군 비행기가 산동반도를 넘어 황해로 진입해 꿈에 그리던 조국을 향해 날아가고 있던 중에, 한국 진입 중단이라는 비상 명령이 전달되었다. 도쿄 만에 진입하던 미국 항공모함이 난데없이 일본 항공기의 가미카제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일본 정부는 항복 방침을 천명했지만 극렬한 파시스트 군인들이 단독 행동으로 최후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전을 고려하여 회항 명령이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 서안 비행장을 떠났던 비행기가 12시간 만에 되돌아 와 다시 서안 비행장에 내렸을 때, 장준하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장준하 일행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국내 진입이 언제 이루어질지 유동적이니 일단 비행장에 가서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새벽녘에 비행장에 닿은 그들은 구내식당 모퉁이에서 밤을 지새우며 명령을 기다렸다. 지루하고 초초한 시간은 말할 수 없이 더디게 느껴졌다.

장준하는 고향의 그리운 것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는 고향집의 정경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쯤 울타리에 열려 있음직한 호박, 초가 마당에 널려 있을 빨간 고추, 모깃불과 구운 감자, 대추나무와 다듬이질…. 장준하의 뇌리에 있는 고향 풍물들은 하나같이 소박하고 정겨운 것들이었다.

'과연 부모님과 아내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조국에 보답하기 위해 구차한 목숨 부지

그는 8월 17일 모래를 씹는 기분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식당으로 미군 하사관 하나가 들어와 지시 사항을 말했다. 장준하는 가슴이 떨리면서 눈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한국 영공에는 위험 요소가 있어 철저히 대비한 후 출발한다. 기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기와 탄약을 제외한 모든 휴대품을 버려라."

18일 새벽 미군 오에스에스를 포함하여 22명의 대원이 비행기에 올랐다. 고국을 향하는 장준하는 긴장 때문에 몸이 굳어지고 마음은 팽팽해졌다. 그는 긴장으로 목과 정강이가 시릴 정도였다.

아침이 되면서 그들은 맑은 날씨 덕분에 황해를 볼 수 있었고 뒤이어 나타나는 조국의 섬들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이범석은 붉어진 눈자위에 계속 손수건을 갖다 대고 있었다. 그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 심경을 시로 써 남겼던 조선 선비들의 전통을 따르는 행동이었다.

보았다. 우리 바다의 섬들을
왜군의 포화 빗발친다 해도
기체 터지고 이 몸 찢기어도
내 살집 조국 물에 떨어지리라

그는 선배 애국지사들의 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존경했던 김좌진은 높은 수준의 시 창작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반면 이범석의 시는 단순하고 우직한 편이었다. 얼마 전 장준하는 이범석의 책상에서 김좌진의 시구가 적힌 하얀 손수건을 본 적이 있었다.

'아직도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나라에 보답하기 위해서이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한강 하류로 진입했다. 비행기에서는 5분 간격으로 조선에 있는 일본군 사령부로 무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 군사 사절단 국내 진입 중.'

기체가 영등포 상공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답신이 왔다.

'여의도로 착륙할 것.'

일행은 고국의 산과 강과 길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었다. 활주로에는 일장기를 붙인 비행기들이 있었다. 비행기는 격납고 앞의 광장에서 멈추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열려진 문 밖에 조국의 흙과 여름이 있었다.

그들은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 위에 걸쳤다. 일본군에게 전의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장준하도 조국의 바람을 느끼며 문에서 뛰어 내렸다. 한여름의 비행장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착검한 일본군들이 일행을 포위하고 있었다. 방독면을 착용한 일군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왔다. 그들뿐 아니라 격납고에 이르기까지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본군이 전투 자세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일행은 일본군의 포위를 의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포위하고 있던 일군들이 길을 터주었다. 그러자 육군 중장을 필두로 한 일본군 장교단이 그들을 맞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조선군 사령관 스즈키 중장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오?"

장준하 일행의 인솔자 펄즈 대령이 앞으로 나섰다.

"서울 지역의 일본군 무장 해제와 치안 유지를 위해 온 1차 선발대요."
"여러분이 온 이유는 이해하지만 우리는 도쿄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않았소."

"일본 천황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이제부터 도쿄의 명령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 군대 파견 지연하는 미국 

스즈키는 미국 지휘관의 계급이 대령임을 확인하고는, 자기에게는 급한 용무가 있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대신 여의도 경비 사령관 시부자와 대좌를 내세웠다. 시부자와는 나무 그늘 밑으로 일행을 안내하고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포플러 그늘 아래에는 의자와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담배와 맥주와 사이다 등이 나왔다. 장준하는 일본군에게 접대를 받는 것이 도무지 현실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일본군은 목욕물을 준비해 주었다. 장준하는 목욕탕 창문을 통해 조국의 거리를 볼 수 있었다. 노량진 어디쯤 되는 것 같았다. 흰옷 입은 동포들이 오가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그는 조국의 강바람을 상쾌하게 맞으며 걸어 나왔다.

일군 헌병 대위가 장준하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까 보니 일본말을 참 잘하던데 대관절 어디서 배웠기에 그리도 잘하는 것이오?"
"동경에서 배웠소."

"동경이라고요?"
"이미 우리는 3년 전에 동경에 있었소."

장준하는 자신을 미군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장교를 놀려주고 싶었다.

"어떻게 3년 전에 동경에 있을 수가 있었소?"
"우리는 첩보원들이오. 일본에서 보면 스파이지요. 스파이 알지요?"

"아하! 스빠이? 압니다."
"치안이 그렇게 허술했으니 일본이 망한 것 아니겠소?"

일본 장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물러섰다. 일본군은 장준하 일행에게 저녁 식사 후 주연을 베풀어 주었다. 경비사령부 참모장이라고 소개된 우에다 중좌가 그들에게 맥주를 권했다.

"준비하느라 한 것이 이것뿐입니다."

이범석이 끼어들어 뼈 있는 말을 시부자와 대좌에게 던졌다.

"있는 것을 다 차린 것이 이 정도일 정도로 물자가 부족하면서 뭐 하러 전쟁은 그렇게 오래 끌었소?"

일본군 대좌는 머리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아마 우리 군의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이범석은 다음에는 중좌를 가리키며 장난조로 말했다.

"당신은 공군 출신이라고 하던데, 어디 군가나 한 번 불러 보시구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중좌는 일본 공군 군가를 비장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마친 그는 장준하에게 맥주잔을 돌렸다. 장준하는 그 날 생애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다른 사람이 아닌 일본군 장교가 바치는 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준하 일행이 제대로 귀국한 것은 그로부터 무려 석 달이나 지나서였다. 다음 날 장준하 일행은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사령부로부터 귀환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어찌된 일인지 한반도를 방치하고 있었다.

왜 미국이 군대 파견을 지연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미국은 소련군이 북한에 진압하고도 얼마 지나서야 인천을 통해 점령군을 보낸 것이다. 이것은 미소 양국 사이에 사전 약속이 있었다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연말까지 연재됩니다.



태그:#장준하, #이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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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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