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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예감하는 이강국

이강국은 허탈하게 웃었다.

“수임아 저 창 밖을 한 번 보아. 해방이 되었다고 그토록 좋아하던 저 인민들을. 배고픈 우리 인민들, 미· 소가 잘라버린 민족의 허리. 분단이 되어서는 저 인민들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

이강국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김수임에게는 인민이라는 용어가 서먹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거의 매일 거리를 메우는 군중들의 깃발과 플래카드에서 인민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사실 그녀에게는 독립이니 통일이니 자주라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역량이 없었다. 아니 역량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인격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평화롭고 아름다운 개인적 삶일 뿐이었다.

이강국의 말로 보아 그는 자본주의를 시도하고 있는 미군정에 맞서고 있음이 분명했다. 문득 그녀는 이강국을 약올려주고 싶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저는 편안한 일상에 묻혀 민족이나 나라를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당들이 생겨나는 것인지요? 북조선을 편드는 공산당까지 남한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유는 뭔지요?”

“왜 수임이는 다른 당은 다 괜찮고 공산당만 안 된다는 것이지?”
“저는 크리스천이어요. 분단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소련 식 공산주의 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싫습니다.”

이강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는 선생님 독일 유학 얘기를 듣고 싶어요.”

이강국은 김수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악과 철학과 라인강의 나라 독일 말이어요.”
“나치와 가스실의 나라이기도 하지.”

“선생님은 왜 그렇게도 불행한 면만 보시는지요? 선생님은 낭만도 없으세요?”
“낭만이라. 낭만, 낭만. 있고말고. 베를린대학에서 축제 때는 춤도 춰 보았지.”

“어머! 춤이라고요? 누구와 추셨는데요? 걸프렌드와?”
“수임아, 가난한 나라의 고학생을 어느 여자가 사귀려 했겠니?”

“그럼 저하고 춤추실래요?”
“여기서?”
“여기 있음 뭘 해요? 우리 춤추러 나가요.”

김수임은 이강국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강국은 급히 외투를 걸쳐 입었다.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댄스장이 있는 다른 호텔로 옮겨갔다.

“반도호텔에도 댄스장이 있는데 미군이 많아요. 미군에게 쫓기시는 분을 데려갈 수는 없잖아요.”

다음 날 아침 김수임은 이강국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 이강국은 춤출 때 김수임이 보였던 들뜬 언행과 흡족한 표정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는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해 보였다. 조국이 통일되고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된다고 해도 자기는 춤출 때의 그녀만큼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강국은 해방 이후 정신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여운형과 건준에 참여했던 일, 건준이 해체되자 인민공화국에 가담했던 일, 인공 대표 자격으로 김구, 이승만을 만났던 일, 우익 인사들과의 합작회의에 나갔던 일, 그리고 김규식, 안재홍 등과 좌우합작위원회를 발족했던 일 들이 두서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루어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일제 때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할 때보다도 더 일이 풀리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정치적 스승인 박헌영과 모든 일을 상의하며 그의 지시를 받았다. 박헌영은 북에서도 이미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응하여 북쪽만의 정부 수립 작업이 착수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로당과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의 3각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이강국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야학이나 하며 평범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경교장으로 김구를 찾아온 사람들의 면모

장준하 역시 경교장의 한 골방에서 귀국 후 자기가 해 왔던 일을 반추하고 있었다. 그는 김구를 찾아왔던 이른바 우국지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보면 바르고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예절 바른 애국자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국제 정세에 너무도 둔감해 보였다. 그들에게는 한국이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현실을 보는 눈이 없었다. 임주호의 말마따나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도 없었다.

그것은 김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김구는, 자신이 해외에만 오래 있어 국내 사정에 어둡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작 그가 어두운 것은 국내가 아니라 미· 소 강대국의 의중이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손을 떠났다는 임주호의 말은 정확한 것 같았다. 임주호는 미국과 소련이 이미 한반도의 운명을 100% 좌지우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건준 위원장 여운형, 그는 일찍이 청년 시절에 상해 임정에 가담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외모나 학벌 같은 외형적인 화려함에 비해 독립운동의 실적이 미약했다. 물론 이승만보다는 독립운동을 훨씬 적극적으로 한 사람이기는 했다. 그는 해방 직전에 투옥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유언비어 유포 혐의였고 2년 정도 복역한 것으로 장준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베 조선 총독이 치안유지권을 주겠다고 하자 넙죽 받아서 건준과 인민공화국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임시정부에 인공에 참여하라고 권유하고 있었다.

풍채가 좋은 그는 활달한 걸음으로 경교장에 들어왔다. 그는 김구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빠른 시간에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 보였다.

장준하는 무심코 엉뚱한 생각을 하나 해냈다.

‘저 분의 코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여운형은 의미 있는 대화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는 사담으로 일관했다. 그는 자기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그는 식민지 시절 자기희생이 적었던 정치인이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선생님이 들어오신 후 일하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보겠다고 애써 보았습니다.”

김구는 여운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들어오셨으니 제가 할 일은 없어진 줄로 압니다.”

김구는 가볍게 웃으면서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떴다. 여운형은 계속해 이 사람 저 사람의 안부를 물었고 자기가 상해에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말을 했다. 그는 40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진우. 사실 그가 식민지 시대에 한 일 중에서 감동적인 것은 없었다. 그는 김성수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것이 흠이었다. 그는 동아일보와 중앙학원의 중심인물이었다. 조선총독 아베는 치안유지권을 처음 송진우에게 제의했었다. 그러나 송진우는 거절했다. 패망한 일본에게 정권을 인수받을 이유가 없다는 명분이었다. 명분이야 옳지만 그에게는 치안 유지를 맡을 자격이 없었고, 그것을 송진우는 잘 헤아렸던 것이다. 그는 겉으로는 열렬한 임시정부의 지지자였다.

비대한 체구의 그는 짙은 회색 양복을 입어서인지 더 육중해 보였다. 그는 김구를 보자 흥분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침착했던 그의 표정이 일변하더니 금세 달변조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흔들렸다. 김구는 담담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5개조의 건의서를 내놓았다.

1.이번 대전은 민주주의 대 파쇼의 대결이었으므로 우리는 민주통일국가를 완성해야 합니다.
2.조속히 선생님의 친서를 가지고 연합국들에 사절단을 보내 우리의 독립을 승인하도록 해야 합니다.
3.재정 문제는 국내외 유지들의 희사를 받아 해결하면 됩니다.
4.집무 계통의 사무 조직을 하루 속히 완비해야 합니다.
5.광복군을 모체로 국군을 편성해야 합니다.

김구는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구는 누구에게도 지지를 표시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고하셨소”라고 응대했을 따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앞으로 약 15회 정도 더 연재된 후 끝납니다.



태그:#김구, #여운형, #송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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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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