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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에 앉아 있던 나윤숙은 삼선평 정류장에서 일어났다. 돈암장이라고 해서 돈암동 종점에서 내려야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전차 기사에게 물어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평소 존경해 오던 이승만을 만나러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김활란에게 전화를 받은 것은 일주일 전쯤이었다.

"윤숙아, 돈암장에 가서 이기붕씨를 만나 봐."

당시 이기붕은 돈암장에서 이승만에게 충성하며 정치적 기반을 굳히고 있었다.

이기붕이 이승만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금 특이했다. 그는 무능하기 때문에 신임을 얻은 것이었다. 그는 개성, 분석력, 통찰력, 정치력 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승만의 신임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고분고분히 시키는 대로만 했다.

다음으로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는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가 마음 놓고 부릴 수 있는 여자였다. 그렇게 되자 이기붕 부처는 돈암장에서 가장 힘 있는 비서 역을 수행하게 되었다. 원래 주요 비서였던 이는 윤치영 부처와 임영신이었다. 물론 윤치영의 부인과 임영신은 프란체스카보다 유식하고 두뇌도 좋았다.

이승만을 찾아오는 사람들

당시 이승만은 라디오 방송에서 은근히 친일파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도 거듭 일어나는 요인 암살 테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비판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승만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우익 재산가들이었다. 물론 좌익이나 중도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한 번 방문 후 발길을 끊었다. 박헌영은 한 차례, 여운형은 두 차례 이승만을 찾아갔다. 그들의 방문 다음에는 으레 다른 우익 인사들이 찾아와 말했다.

"박헌영도 죽일 놈이고 여운형도 죽일 놈입니다."

그러면 이승만은 이렇게 말했다.

"왜 당신들은 말만 하는 것이지?"

처음 이승만의 경호는 미국 헌병이 했는데, 조금 지나서 한국인 경찰로 대체되었다. 미 군정청은 그에게 롤스로이스 차량을 제공했고 상근 연락 장교를 파견했다. 이승만은 자주 하지의 군정 본부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승만이 폐렴으로 몸져누웠을 때는 하지가 직접 문병을 오기도 했다.

이승만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송진우, 장덕수,  조병옥, 장택상, 이철승 등이었다. 그런데 송진우와 장덕수는 암살되었다. 이후 조병옥은 군정청 내무장관, 장택상은 군정청 수도경찰청장, 이철승은 반탁· 반공의 학생 선봉장이 되었다. 게다가 이철승은 미국 정보기관의 비밀 요원이기도 했다.

이승만과 5분 이상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이승만은 1, 2분도 안 돼 입을 다물라는 뜻으로 자기 두 손을 상대방의 입에 갖다 댔다. 이승만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으응, 모두 죽일 놈이야."

반면 이승만은 미국인과의 대화는 매우 즐겼다. 그는 미국 기자와만 회견을 가졌다. 그는 국내 여론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라디오 주례 방송의 원고를 영어로 작성했다. 왜냐하면 하지의 검열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장과 문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의 문체는 옛날 성경의 것과 흡사했다. 그는 좀처럼 문장을 퇴고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대국민 방송이나 담화의 주제는 지극히 단순한 두 가지였다. 그것은 돈암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과 같았다. 하나는 "반공"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나를 따르라"였다.

이승만의 정치적 주제가 두 가지라면,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의 인격도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서른넷의 나이에 25세 연상 한국인과 결혼한 오스트리아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승만의 생일에 사람들이 가져온 많은 음식들을 주변 사람과 나누는 일이 없었다. 쇠고기, 오리고기 등 수많은 식품이 남아돌아도 직원이나 이웃에게 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시일이 지나 음식들이 부패하면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다음으로 그녀는 돈암장 방문객들에게 전혀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은 한국 남성은 대부분 그녀보다 연상이었다.

"나가요!"
"이곳에 오지 마세요."

그녀는 삿대질하며 송필만을 혼냈고 화가 고희동을 문 밖으로 밀어냈다. 심지어는 안재홍에게까지 노골적으로 푸대접을 했다. 윤치영 부처와 임영신도 그녀의 두 가지 특징, 즉 인색함과 무례함을 잘 알고 있었다.

쿠바라 메논을 구워 삶아라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는 프란체스카에게 무조건 순종했다. 나윤숙이 돈암장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은 프란체스카가 박마리아에게, 그리고 박마리아가 김활란에게 연락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윤숙은 한옥이 즐비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녀가 언덕길을 넘자 긴 돌담이 나타났다. 돈암장 돌담이었다. 대문에서 경비 경찰에게 이기붕의 부름을 받고 왔다고 말하자 경찰이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는 행랑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대궐을 연상시키는 목조건물이 나왔다. 그녀는 운치 있는 돌 조각과 돌계단, 소나무, 기와지붕, 그리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문구가 쓰여 있는 현판을 보며 대청 응접실로 올라섰다.

이기붕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얼마 후 뜻밖에도 이승만이 직접 나타났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영운! 앉아요."

이승만은 그녀의 호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평소 먼 곳에서 우러러만 보던 어른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승만은 나윤숙이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광수의 소개로 안호상과 결혼해 살다가 딸을 하나 얻고 이혼한 상태였다. 그녀는 안호상이 독일 철학박사라는 점이 마음에 끌렸었다. 그녀가 안호상을 택한 데에는 베를린에서 공부한 이강국을 의식한 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재주 있는 문인들이 더러 있었지. 그 이광수씨 지금 어디 있나? 그리고 주요한이도 그렇구."
"춘원 선생과는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며칠 전 이광수를 찾아가 돈암장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이광수는 나윤숙에게 의미 있는 충고를 해 주었다.

"나는 죄인이지. 그러나 그 잘못은 내가 책임질 일이고, 또 져야 옳은 일이지. 다만 나는 조선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슬퍼하는 게야. 또 조선의 앞날이 무서워. 조선인은 사상의 침략을 조심해야 해. 서로의 잘못을 캐내는 데 열을 낼 것이 아니라 잘못을 찾는 대로 서로가 다시는 그런 세상이 안 되도록 정신을 소제해야 된다는 말이지. 이 박사라면 이런 나의 생각을 옳다고 여기실 게야."

이승만은 나윤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여류 시인에게 나라를 위한 중대사를 맡길까 해서 부른 것이야."

이승만이 그녀에게 맡긴 일은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쿠바라 메논을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세부 지침을 준 것은 이기붕과 박마리아였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약 10여 회 더 연재된 후 막을 내립니다.



태그:#이승만, #이기붕, #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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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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