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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논 회유에 간택된 혼자 사는 젊은 여류시인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을 뒤집고 싶었던 미국은 소련에게 미소공동위원회를 제의했다. 하지만 이미 생각이 달라진 두 강대국은 공동위원회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우군 세력이 많은 유엔으로 한국 문제를 가져갔다. 그래서 한국임시위원단이 파견된 것이었다.

위원단 단장인 메논은 중립국 인도인이었다. 약소국의 설움을 이해하는 그는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단장의 반대는 남한 총선거 안을 유엔 결의로 조기에 관철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미 군정청과 이승만은 메논을 회유하는 공작을 벌이기로 했다. 여기에 혼자 사는 젊은 여류 시인 나윤숙이 간택된 것이었다.

나윤숙보다 열 살 이상 연상인 메논은 문학을 동경한다고 말하는 외교관이었다. 나윤숙은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위원단 환영 만찬에서 조병옥의 소개로 메논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시인과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메논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메논의 보고를 받은 유엔 소총회는 남한만의 총선거 안을 가결시켰다. 이 일로 해서 나윤숙은 일약 김활란 이상의 실력을 가진 여인으로 변신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만들어 준 메논이 고마웠다. 훗날 그녀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를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남한 단독 선거는 이승만의 지휘로 조병옥과 장택상과 나윤숙 등이 공작을 벌여 성사된 것이었다. 이승만은 기대했던 바를 달성하게 된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김구는 민주주의의 파산을 세계에 선고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국적으로 단독 선거안에 대한 반대 운동이 격화되었다. 그것은 분단을 고착화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지 유엔에서 단독 선거안이 통과된 그 날부터 강원도와 전라도 일대의 전신· 전화선이 절단되었다. 한편 전북 5개 군에서 격렬한 반대 항쟁이 일어났다.

4월에는 제주도 전역에서 항쟁이 일어나 한라산 유격전으로 변모되었다. 이 4·3 항쟁은 토벌대 측 발표만으로도 사살 8천 명, 포로 7천 명, 그리고 민간인 사상 3만에 이르는 대규모 참변이었다. 한편 여수와 순천에서는 제주도 토벌대 파견을 거부하는 군인들이 일으킨 이른바 '여순항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탄압이 이루어진다.

적산가옥에 만든 '미러라운드'

나윤숙은 일본인의 호화 저택을 적산 가옥으로 불하받았다. 그녀는 이곳에 '미러라운드'라는 이름의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주한 외교사절과 군정청 관리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그들은 밤마다 술을 마시고 댄스파티를 열었다.

나윤숙은 학력과 외모를 갖춘 한국 여인들을 미러라운드의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소리 없이 퍼진 소문으로 이 모임에 지원 여성이 쇄도하여 한때는 이화여전 출신만 1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이화(梨花)'의 기풍은 후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건국 후 미국 해군사관생도들이 항해 실습 차 인천에 와 정박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함상 파티를 열면서 한국의 명문여대에서 파트너를 구했다. 그런데 이화여대에서는 60명으로 인원이 제한된 파티에 매년 지원자가 넘쳐났던 시절이 있었다.  

김수임이 베어드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은 미러라운드에서 함께 춤을 추고 나서였다. 그 사이 베어드는 대령으로 승진해 미 군정청 최고위 정보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짝사랑했던 한국 여인 임수경을 한 차례 정식으로 만났고 이후에도 반도호텔에서 몇 번 우연히 마주쳤다. 그러나 임수경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의 문을 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윤숙은 김수임이 사교 클럽에 처음 온 날,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티를 열어 주었다. 김수임은 중앙 상석에 앉았는데 그녀 옆에는 베어드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윤숙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메논 회유를 위해 배운 어설픈 영어로  말했다.

"바쁜 일정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수임 양은 이화여전 재학 때부터 다재다능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같은 여성인 저도 반할 만큼 저렇게 청초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마음씨가 더욱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 오신 모든 여성분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자 나선 이 나라의 엘리트들입니다. 낯선 이국에 오셔서 고생하시는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마시고 필요한 것을 여성들에게 말씀하십시오."

나윤숙은 김수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끌었다. 김수임에게 한 마디 하라는 것이었다. 김수임은 얼굴을 붉히고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갔다.

"감사합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은 여성입니다. 재능은 없지만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베어드는 냅킨으로 입언저리를 닦으며 김수임을 흘금흘금 보고 있었다.

베어드, 임수경 대신 김수임을...

술과 식사가 끝나자 어김없이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김수임은 모처럼 맞이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녀에게 많은 미군이 춤을 신청했다. 그녀는 한 번도 머뭇거림이 없이 춤 제의를 받아들였다. 물론 그녀에게 춤 제의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베어드였다. 뿐만 아니라 베어드는 나윤숙과 김수임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들은 일주일 후로 약속을 잡았고 베어드는 일주일 후 김수임의 집에 리무진을 보냈다. 리무진은 아현동 골목길에 있는 김수임의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미군 운전병은 골목길 아이들에게 껌과 초콜릿을 나눠 주고 있다가 김수임이 나오자 급히 다가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차안에는 나윤숙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이승만 박사도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실력자야. 나야 들러리로 가는 것이니 네가 잘 해야 한다."

리무진은 베어드의 사택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베어드는 셔츠 차림으로 한국 여인들을 맞이했다. 그는 요리사를 보낸 후 자기가 직접 서브하며 두 여인을 감동시켰다. 식탁에는 김치와 식혜도 놓여 있었다. 그는 여성용이라며 순한 칵테일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김치와 깻잎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베어드는 손으로 김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김수임은 베어드의 예상대로 깔깔 웃었다.

"미스 김, 호텔 일이 힘들지는 않은가요? 내가 지배인을 만날 때마다 수임 씨의 안부를 묻는답니다."
"일보다 더 힘든 것은 혼자 사는 여자의 외로움입니다."

약간 취기가 올라 한 말이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윤숙은 김수임의 대담성에 은근히 놀랐다.

'보통 아이는 아니야.'

그들은 <라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들으며 샴페인 잔을 들었고 진도아리랑을 들으면서 꼬냑을 마셨다. 밤이 이슥해지자 나윤숙이 먼저 일어났다. 베어드는 둘만 남은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이끌었다.

통금 시간이 지나서까지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부둥켜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나 베어드는 한계를 넘지 않으며 김수임을 이끌었다. 오히려 술에 취한 김수임이 은근히 베어드의 손길을 기다리게 되었을 때 베어드는 모임을 끝냈다.

"미스 김이 그렇게 춤을 좋아하고 잘 추는지 몰랐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춤을 춘답니다. 앞으로 춤추러 갈 때 내 파트너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김수임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어드는 김수임을 리무진에 태워 보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앞으로 10회 정도 더 연재된 후 막을 내립니다.



태그:#미군정청, #단독선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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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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