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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제9회 엄마젖 먹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
 지난 9월 4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제9회 엄마젖 먹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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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큰 아들 이야기입니다.

모유 수유를 오랫동안 계획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 접어야 했던 경험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님들에게는 이런 경험의 반복이 없길 바라며….

큰아들이 지금 7살이니까(만 7살이 한 달쯤 남았네요), 그러니까 벌써 7년 가까이 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의료관련 전문지에 근무하고 있었고 신입 기자로서 처음 맡은 출입처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족보건복지협회라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인구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저출산문제 극복에 나서고 있지만 당시에는 가족건강이라는 사업을 주로 하던 곳입니다.

이 가족보건복지협회는 당시 사업 중 하나로 '엄마젖 먹이기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협회는 1년에도 여러 번에 걸쳐 엄마젖 먹이기 토론회, 사진 전시회, 기자 설명회 등을 열고 엄마젖의 소중함을 홍보하곤 했죠. 저는 이런 과정을 취재하면서 내 아들은 반드시 엄마젖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이미 그 전부터 저는 '나도 엄마에게 젖을 얻어먹고 컸으면 나도 내 자식에게 당연히 엄마젖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확신이 섰습니다. 오히려 '엄마젖이라는 게 그동안 다들 먹고 살아온 것인데, 왜 이렇게 극성이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마젖 먹이기, 첫 단계부터 '삐걱'

애기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로 데려갔고 창밖으로 얼굴을 보여줄 뿐 한번 안아볼 수도 없었다.
▲ 세상에 막 태어난 큰 아들 애기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로 데려갔고 창밖으로 얼굴을 보여줄 뿐 한번 안아볼 수도 없었다.
ⓒ 강봉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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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아이를 가진 아내가 만삭이 돼 마지막으로 산부인과를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선 그동안 아무 문제없던 아들에 갑자기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제왕절개를 권했습니다. 순간 한 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더 묻지도 않고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도 바로 수술을 권했습니다. 그것은 핵심이 아니기에 각설하고….

길지 않은 수술 끝에 산모인 아내는 입원실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신생아실로 갔습니다. 산모는 전신마취로 비몽사몽간이었고 아기는 창 너머로 잠깐 보여줄 뿐 한 번 안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아기에게 크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좀 작았을 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습니다. 신생아실에서는 산모가 마취를 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산모의 젖을 먹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모유수유를 할 수 없으니, 분유를 타서 먹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3일이 지나서야 엄마젖을 짜서 가져오면 먹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꼭 먹여야 한다는 초유는 아무리 짜도 채 한 컵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가슴이 아프다고 했지만 젖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기에게 물리면 어떻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병원에선 퇴원할 때까지는 안아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꼭 먹이고 싶으면 짜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일주일 뒤, 퇴원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분유 한 통과 여러개의 젖병을 공짜로 싸주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제가 취재를 하면서 배운 바로는 아무리 늦어도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하면 젖은 반드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겨우 일주일이고 그동안 조금씩이나마 계속 짰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물바다는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아기는 아무리 젖을 물려도 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배는 고픈지 빽빽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는 이미 고무 젖꼭지에 익숙해져 있어서 엄마젖이 낯설었던 것입니다. 젖병은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만 해도 젖이 잘 나오지만 엄마젖은 한입 가득 입에 물고 힘껏 쪽쪽거려야 나옵니다. 이미 젖병에 익숙해진 애기는 굳이 먹기 어려운 엄마젖을 빨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기가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관건

아내는 내가 여러번에 걸쳐 설득하자, 내 말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손주 보러 올라오신 할머니, 큰엄마, 이모,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애가 우니까 일단 우유를 먹여라", "남들도 우유 먹고 키워도 잘 컸다", "너만 대단해서 그 고집이냐", "이러다가 애 잡겠다" 애도 울고 어쩔 줄 모르는 아기 엄마도 울고 난리난리가 났습니다. 저 혼자 화가 나서 큰소리치고 무슨 투사같았습니다.

제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모 대학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히 물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열정적이던 교수님도 제 전화에는 시큰둥했습니다.

"안 먹어도 먹을 때까지 먹이시면 됩니다."

사실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도 배고프다보면 억지로라도 엄마젖을 빨기 시작하고 그러면 말라가던 젖이 조금씩 돌고, 아기가 빠는 만큼 젖은 나온다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 이치를 믿고 그냥 아기가 빨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젖을 먹지 않더라도 절대 젖병을 물리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겠지 하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퇴원하고 이틀째부터는 조금씩 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3일째가 됐는데, 너무 배가 고팠던 아기가 아주 힘껏 젖을 빨았고 결국 아내의 젖꼭지가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기가 빨고 나면 피가 철철 나는 것입니다. 젖을 안 먹을 때는 조금 아물었다가 다시 빨면 또 피가 나왔습니다. 아내도 아프다고 또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젖꼭지가 터져버리고... 실패로 끝난 모유수유

엄마젖을 먹어도, 우유를 먹어도 애기는 잘 컸습니다. 다만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을 뿐이죠..
▲ 5개월째 엄마젖을 먹어도, 우유를 먹어도 애기는 잘 컸습니다. 다만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을 뿐이죠..
ⓒ 강봉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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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들여다보고는 절대 떼지 말라고 젖꼭지에 반창고를 붙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물 때까지 다시 일주일…. 그동안 젖은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아기는 다시 젖병에 익숙해졌고 저도 또 다시 그 전쟁을 겪으며 엄마젖을 고집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물론 엄마젖을 먹이지 않았다고 해서, 우유를 먹였다고 해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엄마젖이 우유보다는 훨씬 더 좋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지지입니다. 엄마, 아빠가 조금 힘들더라도 엄마젖을 먹이겠다고 생각할 때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훨씬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실 결정적인 것은 분만 직후, 간호사들의 노력입니다. 무엇보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분만 뒤에는 바로 아기가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젖을 물리고 엄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젖이 완전히 익숙해 지기 전에는 절대로 젖병을 물려서는 안됩니다. 이 과정을 간호사가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엄마젖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젖병으로 먹이면 얼마나 먹는지 확인이 가능하지만 엄마젖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젖은 항상 아기에게 꼭 필요한 만큼 나온다는 것을 믿고 적어도 1년은 엄마젖 먹이기를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기쁘게도 제 둘째는 1년 반이 되도록 엄마젖만 먹고 컸습니다. 다음 번에는 둘째의 엄마젖 먹이기 성공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oney0000.blogspot.com, http://blog.naver.com/boney00)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엄마젖, #모유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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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저보고 이선균 닮았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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