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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반대 논리와 그에 대한 반론

친일 청산에 대한 반대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장준하는 친일 청산에 반대하는 논리와 이에 대한 반론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일기장에 적어 보았다.

1.색깔론 : 친일 청산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빨갱이라는 주장.
반론 : 대체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일본 경찰 또는 군인 출신으로서 자기들의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타인을 모해하는 것이다.

2.순교자론 : 우리의 친일 행위는 민족의 선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었다.
반론 : 선각자라는 인식은 영웅사관에 사로잡힌 근거 없는 자기도취이며 개인의 영달을 민족에 대한 봉사로 위장한 주장일 뿐이다.

3.공과론 : 비록 한때 친일을 했더라도 민족에 대한 공로가 많으니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반론 : 약간 합리적인 주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공이 있었기에 민족에 대한 악영향이 더 컸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공만 내세우지 과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4.국론 분열론 : 친일 청산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모시킨다.
반론 : 그렇다면 친일뿐 아니라 다른 범죄 행위를 징벌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5.정치적 음해론 :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 문제가 이용된다.
반론 : 모든 것을 공작이나 음해로 모는 것은 파시스트의 속성이다. 정치단체는 관여하지 말고 민간단체에 힘을 주어 청산 작업을 시키면 된다.

6.공범론 : 엄밀히 말해 그때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반론 : 목숨을 바친 순국 영령과 자기희생의 삶을 실천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창씨개명이나 생계형 친일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범죄 행위를 한 자를 가리자는 것이다.

7.망각론 : 지나간 일을 캐서 상처내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노력하자.
반론 :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과거는 미래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정확히 규명하자는 것이다.

장준하는 친일파라는 용어는 개념이 모호하고 넓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민족 행위자'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그런 면에서 '반민특위'라는 명칭은 잘 지은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친일청산 반대를 주도한 이승만

그런데 반민특위의 제1 반대자가 최고 권력자 이승만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는 유무형의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특위 활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이제 노골적으로 친일 청산을 기피하고 있었다.

"지금 국회에서는 친일파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로 민심을 이산시킬 때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문제 처리가 안 되고 나라에 손해가 될 뿐이다. 인신공격을 일삼지 말고 민심이 복종할 만한 경우를 만들어 조용하고 신속히 판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의 지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대통령의 이런 의중을 알아서 스스로 했는지, 수도경찰청의 일부 간부들이 대담하게도 특위위원을 대상으로 한 테러 조직을 만들었다. 그것은 수사과장 최란수와 사찰과 부과장 홍택희, 그리고 전 수사과장 노덕술이 주동이 된 비밀결사체였다. 특히 노덕술은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 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높았던 살인 고문 경관이었다.

노덕술은 해방 후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 되었는데, 당시 경찰청장 장택상을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48년 1월 24일의 일이었다. 노덕술은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박성근(25)이라는 청년의 취조를 맡았다. 노덕술은 박성근의 머리를 곤봉으로 무수히 때려 실신시켰다. 그리고 부하를 시켜 물고문을 자행했다. 박성근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고 말았다.

그것은 노덕술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노덕술은 갑자기 일어나 2층 취조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소리를 질렀다.

"저 놈 잡아라!"

그들은 우당탕 계단을 내려가 경찰청 정문까지 달려갔다. 범인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친 것으로 꾸미기 위한 연극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어둠을 틈타 박성근의 사체를 밀봉했다. 그들은 사체를 한강으로 가져가 쇠붙이와 함께 촘촘히 묶어 얼음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경찰청장 장택상에게 전말을 보고했다. 장택상은 그들을 문책하기는커녕 수사요원 14명에게 5천원에서 2만원까지의 격려금까지 주었다.

반민특위의 와해와 물 건너 간 친일청산

"으응, 자네 거튼 애국자가 있어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잔다네."

노덕술이 경무대에 갔을 때 이승만이 그에게 한 말이었다.

그들은 친일 청산에 강경파인 대법원장과 검찰총장과 국회의장 등에 대한 테러를 사주했다. 그러나 명분 없는 일을 부하 받은 테러리스트 백민태가 변심, 자수함으로써 그들의 음모가 세상에 밝혀졌다. 반민특위 특경대는 노덕술을 체포· 구금했다. 그러자 다음 날 이승만이 반민특위 간부들을 경무대로 초치했다.

이승만은 특위위원들에게 말했다.

"으으응, 노덕술이는 나라를 위해 요긴히 쓰일 기술자이니 석방허두록 허시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이승만이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그런 줄 알고 나는 이만."

순간 부의원장 김상돈이 일어나는 이승만에게 말했다.

"그는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의 경험밖에 없는데 그런 경험과 기술이 신생 대한민국에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김상돈의 말을 들은 이승만의 두 볼이 경련으로 씰룩거렸다.

"나라를 생각하지 못허는 속 좁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알아들을 만큼 말을 했는데도… 으응, 벽창호들이야, 벽창호들… 이제 나는 내 맘대로 할 것이야."

노기를 띤 이승만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후 을지로 입구에 있던 반민특위 사무실에는 중부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무장 경관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반민특위 특경대 청년들을 개 잡듯이 다루고 20명을 체포· 구금했다. 그리고 특위위원들은 무장경관의 총부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국회에서는 반민특위를 주도했던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체포되었다. 김상덕, 신성균, 오택관, 이문원 등 12명이 헌병대에 끌려가 공산당 프락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킨 것은 대한민국의 공권력이었다. 그리고 반민특위가 결정적으로 와해된 것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백범 김구의 죽음 직후였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약 10회 정도 더 연재된 후 막을 내립니다.



태그:#반민특위, #노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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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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