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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에 관한 단상 1.

 

"인간은 자연에서, 그것도 가장 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우주(자연)는 팔을 뻗어 인간을 때려눕힐 필요가 없다. 한 개의 물방울이나 수증기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자연)가 인간을 공격한다면 인간은 그를 죽인 살인자보다 더 고귀하게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우주(자연)가 준 장점(교훈)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자연)는 이러한 것을 전혀 모른다." - 파스칼 <팡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란 파스칼의 명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은 갈대처럼 유약한 존재란 의미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이나 수증기만으로도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우주는 아무것도 사유(思惟)하지 않지만(적어도 우리 눈엔 그렇게 보인다)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인간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광대무변한 우주 저편을 탐색한다.

 

파스칼의 "생각하는 갈대"는 이처럼 무(無)에 가까운 인간과 무한한 우주의 극단적 대비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의 위대성을 표현하고 있다.

 

 

<팡세>에 관한 단상 2.

 

"남을 보람 있게 훈계하고 그 잘못을 가르쳐주려면 그가 사물을 어떤 처지에서 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일반적으로 그 처지에서는 진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실한 점을 그에게 인식시키고, 그 대신 그의 그릇된 다른 쪽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그것에 만족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다만 여러 처지에서 보지 않았음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모든 각도에서 보지 않았다는 데는 화를 내지 않지만 오류를 범했다는 말을 듣기는 싫어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인간이란 원래부터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과 감정의 지각은 항상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보고 있는 방면에서는 본래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 파스칼 <팡세>

 

파스칼이 의도했든 안 했든 위에 인용한 구절은 독선과 아집이 생기는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이 글에 의하면 독선과 아집은 논리 부족이나 사고의 결함보다도 대상(사물, 사안 등)을 바라보는 관점(시각)의 편향성에서 비롯된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자기가 보고 있는 방면에서는 본래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다"는 파스칼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어쩌면 그의 말을 잘못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다) 각자 바라보는 사물이 일반적으로 그 처지에서는 진실하다는 데엔 대체로 공감한다.  

 

예컨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과 그것을 막아야 하는 경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나님을 향해 동시에 "악을 멸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소서"라고 기도했을 영국과 독일 국민들 중에 자신의 행위가 선하지도, 진실하지도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적어도 자신이 바라보는 방면에선 저마다 진실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갈파했듯이 개별적인 관점으로 포착한 진실이 반드시 보편타당한 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독선과 아집도 개별적인 관점으로 보면 진실 같지만 조금만 각도를 바꾸면 급속히 진실과 거리가 멀어진다. 

 

특히 좌/우, 보수/진보 등의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독선과 아집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회병리현상 가운데 하나다.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인터넷 댓글을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독선과 아집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무조건 내가 옳다"는 식의 독선과 아집이 일상화된 사회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스칼의 예지는 먹구름을 뚫고 흘러나오는 한 줄기 햇살처럼 보인다. 어차피 유한자적 한계를 지닌 인간은 누구나 독단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파스칼 자신도 말년에 종교적 독단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들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독선과 아집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오직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 관점만을 고수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옳다고 믿는 것까지도 다각적으로 고려할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인에서 사회 전체로 확대해석하면 전자는 사회 전체의 구조, 그중에서도 언론의 구조가 독선과 아집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개방 사회일 가능성이 크고 후자는 거꾸로 대중매체가 독과점을 형성해 독선과 아집을 부추기는 폐쇄 사회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독선과 아집의 출처는 다각적인 접근을 용납하지 않고 고정된 프레임만을 강요하는 언론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독선과 아집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열린 마음과 열린 눈이 필요할 것 같다.


팡세

B. 파스칼 지음, 이환 옮김, 민음사(2003)


태그:#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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