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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황량한 겨울 바다에 붉은 저녁 노을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춥고 황량한 겨울 바다에 붉은 저녁 노을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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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는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를 지나 선재도를 거쳐야 하는 서쪽 끝의 섬입니다.
 영흥도는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를 지나 선재도를 거쳐야 하는 서쪽 끝의 섬입니다.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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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현상인지 1월인데도 낮엔 햇살이 따사로운 게 자전거를 탈 만 하네요. 떠나간 애인도 아닌데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겨울 바다, 겨울 섬만의 느낌이 그리워 전철과 버스에 애마를 싣고서 서해 바다 끝에 있는 영흥도를 향해 새해 첫 자전거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알았는데 영흥도에는 멀리 육지에서도 흰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게 보이는, 커다란 굴뚝들이 우뚝 서 있는 화력 발전소가 있습니다. 불을 때워 전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나오는 저 구름같은 연기들이 곧 요즘 문제가 되는 지구 온난화 주범이기도 하니 전기를 귀하게 여기고 아껴 써야 하겠어요.

영흥도에 가기 위해서 전철에 애마 잔차를 싣고 4호선 종점인 오이도역까지 갑니다. 겨울이라 전철 좌석이 온열시트같이 뜨뜻하니 좋네요. 오이도역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가까운 소래포구며 대부도 멀게는 영흥도까지 가는 790번 버스가 오고 갑니다. 오후 다섯시면 해가 지는 겨울 날씨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잔차를 접어 버스에 싣고서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까지 같이 갑니다.

790번 버스는 인천 옹진군청에서 종점인 영흥도까지 왕래하는 버스인데 섬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는 버스라서 그런지 정해진 정류장 이외에도 손님이 내려달라고 부탁하면 택시처럼 내려줍니다. 겉모습은 도시형이지만 마음은 시골 버스같은 정이 느껴지는 기사님이 운전하네요. 자전거를 접은 채 번쩍 들어서 버스를 타도 별말이 없으시니 좋습니다.

차곡차곡 접어 작아진 자전거가 신기하신지 연신 쳐다보며 관심을 나타내시는 영흥도 사시는 할머니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가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영흥도 갯벌에서 굴과 바지락을 캐며 수십년을 살다가 은퇴(?)하신 칠십살이 넘으신 섬마을 할머니는 신장이 안좋아 이 버스를 타고 육지에 있는 병원까지 혈액 투석인가를 받으러 왔다 갔다 하신다네요.
옛날엔 혈액 투석하는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아주 부자가 아닌 담에야 신장이 심하게 안좋아지면 그냥 살다가 돌아 가신 분들이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평소 병원 한 번 안가는 저는 건강보험료가 비싸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했었는데, 이런 섬 마을 할머니께서 저렴하게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제 생각이 좀 짧았네요.

저멀리 영흥도 화력 발전소에서 불을 질러 만든 전기들이 송전탑들을 통해 육지로 운송되고 있습니다.
 저멀리 영흥도 화력 발전소에서 불을 질러 만든 전기들이 송전탑들을 통해 육지로 운송되고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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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에 들어서는 긴 다리 영흥대교를 자전거로 건너면서 너른 겨울 바다를 실컷 감상합니다.
 영흥도에 들어서는 긴 다리 영흥대교를 자전거로 건너면서 너른 겨울 바다를 실컷 감상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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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먹거리로 농촌에 시래기들이 있다면 어촌 마을에는 이런 생선들이 겨울 햇살에 볕을 쬐고 있습니다.
 겨울 먹거리로 농촌에 시래기들이 있다면 어촌 마을에는 이런 생선들이 겨울 햇살에 볕을 쬐고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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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횟집과 칼국수집 식당들이 모여 있는 대부도 입구를 지나 선재도를 향하여 갈 때쯤 버스에서 내려 원래대로 변신한 잔차에 올라 탑니다. 대부도는 물론 선재도와 영흥도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을 제 다리와 엔진인 심장뿐이네요.

대교라고 하기엔 아담한 선재대교를 가뿐히 건너니 이름도 멋있는 작은 섬 선재도가 나타납니다. 선재도에도 동네 마을과 바닷가를 따라 길이 잘 나 있어 자전거 타고 다니기 좋습니다. 섬 주위에는 측도와 목섬이라고 불리는 새끼 섬이 있는데 둘 다 달님이 허락해야 건널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서해바다의 밀물과 썰물 현상은 달이 부리는 조화이니까요. 인간이 만든 길이 아닌 자연이 내어준 바닷길을 걸어보는 건 영흥도 가는 여행길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답답한 도시에서 막혀 있던 코를 뻥 뚫어주는 알싸한 겨울 바닷바람을 마시며 달리다보니 드디어 진짜 대교랄 수 있는 영흥대교가 나타납니다. 넓디 넓은 바다 위에 세워진 당당한 위용의 다리이지만 사실 영흥도를 멀리서도 알아보게 하는 건 새하얀 연기가 몽실몽실 나는 커다란 굴뚝들과 바다 위에 줄줄이 서 있는 키 큰 송전탑들입니다.

이것은 영흥도 화력발전소로 큰 불을 내서 전기를 만든 다음 송전탑을 통해 부지런히 육지로 보내고 있습니다. 산이나 평야에 세워진 송전탑들을 보았었는데 여기 영흥도에서는 바다 위에 세워져 있어 이채롭습니다.

불을 질러 전기를 만들어내는 굴뚝들이 한자리 차지한 섬이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평범하고 수더분한 섬 마을 풍경입니다. 섬 입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십리포 해변과 장경리 해변을 향해 달릴 때에도 급한 오르막이나 거친 언덕이 없어서 자전거 여행자를 편하게 해줍니다.

관광철이 아닌 추운 겨울날의 해변과 섬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듯, 떠난 듯 적막하고 한산합니다. 최종 목적지였던 영흥도 장경리 해변에 도착해 저 혼자 바닷가를 거닐자니 쓸쓸하기도 하고, 이 넓은 모래 해변과 청명한 파도소리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 된 것 같아 풍족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분이 겨울 바다 여행의 묘미인 것 같아요.

영흥도 우체국에서 몸도 녹이고 자판기의 달고나 커피도 마시고 마을 동향(?)도 귀 동냥하며 애마와 저도 잠시 재충전을 합니다. 우체국 직원분이 장경리 해변가에 통일사라는 절이 있는데 산꼭대기에 있어 바다가 보이는 주변 풍광이 좋으니 꼭 가보라고 하더군요. 저는 애마 타고 오느라고 지쳐서 그 절은 다음 여행 때인 봄에 가기로 했지요.

제주도처럼 잘 닦여진 섬 해안도로를 속시원하게 달리자니 어떤 할머니께서 옆에 굴껍질을 수북히 쌓아놓고 열심히 굴을 까고 계시네요. 바닷바람과 굴이 섞인 진한 내음이 저를 자전거에서 내려 서게 합니다.

이 섬이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할머니는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나와 갯벌에서 굴을 캔 다음 해안도로에 나와 앉아 굴을 까서 관광객들에게 1kg에 만원에 팔고 계십니다. 오늘은 벌써 3kg를 팔았다 하시며 아이처럼 좋아라 웃는 모습에 그만 저도 따라 웃게 되네요.

당신은 이 날씨에 바닷가로 출퇴근 하시면서 자전거 탄 저를 보시더니 손이 시려워 어떻게 타고 다니냐고 하시네요. '사실 손보다 발이 더 시려워 자전거 타기 힘들어요, 할머니' 그랬더니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비법을 전수해 주십니다. 발이 들어갈 적당한 크기의 비닐팩을 사서 발을 넣어 감싼 다음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안 시려워진다네요. 한겨울에도 갯벌에 들어가 일하시는 할머니의 조언이니 믿을 만 하겠습니다.

영흥도를 향해 갈 때는 몰랐는데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에는 차갑고 강한 겨울 바다 바람에 애마가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고 힘이 몹시 들어 높은 언덕을 올라가듯 기어를 낮추며 천천히 달립니다. 어쩐지 영흥도를 향하는 길에 평지도 오르막도 평소와 다르게 슁슁 잘 달린다 싶었는데 그게 제가 다리 힘이 참 좋아서가 아니라 바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면서 밀어준 덕분이었네요.

이런 심상치 않은 경험은 자전거 여행에서 종종 느끼는 깨달음 같은 느낌입니다. 주변 동료들, 가족들과 축적된 사회 저변의 시스템이 등 뒤에서 부는 바람같은 존재로 내 사회적 발전과 승진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을 모르고 단지 내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줄 아는 어리석은 자만심을 일깨워줍니다.

오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해가 홍조를 띠며 길게 드리워지는 겨울 섬 영흥도. 저녁 노을이 지는 영흥대교의 조명 불빛 찬란한 인공적인 아름다움도 멋있고, 섬을 감싸안 듯 추운 날씨를 잠시 잊게 해주는 따스한 붉은 노을도 잊기 힘들만큼 아름답습니다.

봄엔 바지락을 겨울엔 굴을 캐고 따서 관광객에게 팔아 생활비를 버시는 칠십이 넘으신 할머니의 정정한 웃음이 떠오릅니다.
 봄엔 바지락을 겨울엔 굴을 캐고 따서 관광객에게 팔아 생활비를 버시는 칠십이 넘으신 할머니의 정정한 웃음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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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화려한 펜션이 유행이지만 영흥도에는 이런 소박한 민박집들도 있답니다.
 어디에나 화려한 펜션이 유행이지만 영흥도에는 이런 소박한 민박집들도 있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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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북쪽 끝 저멀리 바다를 향하는 장경리 해안에 도착하니 넓은 해변과 파도소리가 저 혼자만의 것이더군요.
 영흥도 북쪽 끝 저멀리 바다를 향하는 장경리 해안에 도착하니 넓은 해변과 파도소리가 저 혼자만의 것이더군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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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790번 버스는 오이도 전철역 바로 앞에서 매 시간 15분에 종점인 영흥도를 향해 출발합니다.



태그:#영흥도 , #선재도 , #오이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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