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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이 순환장애가 있는 손을 무척 차갑게 한다. 그러나 따스한 봄빛은 이미 겉치레 옷을 뚫고 가슴을 따스하게 하고 있다. 봄빛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제 대전에 출장을 가서 만난 여성 척추장애인 동료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때문인 것같다. 그 사진에는 엄마와는 달리 키가 174센티라는 늘씬한 미모의 신부와  멋진 신랑과의 아름다운 결혼 모습이 담겨 있었다. 30세에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그 엄마와 딸들은 얼마나 많은 꽃샘 바람을 마음에 맞았을까.

그 사진을 보고 나니 지난 주말에 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은 감회가 새롭다. 앞날을 언약한 사이는 아니지만, 딸이 처음으로 친구를 내게 소개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나 아가씨 때나 동네에서 늘 만나는 친구, 그림친구, 교회친구 등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참 자주 엄마에게 소개한 것 같다. 친구들을 데리고 가면 엄마는 언제나 계란지단을 곱게 만들어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그 국수의 맛이 얼마나 일품이던지 어떤 친구는 내가 없어도 자기 친구까지 데리고 오기도 했다.

누구를 데리고 가든 언제나 대문을 열고 한상 푸짐하게 음식을 맛깔스레 만들어내는 엄마였고, 엄마는 나의 수다와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참 좋아하였다. 그 당시에는 우리 엄마가 사람들을 좋아하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장애인인 막내가 비장애인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자체를 반겨하셨던 것 같다.

그런 친정엄마는 하늘로 떠나시고 없지만 엄마의 자리에는 딸이 있어 대신 전화를 해주거나, 나의 틀린 발음을 고쳐주거나, 바깥세상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어떤 때는 딸이 딸이 아닌, 속에 할머니가 들어앉은  것 같은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 언어에서 동 떨어져, 비어, 속어, 은어의 구별을 잘 못하는 나의 스피치 선생이 되기도 한다.

나는 가급적 나의 전시회나 공적인 여러 일들에 딸들에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다. 어떤 행사는 가족인 딸이 있어야 마음 든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은 어릴 때부터 친구를 내게 소개한 적이 없었다. 딸과 함께 음악공부를 하러 가는 한 동네 친구는 자연스럽게 골목에서나 집에서 스치지만, 딸이 마음을 열어서 내게 손을 열어 " 엄마! 학교에 와! 하든가 " 엄마! 얘는 내 친구야!" 라든가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자모회 통지서도 내게 보여주지 않고 차곡차곡 그냥 서랍 안에 둔 딸이었다.

돌발적인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넘어져 꿰매야 하는  응급상황이 벌어졌는데도, 1분 거리에 있는 내 연구실에 연락이 오지 않고, 먼 거리의 아빠 회사로 연락이 갔다. 수술을 이미 마치고 딸을 봤을 때, 난 놀람과 생경함과 안도감과 함께 장애맘으로서의 비애가 복합된 느낌 탓에 한동안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것은 장애엄마는 아이가 언제나 기대고 싶은 모든 것이 열려있는 가슴을 가진 엄마가 아닌, 때때로 자기가 활동을 보조하거나, 변호도 해주어야 하는 하나의 힘없는 약자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 같다.

작년 겨울 서울에서 전시회 개막 때 생소한 이름으로 꽃화분이 배달되었을 때, 나는 잘못왔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딸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 후 간간이 인사 문자메시지가 오고, 연말연시에는 밥 먹으면서 인사하고 싶다는 연락도 직접 받았다.

그러나 딸은 다음에...다음에...하면서 아프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장애맘을 친구에게 소개하는 불편함 때문일지 모르기에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평소 길에서 파는 천막집에서의 오뎅이나 떡볶이도 낯을 가려서 제대로 못 사 먹는 예민한 딸이니 오죽하랴.

그런데 꽃샘바람이 불고, 꽃샘눈꽃이 내려 벚꽃의 분홍 꽃봉오리가 움추려들던 지난 주말에 딸이 "엄마! 내일 시간 될까? 내 남자친구가 밥먹자 하는데 어때?"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딸이 복합된 온갖 마음의 걸림을 넘어서야 했다는 것을 알기에 금세 대답을 못했다. 딸은 계속 말했다.
"엄마! 평소 서실갈 때 입는 검은 옷 말고 좀 화사한 옷 입고 내일 **에서  함께 밥먹자."

딸의 남자친구는 마치 사회 신출내기처럼 쭈뼛한 자세로 양복을 입고 나왔다. 그리고 그 남친을 바라보는 딸은 내가 평소에 바라보고 느끼는 딸과 사뭇 달랐다. 딸은 가급적이면 뷔페식 음식을 가지러 자주 자리에서 일어났고, 딸의 남자친구와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 동문서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처음 만난 딸의 남자친구인 사람 자체가 신경쓰이더니, 차츰 오빠집 아들 또래인 조카같은 느낌으로 편안해져 즐겁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농담도 주고 받았다. 딸의 남자친구를 만난 날은 보통날보다 좀 다른 날로 기억되기보다, 마음의 걸림돌 하나가 사라진 좋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직장생활과 사회단체활동을 하거나, 어떤 성취를 통해 작가로서의 명예를 얻는다해도, 딸에게 친구에게 소개해도 좋은 엄마의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 마음에 평안함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어떤 높은 명예직보다 "우리 엄마! 세상에서 단 하나인 우리 엄마!" 라고 부르는 그 엄마의 자리가 더 없이 좋기 때문에...


태그:#딸의 남친구를 만나기까지..., #마음의 걸림돌, #장애맘의 딸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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