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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등록금 투쟁이 한창이다. 언론에서도 꽃다운 여대생들이 삭발 투쟁한다는 소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다들 잊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대생들의 삭발 투쟁은 3년 전에도 있었다.

2006년, 이화여대 학생회장도 삭발했었는데

지난 4월 11일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며 삭발한 박해선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지난 4월 11일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며 삭발한 박해선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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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대학교 2학년 2006년 무렵, 등록금 투쟁을 위해 이웃 학교인 이화여대 학생회장이 삭발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삭발 사진을 인터넷으로 접한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의 여대생이 삭발 결심이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수업 시작 전 핼쑥한 몰골을 한 우리 학교 학생회장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등록금 투쟁을 위해 단식 중이라던 그는 재학생들에게 많은 협조를 바란다는 부탁의 말을 하며 강의실을 돌았다. 그날 학교 게시판에는 학생회장을 응원하는 글이 가득했다.

당시에도 등록금 투쟁에 대한 움직임이 조금씩 커지면서 급기야 학생들은 등록금 인하 운동을 벌였다. 같은 과 친구가 그 운동에 참여하면서 나에게도 참여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거절했다.

예상대로 학교에서는 아무런 답변도 없었고, 등록금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들을 수 없었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도 시험기간이 다가오자 다시 시험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식을 했다던 그 학생회장의 향후 소식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자랑스럽지 못한 등록금 상위 랭킹 2위

내가 다니는 숙명여자대학교는 등록금이 상위 랭킹 3위 안에 꼬박꼬박 들었던 학교다. 1위 학교는 매년 달랐지만, 우리 학교는 늘 2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등록금이 너무 비싼데도 계속 올리는 이유에 대해 친구들끼리 '1위 밑에서 티 안 나게 등록금을 야금야금 올리는 게 아닌가'라는 우스갯소리도 했었다. 

그러던 중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발표된 등록금 순위에서 우리 학교는 또 당당하게 2위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래왔으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우리 학교를 다니다가 이화여대로 편입한 내 친구에게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등록금 순위) 1등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2등 하다가 1등 한 건데, 뭘"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학교 등록금이 다른 학교에서 비해 좀 비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나는 갑자기 집에서 이 뉴스를 볼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대학은 안 돼. 너무 비싸. 못 가"

연세대 학생 모임인 연세교육공동행동이 3월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 '등록금 카드납부제 시정과 학자금대출이자 지원 제도' 기자회견을 열고  높은 이자의 등록금 카드납부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세대 학생 모임인 연세교육공동행동이 3월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 '등록금 카드납부제 시정과 학자금대출이자 지원 제도' 기자회견을 열고 높은 이자의 등록금 카드납부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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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는 순간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뜨자 나와 엄마, 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가족들의 환호성 속에서 웃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안 돼, 너무 비싸, 못 가"라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준비할 시절에도 내가 숙대에 가고 싶다고 하자 "숙대는 비싸다던데…"라고 하셨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울고 불고 며칠간을 씨름한 끝에 결국 지금의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면 너 아르바이트 걱정은 안하게 해줄게"라고 호언장담하던 아버지의 말씀은 어느새 쏙 들어갔다. 난 가고 싶었던 대학을 갔음에도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1학년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의 일부분을 충당했다.  

나는 지금 마지막 학기만을 남기고 휴학을 한 상태이다. 몰론 다시 복학했을 때 등록금이 적어도 50만 원 이상은 오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휴학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등록금을 아버지께서 꼬박꼬박 내주셨는데, 마지막 한 학기가 남은 지금 복학하기가 망설여진다. 아버지께 복학한다고 말하는 것도 걱정스럽고, 등록금 이야기는 더더욱 꺼내기 힘들 것 같다.

지금 경제 사정으로는 학자금 대출을 해야할 듯한데 취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로 다시 돌아가려니 걱정이 앞선다. 학자금 대출을 했던 친구는 지금 취직을 한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도 학자금을 갚고 있다고 한다.

취직은커녕 빚을 안고 학교로 돌아가려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현재 숙대는 등록금 동결선언을 했지만 언론을 의식한 결과인 듯싶고, 동결해봤자 여전히 비싼 건 마찬가지다.

이런 걱정에 휩싸인 가운데, 등록금에 대한 투쟁을 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 나도 2학년 때 친구와 함께 시위 현장에 나갔어야 했었나? 나도 저 학생들처럼 삭발 투혼이라도 벌였어야 했나?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해서 등록금이 내려갔었을까? 이런 물음표에 휩싸인다.

그 많은 돈,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일까

우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면서 많은 돈을 투자했다. 대학에 합격해서는 또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투자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의 인생 최종 목표가 좋은 회사에 합격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것을 보면 모두들 그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결국 취직할 때는 토익이나 영어 공부를 할 거면서 무엇을 위하여 각자의 전공을 공부하는 데 몇천만원을 들이는 걸까.

한때 대학이라는 곳은 내가 정말 원하는 학문을 할 수 있는 신비의 성지라고 생각했던 고3시절의 순수했던 나 자신이 새삼 그리워진다.


태그:#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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