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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을 대표하는 특산품은 무엇이 있을까. 올해 천안발전연구원은 천안시민 237명에게 지역의 특산품을 물었다. 응답자의 23.2%가 '호두과자'를 꼽았다.

천안뿐만 아니라 전국민적 간식거리로 인기가 높은 호두과자. 특히 천안은 톨케이트와 기차역 등 천안의 관문 주변에 천안호두과자 판매업소가 즐비하며 천안이 호두과자의 본고장임을 대내외에 톡톡히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수입산 원재료에 떠밀려 천안호두과자가 지역성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천안에서 처음 탄생한 '호두과자'

학화호두과자는 천안호두과자를 처음 제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간판 속 주인공이 호두과자 할머니로 불리운 고 심복순 여사이다.
 학화호두과자는 천안호두과자를 처음 제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간판 속 주인공이 호두과자 할머니로 불리운 고 심복순 여사이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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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는 천안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천안호두과자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하 천안 학화제과를 운영하던 고 조귀금 선생에 의해 처음으로 호두의 모양을 본떠 과자를 만들기 시작해 주로 기차여객을 대상으로 판매하였으며, 한때는 멀리 만주일대에까지 판매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새 천년을 맞아 천안시가 발행한 <천안백년변천사>에 실린 '천안명물 호두과자'편의 한 대목이다. 천안호두과자를 상품으로 처음 세상에 내놓은 학화제과는 호두과자의 원조 지위를 점유하고 훗날 성장을 거듭했다. 여기에는 고 조귀금옹의 부인으로 평생을 호두과자와 함께 살아온 심복순 여사의 공이 컸다.

학화호두과자의 점포마다 설치되어 있는 대형 간판의 사진 속 인물이 다름아닌 심복순 여사이다. 심복순 여사의 학화호두과자는 세인들 사이에서 명품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작가이자 오디오 칼럼니스트인 윤광준은 지난해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펴냈다. 60개의 생활명품을 소개한 책에는 천안 학화할머니 호두과자도 수록됐다. 윤광준은 "전국의 호두과자 가운데 학화할머니 호두과자가 단연 최고"라고 설명했다.

호두과자 할머니라 불리운 심복순 여사는 2008년 3월 별세했다. 그의 자손들은 현재 대흥동 천안역과 신부동 종합버스터미널 주변, 구성동 천안소방서 옆 등 4곳에서 각각 학화호두과자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 천안에는 학화호두과자 말고도 10여개가 넘는 호두과자 제조업체들이 점포를 개설하고 호두과자를 판매하고 있다.

천안에서 시판되는 호두과자의 모습.
 천안에서 시판되는 호두과자의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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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가 천안에서 탄생한 배경에는 호두과자 장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지역성도 한몫했다. 천안의 광덕면은 한때 전국적인 호두의 주산지였다. 사질양토로 물 빠짐이 좋은 광덕에서 재배된 호두의 특징은 고소한 맛. 특색있는 원재료가 지역에서 조달되고 장인의 기술과 열성이 보태져 '천안호두과자'는 지역의 특산품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은 천안호두과자에서 천안의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20일 오후 천안역 근처의 원조학화호두과자 본점을 찾았다. 가게 진열장에는 포장된 호두과자 박스들이 수북했다. 5000원을 내고 30개들이 한 상자를 구입했다. 포장을 뜯자 당일 생산된 호두과자의 온기가 느껴졌다.

포장상자의 한쪽 면에는 호두과자 제조에 사용된 재료들의 원산지가 인쇄되어 있었다. 호두는 미국과 베트남산, 팥은 중국산, 밀가루는 미국과 호주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천안역 일대에는 학화호두과자 말고도 호두과자를 제조해 판매하는 점포로 천안옛날호두과자, 천안명물 전통호두과자 천안당 본점, 천안 태극당 도솔 호두과자 등이 있다. 이곳 호두과자 속 호두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나 북한 등 수입산이다.

도로를 따라 호두과자 판매업소 4~5곳이 밀집한 신부동 톨게이트 주변. 호두과자에 들어가는 원재료로 수입산 호두를 사용하기는 이곳들도 마찬가지. 천안역점 외에 다른 학화호두과자점들도 과자 속 호두의 원산지는 미국이나 베트남, 북한 등 외국이었다.

광덕에서 생산된 천안호두는 고사하고 국내산 호두도 천안호두과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점포마다 앞다퉈 '천안명물'임을 강조하지만 호두와 함께 팥이나 밀가루 등 부재료 대부분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천안호두과자에서 천안의 흔적이 실종되고 있는 셈이다.

천안호두과자에서 천안이 사라진 까닭

광덕에서 생산된 호두의 선별 작업 모습.
 광덕에서 생산된 호두의 선별 작업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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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호두과자에서 천안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호두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점포에서는 물량 부족과 가격 경쟁력을 이야기했다.

신부동 학화할머니호두과자의 관계자는 "공휴일을 제외하고 연중 호두과자를 만들어야 한다"며 "필요한 원재료의 수요량에 비해 광덕호두의 생산량이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산 호두를 사용할 경우 가격이 올라 소비자 요구를 맞추기도 어렵게 된다"고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2005년 한해동안 전국에서 생산된 호두량은 848t. 충북 영동군이 114t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당시 천안에서 생산된 호두량은 35t으로 전국 생산량의 4.14%를 차지했다. 지역적으로도 영동군은 물론 김천시와 거창군에도 생산량이 뒤처졌다. 천안시에 따르면 2008년 천안에서 생산된 호두는 59.76t. 이 가운데 99.3%인 59.35t이 광덕면에서 생산됐다.

천안시의 집계에서 SK임업 천안사업소의 호두 생산량을 제외하면 실제 광덕지역 호두 생산량은 훨씬 적다는 분석도 있다. SK임업 천안사업소는 광덕면 500㏊에 40만본의 호두나무를 자체 재배하고 있다.

천안농협 광덕지점(지점장 황수인)은 매년 가을 광덕 호두를 수매하고 있다. 2007년 7t에 이어 2008년은 3.2t을 수매했다. 황수인 지점장은 "호두재배 농가에서 개인 판매하는 물량을 합산해도 광덕의 호두 생산량은 4~5t 내외로 많지 않다"며 "천안호두라는 높은 인지도 탓에 추석 명절 전후로 그해 재배된 생산량의 대부분이 판매로 소진된다"고 말했다.

가격도 국내산 호두와 수입산 호두는 차이가 크다. 깐호두를 기준해 요즘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국내산 호두의 가격은 1㎏에 8만원. 호두과자 속 원재료로 많이 사용되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깐호두는 1㎏에 1만2500원에 불과하다.

"80년대에는 광덕호두를 사용했는데..."
천안호두과자 '질 관리'도 고민해야...일부 제조업체 혼란 부추겨
생산물량이 부족하고 가격이 비싸 호두과자에 천안호두의 사용이 어렵다는 점은 지역 호두재배농가들도 수긍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생긴 배경을 두고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유병갑 광덕호두작목반장은 "80년대 초반만 해도 천안의 호두과자 제조업체들이 광덕호두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유 반장은 "외국산 호두가 수입되자 호두과자 제조업체들이 광덕호두를 외면, 광덕호두의 가격이 한동안 폭락하면서 호두 재배물량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덕호두살리기위원회 이종민 사무국장은 제조업체들이 생각을 달리하면 광덕호두를 호두과자의 원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가격이 문제라면 호두과자 속 호두의 양을 줄일 수 있다"면서 "광덕호두를 사용해도 맛과 향은 오히려 우수해 진다"고 주장했다.

광덕호두축제 개최시 광덕호두와 우리밀을 사용해 호두과자를 만들어 본 경험을 거론하며 이종민 사무국장은 "판매가격이 상승해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선호를 감안할 때 천안호두를 사용한 천안호두과자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천안호두과자에서 천안호두가 사라진 현실에 소비자들은 간혹 불만을 털어놓는다. 천안호두가 들어있는 천안호두과자를 맛보러 천안까지 걸음했지만 정작 수입산 호두가 사용됐다는 점에 실망했다는 것.

인천에서 사는 주부 차상숙씨는 얼마 전 자녀들과 독립기념관을 찾았다가 귀가길에 천안에서 호두과자를 구입했다. 천안의 호두가 유명하니 당연히 호두과자 속 호두도 천안 것이라 여겼다가 차씨는 포장상자의 원산지 표기를 보고 실망했다며 천안시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일부 호두과자 제조업체들의 양심 불량도 소비자들의 실망을 낳는다. '천안명물' 등 마치 천안호두를 사용하는 것처럼 홍보하며 소비자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천안지역 한 호두과자 제조업체는 미국산 호두를 사용한 호두과자 28t에 대해 호두가 천안산인 것처럼 표시했다가 형사입건 됐다.

주재료의 원산지와 상관없이 천안호두과자가 이미 지역 특산품으로 정착한만큼 이를 관리하고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열 천안향토문화연구소장은 "호두과자 제조업체가 난립하며 품질도 제각각, 함량미달의 호두과자가 선 보이기도 한다"며 "천안의 독특한 상품으로 호두과자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43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호두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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