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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씨암탉을 선물로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씨암탉 "만약에 씨암탉을 선물로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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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한기(가명) 엄만디유~ 학교 육교 밑으로 잠시만 내려오시믄 안 될까유?"
"한기 어머니~ 무슨 일이신지 모르지만 학교에서 뵙는 게 좋겠습니다. 잠시 올라오시죠?"
"아녀유~ 지가 농사 짓다 보니께 꼴도 좀 사납구 그냥 아무 것도 아닌디 선생님 좀 뵐라구 그래유."

13년 전 일이다. 고3 담임을 할 때였다. 한기 어머니는 좀처럼 학교에 전화를 하는 분이 아니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살았다. 한기 어머니는 대전 변두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외아들을 키웠다. 몇 차례 거절을 거듭하다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육교 아래로 나갔다.

해는 기울고 어둠이 깔리는 순간이었다. 한기 어머니는 검정고무신에 알록달록 무늬가 아롱진 여성용 작업복(일명 몸뻬 바지)을 입고 머리엔 수건을 두른 채 상자 하나를 안고 계셨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상자 안에서 닭 머리 하나가 둘레둘레 고개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님~ 이게 말이쥬, 우리 집에서 힘 좀 쓰는 암탉여유~ 푹 고와서 삼계탕 해서 잡수시믄 몸보신에 좋을 거여유. 그리고 이건 달걀인디 오늘 금방 낳은 거라서 을매나 싱싱한지 몰라유."

상자 한 켠에 신문지로 포장된 달걀들이 도란도란 포개져 있었다. 한기 어머니는 "선생님, 그럼 지는 이만 가유!"하시며 내게 상자를 홀라당 건네주셨다.

"아니, 한기 어머니! 한기 어머니!"

그리곤 쏜살같이 음식 배달을 하고 사라지는 오토바이처럼 부르릉 떠나셨다.

'이걸 어쩌지?'

문제는 심각했다. '꼬꼬꼬꼬~~' 주인을 떠난 암탉이 나를 흘겨 봤다. 일단 상자를 자동차 뒷좌석에 실었다. 주인을 떠난 암탉이 몇 차례 몸부림을 쳤다.

'달걀이야 적당히 먹을 수 있겠지만 저 암탉을 어떻게 해야 되지?'

17평 아파트는 베란다도 좁다. 키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두 다리와 날갯죽지가 꽁꽁 묶인 암탉을 본 아내는 한동안 말을 잃고 약간 떨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는 불가피한 상황을 아주 어렵게 이해해 주었다.

주신 분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결행해야 한다. 산 닭을 죽여야 하고, 털을 뽑아야 하고, 배를 갈라야 한다. 이건 아니다. 죽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내는 심약한 내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현관 문이 열렸다. 평소 노인정에서 자주 뵙던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아내는 노인정 할아버지 할머니께 내 고통을 전가했다.

저녁때 집에 오자 밥상에 닭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여보, 혹시 이거~"
"그냥 아무 말 말고 드세요."

어르신들이 그 암탉을 잡아 닭죽을 끓였다고 했다. 노인정 잔치를 하면서 한 그릇을 갖다 준 것이었다. 자꾸만 둘레둘레 암탉의 눈동자가 떠올라 떨떠름했으나 꾹 참았다. 한기 어머니의 작업복(몸뻬 바지)과 몸보신 당부가 겹치면서 무조건 맛나게 먹었다.

선물(膳物)! '반찬 선'자에 '만물 물'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남에게 선사로 주는 물품'이다. 여기서 선사(善事)라 함은 '좋은 일'을 의미한다. 결국 선물이란 '남에게 좋은 일로 주는 물품'인 셈이다.

살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기쁨이다. 가정에서 사회 조직 안에서 선물이 필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계량화해야 하거나 서열을 매겨야 하는 현장에서는 선물이 뇌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돌이켜 보면 학교 현장 교사로서 그때 그 닭 촌지를 거절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한다. 

해마다 스승의 날 이쪽저쪽이 되면 촌지에 금품 향응이 들썩이며 교단에 먹구름이 깔린다. 그러나 예의도 과하면 예의가 아니듯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돈봉투로 전락한 촌지라면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자식 셋을 키우는 부모로서, 학교 현장의 교사로서 그 신념 유지하며 산다.

살아있는 암탉과 싱싱한 달걀!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절대 받지 않겠지만 교직 21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었다.


태그:#선물,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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