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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보다 더한 독재정권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나 역시도 그에 대한 실망이 먼저였지만, 황구라를 위한 변명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여워서.

그가 가여웠던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 그 생각이 먼저였다. 심재철의 회군, 또 그 이전의 여러 '민주열사'라 불렸던 사람들의 배신을 보고 과연 '황구라가 그와 비슷한 이유로 변절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는 보지 않는다. "그의 영달"을 위해서? 아니다.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한다.

1. 황구라를 위한 변명 1 - 그는, 왜, 스스로 타이틀을 버렸는가.

시대를 관조한 문인. 난 그에 대한 평가를 이 한줄로 대신하고 싶다. 방북과 징역, 망명을 거부한 그의 한국사랑, 그리고 그 이후의 사회적 활동. 스스로가 이제 80년 광주 이후, 오랜 여행을 떠나왔다고 생각한다며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와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있는 모습. 그래, 난 짠했다. 그의 포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모습에서 짠했다. 작아버린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그래, 그게 보였다.

사실 그래서 난 더 그가 이해가 갔다. 얼마나 아팠을까. 시대의 짐을 '지고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지며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지고 가는 짐을 드는 그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 그게 내가 황석영에게 아픈, 첫번째 이유다.


2. 황구라를 위한 변명 2 - 늙어버린 문인, 황석영

황석영의 투옥은 국가보안법이었다. -물론 그 이전 집시법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게 아니니 패스- 수갑을 차고 있는 그의 모습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그의 모습. 어느 것이 그의 본모습이었을까? 담담한 목소리로 "씨파"(물론 공중파라 삐- 처리 되긴 했지만) 거리며 허허대며 웃는 모습의 그는 그야말로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래, 그는 늙어버렸다. 세월 앞에서 그는 늙어버렸다. 이제 노구를 이끌고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해 보겠다는 젊은 황석영은 사라지고 이제는 '늙어버린' 것이다. 늙어버린 그의 모습에서 당신들은 무엇을 느꼈는가. 난 그가 늙었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3. 황구라를 위한 변명 3 - 할만큼 했다

할만큼 했다. 통일은 됐어! 라고 외치는 문익환 목사의 모습처럼 멋진 황혼을 보내는 모습을 기대했을 대한민국의 386들에겐 안 된 말이지만, 이 사회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외치기엔 너무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아니, 그런 풍토 자체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사회원로가 탄생하기에는 너무 척박하지 않는가. 일방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극우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현실. 그것이 '생계'가 되었든, '이념'이 되었든.

황구라, 할 만큼 했다.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민주투사라는 허울좋은 이미지? 또? 뭐가 있긴 한가?

가여운 황석영, 그는 이데올로그를 벗어난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 했다. 나는 그 소리가 절규로 들렸다.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서 절대 나타날 수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것으로 들렸다. 지독한 투쟁의 시대,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비정상적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 황구라의 저 말이 '살고 싶다' 라는 말로 들렸다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황구라, 아니 문인 황석영, 아니, (어쩌면 될지도 모르는) 정치인 황석영의 앞날에 '안식'이 있기를 빈다. 그것이 내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원이다. 이젠 편안하기를…


태그:#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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