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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도 6일째로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이고 진솔한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것이야말로 고인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것은 고인이 틈날 때마다 강조했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시스템이 구조를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시스템 그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럴수록 그 뜻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감세정책 남발하다 '국가재정법' 저촉 위기

 

혹시 독자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서거 바로 다음날 현 정부는 예정되었던 재정전략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그리고 이 회의는 바로 엊그제 화요일(5월 26일)에 개최되었다. 애도의 큰 강물에 묻혀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26일 개최된 재정전략회의에도 고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 회의가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재정전략회의는 짧게는 다음 해의 정부 예산 편성 지침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이며, 길게는 중장기적인 재정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이다. 각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유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바로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던 탈권위주의적 토론문화의 한 형태이다. 예산책정에 있어서 부처이기주의를 막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흔적은 2009년 올해 회의에서 핵심 주제가 되었던 "비과세, 감면" 토론에서 발견된다. 아시다시피 올해 정부 예산은  막대한 재정수지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적자재정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감세정책이 야기한 인위적인 측면도 상당하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했다. 현 정부의 감세정책이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부터 시행된 "국가재정법"에 정면으로 저촉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정부의 재정수지는 올해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22조 원 적자, 관리대상수지 기준으로는 52조 원의 적자가 예고되어 있다. 2008년도 예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 비과세, 감면액은 총 27.1조 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올해 예정된 22조 원의 적자 규모를 월등히 상회하는 것이다. 한편 올해 들어서자마자 정부는 추경예산안을 편성해서 11조 원을 세수 부족에 충당한 바 있다.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세수부족액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가 앞으로도 상당한 짐이 될 것이 확실해지자 재정전략회의는 지금까지의 모든 비과세/감면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발표의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해 4월 정부가 동일한 발언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기획재정부, "2008년 조세특례 및 그 제한에 관한 기본계획"). 정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 해 9월 예산안 제출을 앞두고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다(국회 예산정책처, "2008년 세제개편안 분석").

 

무엇보다 국가재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은 정부가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무분별하게 비과세/감면 제도를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세감면율 상한을 정하고 있다. 한해에 신규로 늘어나는 비과세/감면액의 총액이 국세수입액과의 합계액 대비 0.5퍼센트 포인트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따라 신규로 비과세/감면액이 최소 4.4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2009년 국세수입은 11조 원 이상 감소함에 따라 결산시점에 정부의 위법행위는 현실화된다.

 

2008년 실시한 정부의 세제개편이 올해 그 효과를 나타낼 것이고 국회의 지적대로 국가재정법 위반이 현실화되게 된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정부가 재정전략회의에서 '비과세/감면 원점 재검토'를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감세정책은 한 번 실시되면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 때문에 되돌리기 힘들어서 항구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게다가 감세정책은 근본적으로 조세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조세정책의 수혜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2005년 이후 집계가 완료된 2007년까지의 비과세/감면액을 보면 가장 규모가 큰 항목은 '임시투자세액공제'였다. 기업, 특히 흑자기업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항목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의 감세정책을 중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순한 재검토가 아니라 조세형평성을 고려한 재검토를 해야 한다. 감세액을 줄이는 과정에서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로 피해가 가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적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는 현 정부, 반짝 완화된 경기지표가 깨질까 노심초사할 정부에게 과연 성찰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상동 기자는 새사연 경제연구센터장입니다.


태그:#감세정책, #노무현 서거, #재정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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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새사연의 <'생얼' 한국 경제>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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