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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7일째인 지난달 29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발인제에서 조문객들이 슬퍼하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7일째인 지난달 29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발인제에서 조문객들이 슬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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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 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미안해하지 말라고도 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 대신 우리는 냉철한 이성을 세워야 한다.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래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퇴임 직후 이렇게 벼랑끝까지 내 몰린 나라는 일찍이 없었다. 해외 언론들의 보도가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기 혁신과 정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만 이 국제사회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무현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인권말살 책임 '악의 사슬' 발본색원해야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개혁세력은 현실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

우리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첫 걸음은 사람의 최후의 인격과 인권을 말살한 책임 소재를 엄정히 규명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그는 대통령이기 보다 대한민국 서민의 표상이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판사이고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기득권층 주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했다. 고난에 찬 노동운동을 함께 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지역주의의 벽에 '바보'처럼 대들다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차 낙선했다. 그러나 끝내 초지일관 소신의 길을 걸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노무현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도 그는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진력했다. 그는 한국인의 꿈이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 어렸을 적 꿈을 실현해 나가던 그는 '코리안 드림' 그 자체였다. 매일 수많은 국민이 봉하마을의 노무현을 찾은 이유일 것이다. 이 한국인의 꿈을 박탈한 악의 사슬을 철저히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사람된 도리다.

그는 집권세력이 권력기관을 권위주의적으로 이용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 망가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부터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에 대해 자율권을 주었다. 검찰의 수사권에 대해 청와대가 간섭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국정원의 정보보고를 대통령이 직접 듣지 않고 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이 거르도록 했다. 그러나 권력기관에 자율권을 주는 대신 그 내부의 개혁을 주문했다.

그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나는 탈권위에 대해 의견을 말한 적이 있다. "구시대적 권위주의는 개혁돼야 옳습니다. 그러나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권위를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권위를 잘 활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로 잘랐다. "그래도 어떤 사람이든 남 위에 군림하거나 우월의식을 갖는 권위주의는 안됩니다." 그의 탈권위라는 철학은 흔들림이 없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권을 갖고 반칙을 일삼는 사람이 남보다 앞서는 사회가 돼서는 안됩니다."

한국인의 꿈 박탈당한 데 따른 후폭풍 규모 예측할 수 없어

나는 이 정부가 국민의 울분과 원망의 대상이 돼 가는 것이 겁난다. 코리안 드림이 깨진 데 따른 후폭풍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또 국제사회에서는 전임 대통령을 비인간적으로 정치보복한 정권이라는 낙인과 조롱이 뒤따르고 있다. 그로 인해 국익외교에 커다란 장애가 형성된 것이 걱정된다. 집권세력의 국정수행이 고장나면 당연히 국운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안팎의 불가항력에 직면해 정권이 벼랑끝으로 몰리기 전에 하루 빨리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가져야 할 국민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다.

대통령이 사죄함으로써 국민의 분노가 풀릴 수만 있다면 왜 그것을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안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이상의 고단위 처방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데 정권 측의 고민이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이 나라의 국운을 망가뜨리지 말고 하루 속히 결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재홍 기자는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이며, 전 국회의원입니다.



태그:#노무현 서거, #원망 대상이 된 정권은 국운 망쳐, #집권세력은 국민에 책임의식 갖고 대안 강구해야, #국민울분의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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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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