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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점점 더워지면서 여름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여름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더위만이 아니다. 한여름에 창문을 열고 살면서 이웃에서 날아드는 담배냄새를 참아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특히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고충이 심하다. 기상조건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얼마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실험한 내용을 보니까 1층에서 담배를 피우면 5층에 있는 사람까지 담배냄새를 맡게 된다.

2008년 한국갤럽의 흡연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41%니까 자신이 사는 곳에서 5층 아래까지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즉 여름에 아파트에 창문을 열고 살면서도 담배냄새를 안 맡는 사람들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물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입장도 딱하기는 하다.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금연구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고 TV에도 간접흡연은 폭력이라는 공익광고가 수시로 방송된다. 자기 집 말고는 마음껏 피울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담배를 끊어버리고 싶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마약이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은 니코틴이라는 약물에 중독되어 있다. 혈액 중에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참기 어려운 금단증상들이 나타나서 니코틴을 보충해야만 해소가 된다. 니코틴약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조차 담배를 끊겠다고 공약하고도 못 지키고 있으니 보통 사람은 더 말해 뭐하겠는가. 갈수록 코너에 몰리고 있는 흡연자 입장에서는 다른 곳도 아니고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자기 집에서 피는 것까지 뭐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고 울분 섞인 항변을 할 만도 하다.

간접흡연이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자기 아파트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했지만 오염시킨 것은 이웃들과 공유하고 있는 공기라는 사실이다. 사유지에 있는 공장의 굴뚝이라도 대기오염물질을 맘대로 배출할 수 없고 사유지에 있는 배수구라도 폐수를 맘대로 방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 대략 같은 라인의 다섯층에 걸쳐있는 살고 있는 다섯 세대, 대략 20명이 공유하고 있는 공기를 오염시키게 되는 것이다.

흡연자 중에는 자신은 담배를 직접 피우기도 하는데 공기 중에 퍼진 그깟 담배연기 좀 마신다고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간접흡연이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미 공중보건국의 공식보고서에 따르면 간접흡연에 잠깐이라도 노출되면 심장과 혈관에 즉각적인 해를 끼쳐서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그래서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심장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25∼30% 가량 증가한다. 물론 폐암의 위험도 증가한다. 간접흡연을 통해 들이마시는 연기 속에는 포름알데히드·염화비닐·벤젠·비소 등 많은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미 환경보호청과 국제암연구기구는 간접흡연을 일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폐암의 위험이 20∼30% 증가한다. 미국 공중보건국 보고서에서는 간접흡연으로 미국에서만 한해 3000명이 폐암으로, 4만6000명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간접흡연은 어린이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 임산부가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태아의 성장에 장애를 일으켜서 저체중아를 출산하게 되는데 체중이 적게나가는 신생아들은 정상 체중 아기에 비해서 유병율과 사망률이 높다. 한 살 미만의 영아가 특별한 원인 없이 갑자기 사망하는 영아돌연사증후군이 있는데 간접흡연이 원인 중의 하나로 의심되고 있다. 간접흡연에 노출된 어린이들은 기관지염·폐렴·중이염의 위험이 높아진다.

간접흡연은 요즘 환경성질환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천식과도 관련이 많다. 간접흡연에 노출되면 천식의 발생위험이 높아지고 이미 천식을 앓고 있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10% 정도가 천식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간접흡연이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간접흡연은 폐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은 간접흡연이 노출된 순간 뿐 아닌 성인기의 건강에 까지 지속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접흡연이 피해를 주는 것은 호흡기계통 질환만이 아니다. 최근 어린이들에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흔히 ADHD로 알려져 있는데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과 충동성을 보이는 질환이다. 아직까지 ADHD의 원인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간접흡연으로 발생하는 뇌의 저산소증이 위험요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가족 보호하려고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 입혀서야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잦아진 것 자체가 간접흡연의 유해성 때문이다. 예전에 흡연자들은 안방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거실로 밀려나고 급기야 베란다로 나간 것이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때 가족들로부터 받는 구박도 구박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간접흡연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대신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셈인데 베란다에서 피우는 담배 때문에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5세대 20명 중에는 임산부나 천식을 앓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웃이 단순한 불편함을 겪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폭행을(물리적이 아니고 화학적인)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어야 할 자신의 집에서 말이다.

그리고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가족들이 간접흡연의 피해를 전혀 안 받는 것도 아니다. 간접흡연은 남이 피우는 담배연기를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2차 흡연'이라고도 하는데 요즘에는 '3차 흡연'의 피해에 대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3차 흡연'은 담배가 꺼진 이후에 담배잔류물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그 잔류물들이 흡연자의 입에, 옷에, 머리카락에 그리고 차안에 또는 주위 카펫 등에 남아있게 된다. 담배잔류물에도 담배연기와 마찬가지로 화학무기라고도 할 만큼 많은 유해화학물질들이 들어있다.

어린이의 IQ를 떨어뜨리는 납, 발암물질인 비소, 폴로니움 등이 있고 특히 시안화물은 산소공급을 감소시켜 영유아의 두뇌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가족들을 보호하겠다고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면 이웃들에게는 담배연기로 '2차 흡연'의 피해를 입히고 들어와 아이를 안아주면 자녀에게는 '3차 흡연'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집에 퇴근해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 꼭 피워야 한다면 베란다에서 피우지 말고 번거롭더라도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적어도 여름에는 말이다. 물론 니코틴 때문에 당하는 이 모든 수모와 번거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담배를 끊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어린이 환경과 건강포털이 케미스토리(http://www.chemistory.go.kr/)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간접흡연, #3차흡연, #베란다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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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학 전문가로서 우리 사회가 좀더 건강하게 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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