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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관리비가 평소보다 수만 원 더 나왔다. 깜박하고 잠그지 않고 그냥 나온 세면대 물값고 끄지 않고 나온 전기세이다. 이전의 전업주부 시절에도 가끔 그럴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짧으면 몇 분, 길어도 한 두시간 뒤에 잠그거나 끌 수 있었다.

그런데 직장 다니다 보니 퇴근해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고, 그렇게 한정없이 흘러내리는 수도꼭지나 다리미 전기같은 경우에는 수만 원 더 나가는 돈보다도 뭔가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심하게 든다.

곧잘 잊어먹는 경우는 그런 것 뿐만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의 키를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닌 디지털번호키인 우리집 키도 너무 많이 피곤하거나,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정신을 기울인 것인지, 빼먹은 것인지 열중하고 돌아오면 갑자기 집 번호가 생각안나 집에 못 들어갈 때가 더러있다. 그런 경우가 잦아서 최근에 큰 아이가 그냥 손을 대면 절로 센서감지가 되어 여는 문으로 바꾸었다.

갱년기 증상이 다양하다고 들었다.  무언가 당연한 것을 잘 잊어 먹거나 우울한 느낌과 진땀과 불안증과 식욕의 감퇴나 왕성함, 그리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반대로 졸음이 쏟아지기도 한다. 자다가도 새벽 세시나 네시에 더러 잠이 깨어 마루로 베란다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침에는 산행을 갖다 온 것처럼 나른해진다.

문화센터에 가르치는 주부아줌마들이 호르몬주사를 맞거나 혈행개선의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약을 부지런히 복용했는데 별 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다 돌아가신 엄마와 비슷한 어르신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서둘러 가는 이유가 바로 며느리가 갱년기우울증에 걸려서 외출하기를 꺼려서 손주를 데리러 가야하신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서로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너도 나도 며느리와 딸들의 갱년기타령은 정말 웃기는 것이라고 이야기들 하셨다. 하긴 그 시대에는 자신의 몸들에 신경을 쓸 겨를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갱년기 현상을 자각하지 못하고 삶의 급박한 고비를 허리띠 졸라매고 억세게 헤쳐나갔을 터니까....

못 듣지만 눈치코치로 대충 70%이상은 내용전달이 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못 듣는 척했다. 그러다 갑자기 붓을 잡고 지도하기를 멈추고 어떤 할머니의 입을 유심히 보았다. 그 할머니 말씀하시길 "콩을 가지고 콩국수를 하든, 두부를 하든, 비지를 하든, 콩나물을 가꾸든 날마다 먹으면 홀몬이가 머신가 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가 있디."

그러자 어느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콩만이 아니고 끝에 두자가 붙는 것을 먹는 것이여! 호두, 대두, 녹두, 등 말이여..!" 

충청도  특유의 끝이 올라가는 입술모양을 보고 나는 거의 알아 들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정말 콩 종류를 많이 먹으면 우울증이 없어지나요? "
 "그려...우린 옛날에 우울증 그런 것 모르고 살았시! 맨날 콩으로 청국장이며 콩나물이면 두부를 부지런히 먹었잖아! 서방이 술먹고 난리를 쳐도 청국장에 고추장이랑 콩나물 넣어 팍팍 비벼먹으면 별로 골치가 안 아프더라구.."

호두야 사람의 뇌모양으로 생겨서 호두를 하루 한 두개 먹으면 머리에 좋다는 말을 듣기는 햇지만, 모든 콩종류가 갱년기 우울증에 특효라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일 지도 몰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옛날 우리 친정엄마도 매일 콩을 갈아서 날마다 콩국을 하거나 된장도 직접 좋은 콩을 골라와서 만들어 먹고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머리가 맑으셧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일단 먹던 약들을 칼슘약만 빼고 일단 모두 끊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음성에서 유기농 콩을 갖다가 두부와 순두부를 만드는 장애인작업장과 연계해서 일하는 곳에 매주 두부와 순두부를 배달받기로 했다. 좋은 것은 혼자 먹으면 재미가 없다.

농약들어간 미국콩이 들어갔는데 오히려 비싸고 , 운영지분이 95%가 영국데스코라 판매금이 거의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플러스의 두부는 별로 효과가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직원들이 받아 먹기로 했기에 장애인작업장도 매상이 올라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정성껏 가꾸는 콩나물동아리의 콩나물도 받아 먹기로 하고, 밥할때는 여러가지 콩을 부지런히 놓기로 했다. 아이들은 싫어하지만 이팔청춘 아이들이야 뭔 상관있으랴... 그리고 회식을 하면 나는 고깃국대신 청국장이나 비지장을 먹었고, 아침에는 새싹 두유에 검은 콩가루를 타서 공복에 한 컵씩 마셨다.

그렇게 한 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몸무게가 3키로 빠졌다. 그리고 수면시간이 하루 5-6시간인데도 일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몸무게의 감량이나 장수가 아니다. 바로 옆에 노인보호요양센터와 학대예방, 독거노인지원센터 등과 같이 일하다 보니, 정말 치매가 어떤 것인지 생생히 실감이 나서 미리 예방하고 싶기 때문이다.

치매 뿐만 아니라 중년이 지나 노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관리를 못해 자식들에게 짐이 되거나 갈등을 불러 일으키면 외로운 독거노인도 될 가능성도 있고,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노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고 사는 부모로써 늙어서 자식의 짐이 되는 것만은 피해야 될 것 같다.

꽃이 피지 않는 고목이라도 꼿꼿하여 칡덩굴도 감아올리고 새들도 둥지를 틀면 좋은 숲의 명물이 된다. 10년 후, 20년 후의 노년을 위해서 한창 건망증이 심하게 시작되는 갱년기를 노년을 준비하는 출발신호로 받아들이며 콩사랑을 열심히 하고자  한다.


태그:#갱년기,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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