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1일 오전 <오마이뉴스>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중앙일보입니다. 혹시 신문 보시나요?"
중앙일보 구독을 권유하는 전화였다. 그것도 중앙일보 본사에서 직접 걸려온 전화다. 이러이러한 혜택을 줄 수 있으니 자사 신문을 구독하라는 것. 예상대로 '상품권을 주겠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이어서 판촉사원은 구독의 대가로 중앙일보 측이 제공해준다는 '현물' 및 '현금'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문사 지국들의 불법경품 제공 행위가 도를 넘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대형 신문사의 본사가 직접 불법행위에 나서고 있을 줄이야.
중앙일보의 판촉사원은 전화를 건 곳이 일반가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물었다.
"신문 구독하면 뭘 줄 수 있다고요?"중앙일보 측은 신문 구독 조건으로 6개월치 신문의 무료 제공과 5만 원짜리 상품권 지급을 제시했다. 꽤 큰 액수다. 신문을 구독하면 상품권을 주겠다는 제안은 여러 번 받아 봤지만 '5만 원'은 처음이다. 일반 소비자라면 구미가 당기고도 남을 제안이다.
연간 구독료의 130%에 달하는 경품 하지만 중앙일보의 제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만 원짜리 상품권 대신에 중앙일보가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정기구독권 1년치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의 가격은 한 권당 3000원이고, 1년 정기구독료는 15만 원이다. 신문 구독 경품 치고는 파격적인 조건임에 틀림이 없었다.
'중앙일보 6개월 무료 구독(90,000원)+상품권(5만 원)' = 140,000원.'중앙일보 6개월 무료 구독(90,000원)+이코노미스트 1년 구독(150,000원)' = 240,000원.신문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도입된 '신문고시'에 따르면 무가지와 경품을 합한 금액이 연간 구독료의 20%를 넘어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측이 제시한 무가지와 경품 가격을 합하면 각각 중앙일보 연간 구독료(180,000원)의 70%, 130%를 넘는다. 연간 구독료를 훌쩍 뛰어넘는 경품을 받을 수도 있는 셈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명백한 신문고시 위배다. 이쯤 되면 20% 운운하는 신문고시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머쓱한 상황이다.
약정기간 내 해지하면 '현금'으로 돌려달라 파격적인 무가지와 경품 혜택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1년'이라는 약정기간이다. 무료구독 기간 6개월을 더해 18개월 동안은 중앙일보를 봐야 한다는 것. 18개월 이내에 중앙일보와의 계약을 해지한다면 지급받은 경품의 가격만큼 '현금'으로 돌려주어야 한단다.
중앙일보 사원은 약정기간을 이유로 구독을 망설이는 기자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는 "1년은 금방 간다"며 "이번 달이 보름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도 (추가로) 무료로 해 주겠다"고 설득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는 기자에게 "이코노미스트 제공은 선착순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빨리 신청하라"고 독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내세우는 언론사의 판촉 사원이 비싼 경품을 미끼로 고객을 유치해야만 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지난 6월 15~16일에 걸친 민주언론운동연합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중동 지국 90곳 중 89곳이 신문고시를 어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가지를 4개월~1년까지 제공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경품을 주는 지국들이 점점 늘고 있다. 경품의 품목도 선풍기, 청소기, 자전거 등 현물에서 백화점 상품권이나 '현금'으로 바뀌고 있다. 신문고시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위는 12일 오후 전원회의를 열어 신문고시의 존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신문고시가 존속할 수 있을지, 폐지될지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문고시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해도 혼탁한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신문고시가 재시행된 지 8년이나 지난 지금도 신문사들의 무분별한 경품 제공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신문고시의 존폐 여부를 논하기 이전에 신문시장의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혁신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서유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