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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한다. 이제까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가끔 생각나면 '골라 먹기'만 했을 뿐, 한번도 제대로 정독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그를 보내고 나니 '책장' 보기가 부끄러웠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골랐다. 김대중이 직접 쓴 자전적 에세이로는 아직까지는 유일하다는 점을 우선 고려했다. 이외에도 DJ가 직접 쓴 책은 3권이 있지만, <내가 사랑한 여성>은 테마가 국한돼 있고, <배움>은 잠언집 그리고 <21세기와 한민족>은 연설문집이라 일단 제외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시기 또한 '맞춤'이다. 1992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쓴 책이다.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은 자연인으로서 김대중이 더 많이 드러나 있으리라 기대했다. 또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대중 없이 해 나가야 할 우리'를 위해 그가 오래 전 남겼던 책이기도 했다.

김대중은 자신의 정계 은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는 여러분의 시대"라고, "이제는 김대중 없이 해나가야 한다"고. 정말 그런 시대가 오고 말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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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스스로 매우 흥미롭게 쓴 책, 처음부터 "나는 겁이 많은 사람"

김대중은 1993년 12월 출간 당시 초판 서문을 통해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때 뭐가 달라질지 내 자신 스스로가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어쩌면 그것이 나를 지지해 주고, 나를 염려해준 국민들에게 조그만 보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논문이나 연설집, 시사평론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써야 했고, 과거에 내놓고 말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나, 감췄던 사실도 솔직하게 털어놨다고 소개하고 있다. 써 놓고 보니 처음으로 부드러운 책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첫 장 제목부터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어렸을 적에 도깨비가 무서워 항상 어머니나 누나의 도움을 받아야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개가 무서워 개를 키우는 집에는 심부름도 가지 못했으며,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아 남을 때리지도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부드러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반년 동안 한 지붕 밑에서 살았던 이야기,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을 갖게 된 연유도 설명한다. 특히 천주교 신자로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내는데, 김대중이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무교'인 나에게도 그 어떤 '선교'보다 강력하게 다가왔다.

동행
 동행
ⓒ www.kdjh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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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여성을 사랑했다"... 이희호씨에게 가장 감사하는 것

"파리를 잡아서 거미줄에 걸어 줄 때, 파리가 아주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잡습니다. 이것은 약간의 기술을 요하는 것입니다. 또한 잡은 파리를 거미줄이 찢어지지 않도록 걸어주는 것도 어려운 동작입니다. 나는 몇 번의 반복을 통해 기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 후 녀석의 '식사'를 관찰하려면 방구석으로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먼저 죄송하다. 그래도 웃음이 자꾸 나온다. 감옥생활에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구석에 숨어 거미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상업학교 5학년을 마칠 때까지 김대중을 몸살나게 만들었던 짝사랑의 그녀도 궁금해진다.

김대중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세 사람의 여성을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첫 부인 차용애씨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부부이기 이전에 동지"라는 이희호씨에게 무엇보다도 감사한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가장 큰 감사와 사랑의 원천은 그녀가 일구어 준 가정의 단결과 행복에 있습니다. 그녀는 나와의 사이에서 홍걸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상하게도 자기가 낳은 아들보다 전처 소생의 두 아들과 더 가까웠습니다. 두 아들은 나보다는 모든 것을 제 어머니하고 상의합니다."

그러니 김대중이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세 아들 내외와 7명의 손자 손녀들과 함께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입은 절로 벌어져 다물 줄 모른다"고 한다. 영결식에서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눈물을 흘리던 손자 모습이 겹치는 순간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이 열린 23일 동교동 사저에서 오열하던 손자 김종대씨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이 열린 23일 동교동 사저에서 오열하던 손자 김종대씨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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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원로가 아닌 삶의 원로로서...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이제 인자한 할아버지가 삶의 원로로서 들려주는 인생 철학에 귀기울일 차례다. 흑 속에 백이 있고, 백 속에 흑이 있다, 우리 대응 여하에 따라 행과 불행이 결정된다. 자신의 지적, 인격적 성숙의 상당 부분이 감옥생활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면서 전하는 지혜다. 마흔 여덟 살 때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용기를 준다.

"누구든 10년만 한 우물을 파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은 여섯 번에 걸친 도전 끝에 국회의원이 된 그를 알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한 가지 성취하면 또 새로운 도전이 오고, 그것을 극복하면 또 새로운 도전이 온다"는, 그래서 "인생은 도전과 응전"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허나 정작 김대중은 에리히 프롬의 질문 '소유나, 존재냐'를 되묻는다. "'무엇'이 되기만 하면 '어떻게'는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넓게 퍼져 있는 것 같다"면서 "중요한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이며,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고,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고 강조한다.

"(독재정권과 싸우다)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을 지시해 준 것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나의 확고하고 선명한 인생관이었습니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만 '어떻게'라는 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976년 유신철폐 촛불시위에 참여한 김대중 전 대통령
 1976년 유신철폐 촛불시위에 참여한 김대중 전 대통령
ⓒ 김대중 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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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국민행동지침'... "북한에게 오판 기회, 어처구니없었다"

그래서인가. 그는 이 책에서 의외로 많은 부분을 재야인사나 이른바 '운동권'을 비판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1980년 서울의 봄에 재야지도자들이 자신에게 내놨다는 '국민행동지침', 김대중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를 오판한 사례로 지적한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군대를 향해 무기를 놓고 나오라는 건 휴전선을 북쪽에게 넘겨주라는 것으로 신군부 세력이 자의로 해석할 수 있는 절호의 구실을 주는 것이고, 바로 터무니없는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더욱이 즉결 처분도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안보를 위태롭게 해서 북한에게 오판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며,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파괴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태도만이 국민의 지지 속에 민주화를 성취해낼 수 있는 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런 김대중을 아직도 '빨갱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없는 일이다. 그는 강경대군 사건 당시 역시 "정권 타도에 대한 동참 요구가 있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면서 "선거에 의하지 않은 정권의 인위적 교체는 절대 반대한다"는 종래 태도를 견지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영결식이 열린 23일 서울광장에서 눈물 흘리는 시민들
 영결식이 열린 23일 서울광장에서 눈물 흘리는 시민들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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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시시비비를 먹고 자란다"

서문에 밝혔듯 "과거에는 내놓고 말하기를 주저했을" 내용들임에 분명하다. 그럼 왜 그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자마자 이런 예민한 과거들을 적시했을까. "절대 다수의 국민에게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야 한다는 오랜 신념의 결과"였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과 같이 가는 자에게는 패배가 없다. 그것이 바로 '김대중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대화의 정치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독재와 싸운다는 사람들이 남에게 말할 권리를 주지 않고, 내 주장만 한다는 것은 하나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대화의 파트너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청이야말로 최고의 대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바치는 첫 번째 이야기'는 이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대화 문화의 발전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비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 마음 속에 수용되어야 제 몫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 비판이며, 그렇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강조한다.

대화·비판 문화의 발전, 그래야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시시비비를 먹고 자란다. 허나 우리 국민들은 쉽게 잊어버리는 성향이 있다. 김대중은 "지도자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국민을 속이고도 2개월만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국민을 깔보게 해서는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국민은 가장 준엄한 감시자입니다. 이처럼 망각할 줄 모르는 국민들의 비판 정신과 감시자의 자세가 그 나라에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교훈과 경종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숨쉬어 온 원인입니다. 국민이 잘나야 정치인이 겁을 내고, 국민이 시비를 끝까지 가려야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는 뿌리박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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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은 될 수 있다

시시비비가 없는 곳에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자라지 않는다. 국민이 무서워야 한다. 국민들에게 바치는 두 번째 이야기다. 그래서 세 번째 이야기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비판을 함으로서 입게 될 손실을 막기 위해서 자기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야말로 "악을 조장하고 선을 좌절시켜 왔다"고 강조한다.

김대중은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라면서 "연약한 육체와 제한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독재정권을 비판했던 것은 "두렵고 겁이 나더라도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동하는 양심'을 지키고자 했다.

우리도 겁이 많다. 슈퍼맨은 아니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은 될 수 있다. 이것이 왜 김대중이 국민들에게 바치는 마지막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을 읽고 비로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김대중 없이 해나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는 "내가 기록되고 싶은 역사의 페이지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이룬 사람의 페이지가 아니"라고 했다. "인생을 어떻게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느냐 하는 사람의 페이지"이라고 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할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점

나처럼 김대중 관련 책을 한 권도 정독하지 않은 사람 ★★★★★☆
어린이에게 자연인 김대중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부모님들 ★★★★★
고단한 현실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 ★★★★
김대중 관련 책을 세 권 이상 정독한 사람 ★★★
김대중을 빨갱이라 믿는 사람들 ☆☆☆☆☆★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개정판

김대중 지음, 김영사(2005)


태그:#김대중, #DJ,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행동하는 양심,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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