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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경제일간지 기자로 근무할 때다.

 

출입처에서 다른 회사 후배 기자 하나가 말 그대로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정운찬 서울대 교수한테 전화 취재를 했다가 호통만 들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말이야, 쉽게 쉽게 취재나 하려고 그러고. 내 강의를 한번만 와서 들어도 되는 것을!"

 

그 기자가 전한 정교수의 화법이다.

 

그의 평소 성품에 비춰 볼 때 언제든지 발생 가능한 상황으로 여겨졌다.

 

나 또한 앞서 정운찬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몰라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하는 쌀쌀한 대답만 받은 적이 있었다. 반면 두 차례 세미나에서 질문을 던졌을 때는 상당히 충실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진짜로 전화나 돌리는 기자한테는 까칠한 반면, 찾아와 듣고 묻는 사람에게는 성실하게 응답했다.

 

(두 차례 세미나와 관련해 지금도 기억나는 건 논문 내용이 상당히 비슷했다는 것이다.

 

EBITDA와 같은 지표도 소개해 가면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건데 2000년 4월 은행 임원들을 상대로는 우리말로, 그해 10월 금융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는 영문으로 발표했다.

 

이것 또한 논문 중복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 상황에서는 두 번 아니라 20번도 넘게 반복 강조해야만 할 내용이었다. 6개월 동안 기업들이 보여준 건 '왕자의 난'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면모가 지금의 정운찬에게 남아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운찬 교수는 그 후 서울대 총장이 돼서 '황우석 사태'를 통해 자주 TV에 등장했고, 또 정치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됐다. 그를 쫓아다니는 기자들도 경제부에서, 사회부, 정치부 소속으로 바뀌었으니 "와서 내 경제학 강의를 들으라"고 호통 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경제부총리도 아닌 국무총리가 됐다.

 

앞서 스승인 조순 교수에 대해 "선생님은 정치를 해서 스타일이 너무나 무너지셨다"고 꼬집었던 그가 이제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스승의 실패와 달리 정운찬 총리가 성공하려면 길은 하나 뿐이다. 경제학과 평교수 때의 소신이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백 가지 메뉴를 가진 이 정부의 정책 리스트에서 그의 소신과 가장 동떨어진 것이 있다.

 

바로 금산분리, 그 중에서도 은산분리(은행과 재벌의 분리)의 원칙이다.

 

사실 이것은 일개 학자의 소신을 지키고 못 지키는 것 이상의 중대한 국가 문제다. 이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지금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성장률을 뺏어먹는 정도가 아니라 100년의 씻지 못할 부실을 남기는 결과가 된다.

 

다행히 정운찬 총리가 청문회 과정에서 은산분리에 대한 개인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기대마저 갖게 되는 대목이다.

 

가장 바라는 것은, 국무총리로서 은산분리의 원칙을 강하게 복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현 정권이 단순히 이미지만 개선하기 위해 정운찬을 '채용'했다고까지 평가 절하한다. 아주 집요하게 추진한 은산분리 철폐다.

 

그래도 정 총리가 뜻밖의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해 이것만큼은 제 모습을 되찾아준다면 아마 '정운찬 임명'의 진정성까지 널리 과시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총리일 때 되살리지 못한다면 설령 대통령이 된다 한들 과연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이미 은행 지분은 재벌들 손에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뒤 일 것이다.

 

정책변경을 달성 못하더라도 차선은 있다.

 

더 이상 원칙조차 공유하지 못 함을 확인했다면 과감히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관성 있는 학자 정운찬은 혼탁한 정치판에서 굴하지 않은 인물로 살아남는다. 또한 법이 비록 일시적으로 교란됐다 하나 나중에라도 은산분리를 되살릴 수 있는 국민적 추동력도 살아남는다.


태그:#정운찬, #금산분리, #은산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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