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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전인숙,김향란, 원지윤, 유엉 티 녹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전인숙,김향란, 원지윤, 유엉 티 녹트.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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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자장에 계란프라이가 없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1년 반. 이런 저런 재미난 일도 있지만 워낙에 덤벙대는 성격이라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종종 놀라곤 하는 게 문화적 차이다. 땅덩어리도 좁은 나라에서 고작 서울과 부산의 거리인데도, 난 여태껏 간자장에 계란프라이는 기본으로 올라가 있다고 알고 살았다. 그런데 서울에는 그런 게 없단다.

계란프라이가 빠진 허전한 간자장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주하고 있는 이주자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결혼을 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과 중국에서 온 이주자들은 특히 많다. 하물며 우리나라 내에서도 이런 문화적 충격(?)이 있는데 외국에서 물 건너 온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4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6월에 사이트를 오픈한 결혼 이주여성들의 생활 커뮤니티 '망고넷'은 초기 이주여성들이 겪을 그런 '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자, 한국에서 '좀 살아본' 이주 여성들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만든 인터넷 사이트다.

물론 이주자들을 위한 사이트와 단체들은 넘쳐나지만, 그들이 내놓는 정보라는 게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이주자들에겐 어렵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망고넷에는 이주여성들에게 필요한 자료들과 소식들이 아주 친절하게 소개돼 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도 마련돼 있다. 이 사이트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어와 베트남어로도 번역돼 있기 때문.

덜익은 망고 떠올리며 만든 이주여성 커뮤니티 '망고넷'

사실 망고넷은 한 시민단체가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됐다. '아시아의 창'이란 시민단체가 '한국여성재단 다문화지원사업 프로젝트'에 낸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망고넷이 만들어지게 된 것. 그런데, 이름이 특이하다. 망고넷. 사이트에 접속하자 마자 뜨는 덜익은 푸른 망고는 베트남인들에게 '고향'과도 같다. 망고넷이 이주여성들에게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단다.

'생활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만큼 망고넷에 올라오는 이야기들도 잔잔하고 따뜻하다. '슈퍼에서 파는 생우유, 우리 아이 언제 먹어도 돼요?', '애기 초등학교 가기 전에 어떻게 준비해요?'라는 육아상식부터 다른 사람에게는 물어보기 곤란한 물음까지, 그 범위가 참 넓다. 한 이주여성은 '남편이 저와 처음 결혼이에요? 동네 아줌마가 아니래요. 남편도 이야기 하지 않아요. 어떻게 알아요?'라는 글을 올렸다. 조금 난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선배 이주여성들이 내놓은 해답은 간단했다. '혼인 관계 증명서를 끊어보세요.' 혼자서 끙끙 앓았을 수도 있을 문제들이 망고넷에선 쉽게 풀린다.

아시아의 창 사무실에 걸려있는 각국의 환영 인사들.
 아시아의 창 사무실에 걸려있는 각국의 환영 인사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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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도 귀엽다. '한국 남자들은 왜 다 그렇죠?'라는 애교 섞인 불만도 있지만, 금연 금주를 해줘서 감사하다는 글도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나에게 시집와서 고맙다, 그리고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하다'는 짧지만 진심어린 글에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지난 14일 망고넷을 운영하고 있는 군포 '아시아의 창'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베트남과 중국 출신인 4명의 이주여성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 전인숙(47·중국)씨와 유엉 티 녹트(30·베트남)씨는 망고넷의 운영자로, 번역과 상담을 맡고 있고 김향란(27·베트남)씨와 원지윤(26·중국)씨는 YWCA에서 파견을 나와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8년 된 운영진들은 이주 초기 자신들이 겪은 어려움들을 밑거름 삼아,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곤 벌어진 수다 한 판. 이주여성들이 생각하는 '한국' 그리고 '한국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솔직하고 발랄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
유엉 티 녹트(이하 티) : "6년 전 베트남 선교사로 교회를 통해서 남편이랑 같이 왔다. 남편이 베트남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 이주자는 아니다."

원지윤(이하 원) : "친척 소개로 한국 사람과 결혼했고, 한국에 온 지는 5년 되었다. 맨 처음에 들어와서 애먹은 기억 때문에,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사회 복지를 시작했다."

김향란(이하 김) : "결혼해서 한국 온 지는 6년이다. 남편도 좋고 잘 지내고 있다."

전인숙(이하 전) : "여기서 내가 제일 고참이다. 맨 처음에는
'멘토'활동으로 시작해서, 상담을 시작한 지 8년 정도 되었다."

"아이들에게 우리 모국어도 가르치고 싶다"

- 한국남자와 결혼한 이유가 따로 있나? 중국과 베트남 남자들과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 "한국 남자가 자상하고 애교도 있다."

: "그리고 호주로서의 책임감, 섬세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의 경우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자립심이 없고, 부모한테 의지하는 면이 많은 반면에, 한국 남자들은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하지만 술을 많이 먹고, 술 먹을 때 친구 사이에 의리 같은 게 있어서 그건 좀 안 좋다. 한국 남자들 (술 마실 땐) 통이 크다."

: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지만 어떨 때는 애기 같다. 주변에서 봐도 다들 겉으론 무뚝뚝한데, 집에선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 "그러니까 말이다."

- 한국 남자들이 나름 매력이 있는지는 몰랐다.(웃음)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녹록하지는 않을 텐데?
: "한국 드라마에서 본 강남 모습에 속은 면도 없지 않다. 현실은 다르니까."

: "그리고 중국산은 꼭 중국산이라고 한다. 캐나다, 미국산은 수입산이라고 하면서."

: "시장 가면 김치 맛있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이 한 거라고, 중국산이 아니라고 하고."

: "중국 사람들은 벌레 구워먹고, 책상도 씹어 먹는다고 아는 것 같다."

- 한국 사람들이 뿌리 깊은 단일 민족 같은 의식이 있어서, 편견이 있을 것 같다.
: "한국어는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엄마 모국어를 배우는 것은 싫어한다. 한국 가족들이 엄마 국가 언어를 안 가르쳐주려고 하는 게 이상하다. 아이가 양쪽 언어를 배우면, 아이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영어는 학원까지 다니면서 가르치는데, (이주자들) 모국어는 안 가르친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데, 집에서는 베트남 말 쓰지 말란다."

"이주여성 취업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베트남과 중국 이주여성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 사이트 '망고넷'.
 베트남과 중국 이주여성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 사이트 '망고넷'.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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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만날 자기 것만 추구하고, 아내 것만 버리라고 강요하는 건 아닌 거 같다."

: "아내 말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편이 늘 '집에만 있어라'하면서 뭘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문제다."

: "일하는 것도 싫어하고 같은 나라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집에서 애만 보라고 한다. 애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멀리 와서 사는 거니까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혼해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서로서로 노력하고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이주여성 취업 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글 교육은 많다. 하지만 다른 교육들은 많지 않다. 내 경우 YWCA에서 인턴활동을 했는데, 올해도 15명밖에 안 뽑았다. 이주여성 취업 박람회 같은데도 많은데, 가끔 그런 자리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 "취업이 원래 힘들기도 하지만, 애들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하고, 가끔 문 앞에 '교포 절대 사절'이라고 적혀있는 것도 본다. 좀 그렇다. 또 한국에서 애라도 키우려고 하면 이것저것 서류가 많기 때문에 결국은 중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베트남계나 중국 쪽은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아서 한국에서 살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사실 너무 아깝다."

: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교육기회를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주었으면 좋겠다."

사무실 내부.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무실 내부.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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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 함께 망고넷을 운영하는 '아시아의 창' 김민정 활동가는 "이주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콘텐츠 확보가 생각보다 어렵다"며 "문성실의 맛있는 밥상 요리 블로그, 보령메리앙스의 육아, 임산분야, 보건복지가족부, 아기사랑 등에서 콘텐츠 번역을 허락해 줘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패션쪽으로도 많은 정보 공유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르게만 생각했던 이주자들이 나와 너무 비슷하다는 모습에 놀랐다. 애가 둘인 결혼 6년차 주부가 나랑 나이가 같은 꽃다운(?) 26살. 그들도 이주자이기 이전에 그저 사랑 받고 싶고, 유행에 관심이 많은 한 여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게 만났지만 살아가면서 부부 사이에 질투도 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까 고민도 하고, 밖에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 때로는 부모님 생각에 눈물도 흘리고, 문화 적 충격 때문에 고생도 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게 꼭 이주자여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는 소통과 대화의 문제인 것만 같았다.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자들의 정착기간이 길지 않은 건 사실이다. 처음보다는 많이 너그러워졌다고는 하나, 모든 문제는 우리 모두 마음에 하나씩 자리 잡은 편견 때문이 아닐까?


태그:#망고넷, #결혼이주자, #아시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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