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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2006년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작업에 나선 한 소방관의 모습.
 사진은 지난 2006년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작업에 나선 한 소방관의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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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준비되어 있고, 곧 우리 손님이 도착할 것입니다.
내 남편은 어린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또다시 나갔습니다.
집에서 혼자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계획은 엉망이 되어가고,
내 첫 반응은 단지 똑바로 앉아서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곧 다시 내 삶의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소방관의 아내가 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했을 때
우리 아이가 우리 아빠가 사람을 구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씩씩하게 이겨낼 것이다.

거센 바람과 광란의 화염이 그의 마지막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의 도움으로 나는 내 남편의 충실한 동료로 남을 수 있습니다.

-<소방관 아내의 기도> 전문

나는 소방관의 아내이다. 언젠가 한 소방관의 아내가 모 잡지에 기고한 글 속에서 말했듯이 나도 소방관의 아내로 살아가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고 그저 남편의 직업이 소방관이었기에 이제껏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아내로서 느끼며 산다.

그동안 소방관의 힘든 격무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뒤에 비로소 3교대 근무가 이루어져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 여건과  스트레스도 차츰 나아졌고 2교대 근무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기면서 전보다 근무여건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가족이 아니면 절대 모르는 소방관 가족의 '비애'가 있다.

3교대 근무로 인해 평일에는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일반 직장인에 비해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가을햇살 따사로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가족 모두 나들이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소방관 남편은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도 근무일 때가 많아 우리 가족은 사실 변변히 온가족 모두 가족 나들이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꾼다. 아빠 근무시간에 맞춰 집근처 할인마트나 1시간 미만 드라이브가 전부이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는 가족 모두 함께 할 수 없다는 '비애감'이 더하다. 명절 연휴는 소방관들이 비상근무체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쉴 수가 없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 없이 시골 시댁에 가는 것이 어려워 시골 어머님께 찾아뵙지 못해 번번히 죄송하다는 안부전화만 드려야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제법 장거리여행도 갈 수 있어서 용기를 내어 아빠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명절 때마다 버스를 타고 시골 시댁에 간다.  그런데 언젠가 명절 때 딸아이가 시골 가는 버스를 타고 문득 창밖을 보면서 "우리도 아빠하고 같이 시골가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왜 그렇게 가슴 속이 미어지는 건지….

문득 창밖을 보니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골로 내려가는 가족들이 탄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탄 고속버스 안에도 대부분 아빠와 함께 시골 가는 가족 일행이 대부분이었으니 아빠가 없다는 허전함을 느낀 딸아이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딸아이의 허전함만큼 나도 마음 속에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뿐이랴. '아빠 없는 설움'은 매주말마다 계속된다. 주말마다 근무가 자주 있는 경우는 아예 아빠를 빼고 아이들과 나 셋이서 함께 주말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 단풍여행이나 온천 여행 같은 장거리 코스는 불가능하다. 밤낮 안 가리는 출근시간처럼 들쭉날쭉 하는 퇴근시간 때문에 그저 아이들 아빠가 퇴근할 시간까지 다녀올 수 있는 짧은 여행계획만 세운다.

유독 늦여름 같은 포근한 날씨가 잦았던 황금 같은 요즘의 가을 주말에도 설악산 단풍 여행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집과 가까운 서울 숲에서 자전거 타며 단풍감상으로 가을여행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손주 녀석 얼굴 보고 싶을까봐 오라고 하고 싶어도 행여 밤새고 근무하고 온 소방관 사위 피곤할 까봐 자주 전화도 못하시는 친정아버지를 위해 이번에도 또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1박 2일을 하고 왔다. 명절 연휴마다 근무 때문에 매번 시골에 못 내려가서 추석 2주쯤 후에는 매년 추수를 도우러 가는 남편의 일정과 또 안 맞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가족은 늘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스케줄로 돌아간다. 평일에는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에 밀려 아빠가 시간이 나도 아이들이 시간을 못 내고, 주말에는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하고 싶어도 근무를 해야 하는 아빠의 근무 시간표 때문에 그냥 가족 모두 서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아예 포기하기도 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살아간다.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가 소방관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서 주말마다 가족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고 결혼 12년 동안 지금까지 변변히 여행 한번 못 가보았어도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한 지붕 두 스케줄이 지금껏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었나 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분일초를 다투며 화마와 싸우면서 모든 시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남편과 모든 소방관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 가족처럼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늘 양보하고 소방관 남편을 위해 말없이, 남들보다 빈자리가 큰 아빠의 역할까지 대신하며 묵묵히 소방관 아내로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방관 아내와 그 가족들에게 더 깊은 감사와 애정을 보내고 싶다.

대한민국의 소방관 파이팅!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와 남편을 둔 가족들에게 두배로 화이팅!!


태그:#소방관 아내, #소방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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