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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만 나오는 '특식'이 있다. 군대를 전역했거나, 한창 복무 중인 사람이라면 대번 알아차릴 메뉴, '군데리아'다. 데운 빵 사이에 정체모를 '고기패티'를 깔고 딸기잼과 약간의 샐러드를 곁들인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군대(軍)식 롯데리아', 즉 '군데리아'이다. 손수 만든다는 말에 몇몇 여성들이 '끓인 라면'의 유혹처럼 맛보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말리고 싶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불과 3~4년 전에 먹었던 '고기패티'에는 알 수 없는 냄새가 났다. 발냄새 같기도 했고, 비오는 날 창고에 퍼지는 악취 같기도 했다. 누군가는 고기패티에 '닭대가리'가 들어간다고 음모론을 펴기도 했다.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었지만, 고참이 되어갈수록 군데리아를 멀리했다. 대신 햄버거 빵에 딸기잼을 발라먹을 뿐. 아직도 궁금하다. 고기패티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분쇄육은 분명한데, 누가 취재 좀 했으면 좋겠다.

지난 14일 미국산 쇠고기가 과천 정부 청사를 경호하는 '경기 706 전경대'에 3월부터 공급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쇠고기 파동 이후, 미국산 쇠고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식단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전·의경에게 공급됐다고 하니 더 걱정스럽다. 내 귀에는 아직 지난해 어느 청문회에서 발언한 정운천 전 농림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정부종합청사 식당에도 미국산 쇠고기 꼬리곰탕과 내장탕을 올릴 용의가 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언론도 '망각의 강'을 건넜다. 조중동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박스기사 내지 2단 기사로 처리했다.

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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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이 산업화된 후, 식재료 안전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대개 '사적영역' 내지는 '여성의 영역'으로 다뤄질 뿐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겨우 미국산 쇠고기 사건 정도가 '정치의 영역'으로 의제화 됐다. 이런 점에서 식품산업을 정치의 영역에서 다룬 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읽어볼 만하다. 미국 축산업의 비위생적인 실태도 더불어 알 수 있다.  

<패스트푸드의 제국>은 어떻게 패스트푸드 산업이 대중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함께 이면에 숨겨진 식품자본의 문제를 저널리스트 관점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 <패스트푸드네이션>도 같이 보면 좋겠다. 에릭 슐로서가 지적하는 바는 어렵지 않다. 식품산업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손맛'의 영역이 아닌 노동정책, 마케팅, 정치로비, 육가공 유통을 둘러싼 파워 게임이며, 정치싸움이다.

패스트푸드 산업을 설명할 때, 기본이 되는 축산업을 안 짚고 넘어갈 수 없다. 국내에 수입되는 쇠고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더욱 주목해야 한다. 미국 축산업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대량 사육을 한다. 네브라스카의 한 농장은 수만 마리 소를 키운다고 한다. 빠른 성장을 위해 약물을 투여하고, 동물성 사료를 먹인다. 정상소보다 빠른 발육으로 배설량도 배로 늘어 도로로 넘치기까지 한다. 지저분한 환경은 병원균을 빨리 퍼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국내에 잘 알려진 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병든 구조를 만든 세력들이 공고하다는 점이다. 축산업자들은 경제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 '로비력'이 대단하다. 부시 대통령은 2000년, 2004년 대선 때 축산업자들이 기부한 선거자금의 80%를 가져갔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1990년대 이래 축산업계가 지출한 정치자금은 2200만 달러에 이르며 4분의 3을 공화당이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특히 핵심 육류 산업의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정치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레이건 행정부의 첫 번째 농무부 장관은 양돈업 관계자였고, 두 번째 농무부 장관은 미국육가공협회 회장 출신이었었다. 부시 대통령 때는 전국 축산업협회 회장 출신이 지명되기도 했다. 이해관계자들은 연방 예산 절약과 인력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이유를 들어 검사 시스템을 약화시켰다. 공공보건 비용을 삭감했고 식품 안전 규제를 완화했다. 클린턴 정부 때는 살모넬라 식중독 균을 막기 위한 정책까지 비효율이라는 이유로 철회됐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일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았던 '한미 쇠고기 협정'이 대표적이다. 한미 FTA의 조기 타결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우선 처리라는 무리수를 두었다.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그나마 재타결안도 일본에서는 엄격히 규제하는 30개월 미만의 머리뼈, 뇌, 척수 등뼈들을 수입하도록 허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품산업의 노골적인 압력도 있었다. 육류 수입 업체인 에이미트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다"고 말한 배우 김민선에게 3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미국산 쇠고기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마시는 생수에 발암위험물질인 브롬산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참여연대가 환경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제조사는 경영․영업상 이유로 거부당했다. 정부와 기업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피해는 시민들이 보고 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패스트푸드네이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패스트푸드네이션'
ⓒ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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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산업을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 있다.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광고 마케팅이 문제다. 광고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놀이동산이나 장난감을 이용해 유혹하고, 인공조미료로 감미한 음식을 중독시킨다. 맥도날드의 해피밀이 대표적이다. 장난감을 모으기 위해 구매하지만 정작 햄버거는 버린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빵 안에 있는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국진이 빵', '피카추 빵'을 사고 빵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비합리적인 소비도 문제지만 '간경화'나 '비만' 등의 건강문제가 더 심각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비만은 미국에서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다. 영국과 일본에서도 패스트푸드의 상점이 두 배 늘어날 때 비만율도 두 배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15세 이상의 세계인 가운데 비만인 사람이 약 4억 명, 과체중이 16억 명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 아동의 3분의 1이 과체중이라 한다. 비만이 각종 성인병과 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패스트푸드는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이 아닌 '악몽의 음식'이 되고 있다.

식품안전 문제는 '지구 온난화'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타나 해결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게 다반사다. 식품안전을 책임지는 해당 부처의 관리 감독과 언론사의 성실한 보도가 필요하다.

그 요구와 함께,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식품 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에릭 슐로서는 책 에필로그에 이렇게 밝힌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너무도 쉽다. '사지 않으면 된다'. 패스트푸드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들은 악당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사업가일 뿐이다.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목초를 먹은 소고기로 햄버거를 만들 것이다. 이윤이 생기는 한 그들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로 그것을 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옮깁니다. http://blog.daum.net/homerunsery



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2001)


태그:#황상호, #패스트푸드의 제국, #패스트푸드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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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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