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누각이 있다. 바로 영월 영흥리 시내 한복판에 있는 관풍헌의 자규루다. 이상하게 영월에 답사를 갈 때마다 비가 쏟아졌다. 자규루에 올랐을 때는 비바람이 심해 답사를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자규루는 영월의 동헌이었던 관풍헌에 속해 있는 누각이다. 이 자규루는 원래 세종10년인 1428년에 영월군수 신숙근이 창건한 누각으로 매죽루라 불렀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청령포가 홍수를 인해 침수가 되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단종임금은 이곳에서 생활을 할 때 이 누각에 올라 자규사와 자규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단종임금이 이곳에서 자규사를 지은 후 누각 이름이 자규루로 바뀌었다고 한다. 단종은 이곳에서 날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전한다.
▲ 자규루 단종임금이 이곳에서 자규사를 지은 후 누각 이름이 자규루로 바뀌었다고 한다. 단종은 이곳에서 날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전한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자규루의 한편에는 매죽루라는 현찬이 걸려있다. 자규루의 원래 이름이다,
▲ 매죽루 자규루의 한편에는 매죽루라는 현찬이 걸려있다. 자규루의 원래 이름이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달 밝은 밤에 두견새 두런거릴 때(月白夜蜀魂啾)
시름 못 잊어 누대에 머리 기대니(含愁情依樓頭)
울음소리 너무 슬퍼 나 괴롭네(爾啼悲我聞苦)
네 소리 없다면 내 시름 잊으련만(無爾聲無我愁)
세상 근심 많은 분들에게 이르니(寄語世上苦榮人)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愼莫登春三月子規樓)

단종임금은 누각에 올라 자신의 신세를 이렇게 한탄했다. 『장릉지(莊陵誌)』에 전하는 자규사다. 단종임금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이렇게 슬픈 나날을 보냈다. 장릉지에는 또 한 수가 전한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一自寃禽出帝宮)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맨다(孤身隻影碧山中)
밤이 가고 또 다시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假面夜夜眠無假)
해가 가고 또 가도 한은 끝이 없구나(窮恨年年恨不窮)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산봉우리 달빛만 흰데(聲斷曉岑殘月白)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血流春谷洛花紅)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고(天聲尙未聞哀訴)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내 귀만 홀로 밝은고(何奈愁人耳獨聽)

자규루의 현판.
▲ 현판 자규루의 현판.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단종임금이 자규루에 올라 지었다는 자규사.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한 글이다.
▲ 자규사 단종임금이 자규루에 올라 지었다는 자규사.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한 글이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통한의 시다.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통했으면 이런 시를 남겼을까? 비가 쏟아지는 자규루에 올라 앞에 보이는 관풍헌을 바라다본다.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은 조선조 태조 7년에 건립이 되었다. 이곳으로 옮겨 온 단종임금은 이듬해인 세조 3년인 1457년 10월 24일, 세조가 금부도사 왕방연을 시켜 내린 사약을 마시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관풍헌은 신라 문무왕 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보덕사의 포교당으로 쓰이고 있다. 매죽루였던 이 정자는 단종임금으로 인해 자규루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후 선조 38년에 큰 홍수로 인해 허물어진 것을, 정조 15년에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규루 안에는 자규루 중수기를 비롯한 게판들이 걸려있다
▲ 게판 자규루 안에는 자규루 중수기를 비롯한 게판들이 걸려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쏟아지는 비는 단종임금의 눈물인지. 관풍헌 앞마당에서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세상사 다 그런 것이라지만, 권력 앞에서는 숙부와 조카도 없는 것인지. 지금의 돌아가는 나라꼴을 생각하니 불현듯 자규루가 생각이 난다.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 찾았던 자규루. 그곳에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권력의 아픔이 있었다.

▲ 통한의 정자 자규루 청령포가 홍수로 인해 침수가 되자, 단종임금은 영월의 관아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관풍헌 앞에 있는 누각은 원래 매죽루였으나, 단종임금이 이 누각에 올라 자규사를 지은 후 자규루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 하주성

관련영상보기



태그:#자규루, #단종, #자규사, #매죽루, #관풍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