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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남부역에서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길이 구부러진 모퉁이에 극동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그 단지 바로 앞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공장이 서있다.

이 허름해 보이는 공장이 바로 (주)유한양행 공장터다.

 부천시 남부역 인근에 위치한 유한양행 공장터
 부천시 남부역 인근에 위치한 유한양행 공장터
ⓒ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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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에 많은 사람들이 부천역으로 전철을 타러 나갈 때마다 이 허름한 공장을 지나치게 되지만 그 범상치 않아보이는 외관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역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그 건물이 유한양행 공장이 설립될 때 지어진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시대였던 1930년대에 유일한 박사가 제약회사를 만들 당시 처음으로 공장을 세웠던 유서깊은 건물이었다.

여기저기 자료를 뒤져보니 이 건물에 대한 내력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이 건물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식명칭은 '구유한양행소사공장(舊柳韓洋行素砂工場)'으로 2001년 부천시 지방문화재자료 101호로 지정되어 부천시장이 관리자로 되어 있었다.

유한양행 공장 관련 내용
종 목: 문화재자료 101호
명 칭: 구유한양행소사공장(舊柳韓洋行素砂工場)
분 류: 기타
수 량: 1동(棟)
지정일: 2001.01.16
소재지: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709-1번지 외
시 대: 일제시대
소유자: 지치문
관리자: 부천시장

한국 최초의 제약주식회사 유한양행

이 건물은 1936년 유일한(1895~1971) 박사가 한국 최초의 제약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 지역(당시 행정구역명칭은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 심곡리 25번지)에 2만여 평을 매입하여 제약실험연구소 및 초자(硝子)공장 등 국내 최초의 근대적 제약공장을 건립한 후 1967년 공장이전 때까지 운영하였던 유한양행 소사공장의 일부이다.

건립 당시 이 건물 외에도 사택 및 집회소 건물인 목조평옥(木造平屋) 2동, 공장용 건물인 목조평옥 1동 등이 함께 건립되었다.

1939년까지 증축공사가 계속되었는데, 공장 증설에 따른 중요 설계는 소사공장 기사장(技師長)인 데이빗 바렛 박사가 주관하였다고 하므로 초자공장도 또한 그의 설계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소규모 업체가 임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관리도 잘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소규모 업체가 임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관리도 잘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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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당시에 초자공장으로 사용되던 것으로 전한다.

소사공장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과 UN군의 병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때에 많은 파괴가 있었다고 하는데, 본 건물은 내화벽돌로 세운 건물이었기 때문에 전화를 입었지만 그 골격을 보존하고 있었다.

1959년 이래 시설낙후로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이 건물은 1967년 초자공장 시설매도 이후 더 이상 공장으로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본 부지 및 건물은 1967년 펄벅(Pearl S Buck, 1892~1973,소설 대지의 작가) 여사에게 기증되어 사회사업 기구인 펄벅재단(펄벅여사의 주도로 소외아동 복지사업을 위해 1964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국제적인 비영리단체)의 구호시설로 사용되었다. 펄벅재단은 이 곳을 발원지로 하여 탄생되었으며, 1967년에 사회의 편견으로 소외당한 혼혈아동을 위한 한국 최초 복지시설인 소사희망원(Sosa Oppotunity Center)이 건립되어 1975년까지 운영되었다.

본 건물은 근대적 공장건축의 초기 사례로서 상공업 발달과 관련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구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변형된 부분도 자료를 통해 원형고증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건물 등기부 등본과 건축물대장을 떼어 보았다. 토지 지번은 있으나 건물은 등기가 되어 있지도 않고 건축물 대장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적 건물인 셈이다.

토지지번이 불규칙하게 얽힌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건물 터에서부터 펄벅 기념관까지 이 일대 전체가 원래는 유한양행 공장터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지금은 소규모 업체 몇 개가 세들어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관리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문화재자료 101호로 등록된 유한양행 공장으로 명칭은 구유한양행소사공장으로 되어있다.
 문화재자료 101호로 등록된 유한양행 공장으로 명칭은 구유한양행소사공장으로 되어있다.
ⓒ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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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사회환원을 내세우고 소유지분을 종업원과 사회에 나눠주었는데,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이런 역사적 건물을 왜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모든 사적을 정부가 다 매입해서 관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할 수 있으면 민간에서 의미있고 유용하게 보존도 하면서 활용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유한양행의 기업규모로 보아 이 건물 매입비용이 과도하다고 생각되지도 않고(종업원 지분 기부, 신주 발행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또 워낙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외관을 보존한 채 내부수리만으로도 사용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기업 사회공헌 연구소 같은 시설로 활용해도...

유한양행이 이 건물을 인수해서, 내부 수리를 통해 '기업 사회공헌연구소' 같은 시설로 이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박물관 겸 자라나는 세대에게 경제교육을 할 수 있는 경제교육장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다면 방치된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더, 예전 펄벅 기념관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느낀 안타까움이 있다.

유한양행 건물 위쪽 극동아파트 뒷쪽에 펄벅 기념관이 있다. 이 유한양행 건물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온갖 쓰레기가 방치되어 버려진 건물이었지만 외관은 멀쩡하고 튼튼했었다. 그런데 복원과정에서 그 건물을 완전히 헐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었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이런 식으로 복원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것은 기념을 위한 건물의 생명을, 그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뺏는 것이 아닐까? 조금 더 번거롭고 시간이 들더라도 그 건물이 그 자리에 있게 된 의미를 온전히 살려내는 방식으로 복원되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김진국 생활정치연구소 이사가 쓴 글입니다. 이기사는 생활정치메타블로그(www.lifepolitic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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