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붕 뚫고 하이킥> 해리가 외치는 '빵꾸똥꾸'에 속 시원~하신 적 있으시죠?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우왕좌왕 지하철 우측통행, 예쁜 여자가 능력 있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빵꾸똥꾸' 외침을 참느라 힘드셨다고요? 2010년 새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빵꾸똥꾸'들을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들이 모아봤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해 속시원히 외쳐드리겠습니다. "야, 이 빵꾸똥꾸야!!!!!!!!!!!" [편집자말]
화장실 청소부들의 2010 새해 소망은 시민들이 '변기 물을 내리는 것'이다. 하루에 한 화장실 당 평균 30명은 대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고 간다.
 화장실 청소부들의 2010 새해 소망은 시민들이 '변기 물을 내리는 것'이다. 하루에 한 화장실 당 평균 30명은 대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고 간다.
ⓒ 엄민

관련사진보기


지난 1월 2일 경기도 한 지하철역 지하 1층 화장실. 이곳을 청소하는 한 아주머니는 새해부터 분주했다. 남녀 화장실에는 각각 변기가 5개씩 설치돼 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 동안 그는 각 남녀 화장실을 10분에 한 번씩 오가며 청소했다.

이 아주머니가 일하는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모두 10시간이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면 그녀는 9시간 동안 평균 108번 정도 화장실을 청소하는 셈이다. 이 아주머니는 왜 이렇게 자주 이곳을 오가는 것일까? 

2010년 새해 소망?... "변기 물 좀 내려주세요!"

지하철 역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는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오가며 변기 물을 내리고 시민들이 뱉고 간 가래, 침 등을 닦는다.
 지하철 역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는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오가며 변기 물을 내리고 시민들이 뱉고 간 가래, 침 등을 닦는다.
ⓒ 엄민

관련사진보기

"올해 새해 소망? 사람들이 볼일 보고 변기 물 좀 내렸으면 좋겠어.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화장실에서) 대소변 보고 물 안 내리는 사람이 30명 정도나 돼. 변기가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물도 안 내리고, 대체 (대소변 본 후) 뚜껑은 왜 덮어 놔? 화장실 변기 뚜껑 열기가 무서워." - 조명희(가명·60)씨

"변기에 물만 안 내리고 가면 다행이게. 왜 변기도 아니고 뚜껑 위에 대소변을 보냐고. 보고나면 역겨워서 (점심도) 못 먹어." - 김이현(가명·57)씨

조명희씨가 화장실을 오가면서 하는 일은 '변기 물 내리기'. 변기 위에 뚜껑이 덮여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부터 하게 된다. 뚜껑을 열었을 때 각종 대소변이나 더러운 오물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지하철과 이곳에 위치한 쇼핑몰의 화장실 8군데를 돌아다녀 보니 대소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9개의 변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각 화장실 당 평균 1번꼴이다.

시민들이 물을 내리지 않은 이유는 '변기가 고장 나서'일까? 기자가 대소변이 남아있는 9개 변기의 물을 내려 본 결과 모두 이상 없이 작동했다. 인터뷰에 응한 아주머니들의 말은 하나같았다.

"우리 새해 소망은 시민들이 변기 물 잘 내리고 가는 거야."

물을 안 내린 변기의 경우 상당수 뚜껑이 닫혀 있었다. 물 내릴 시간은 없고, 뚜껑 닫을 시간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조씨는 "변기 뚜껑 열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또 대소변을 변기 뚜껑 위에 보는 경우도 있고, 벽에 오물을 마구 칠하고 가는 시민도 있다고 한다. 특히 가장 청소하기 더럽고 어려운 일은 모서리 틈에 낀 오물이나 대소변을 치우는 것이다. 이들은 매일 변기 뚜껑 모서리나 벽면 타일 틈 사이에 낀 가래, 침, 대소변 등을 칫솔로 일일이 닦는다.

"가래, 침은 휴지통에... 상식 아닌가요?"

지하철 쇼핑몰의 화장실에 붙어있는 포스터. '가래, 침은 휴지통에 뱉어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덧붙여 시민들이 침을 뱉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침 많이 뱉으면 안 좋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하철 쇼핑몰의 화장실에 붙어있는 포스터. '가래, 침은 휴지통에 뱉어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덧붙여 시민들이 침을 뱉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침 많이 뱉으면 안 좋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엄민

관련사진보기


"가래, 침을 바닥에 뱉는 것까지도 좋아. 그런데 (가래, 침을) 벽에 사방팔방 묻히는 건 이해가 안 돼." - 김이현씨

"낙서? 너무 많아. 그냥 낙서도 아니고 남자랑 여자랑 그런(음란한) 낙서들 있잖아. 그거 때문에 약물칠(전용 클리너)을 매일 해야 해. 어떤 경우는 모든 벽면에다 지도 같은 큰 그림 그려놓는 경우도 있어." - 조명희씨

김씨는 벽면에 가래나 침을 뱉어놓고 가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한 번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김씨 앞에서 침을 아무데나 뱉았다. 김씨는 '그러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지만, 그들에게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는 시민들로부터 자주 욕을 듣는다. 특히 남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여자가 왜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느냐'며 비난하는 시민들이 자주 있기 때문에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욕하는 시민을 만나면 아무 말없이 슬그머니 화장실을 나온다. 그리고 그에게 욕을 한 시민이 화장실을 나오면 다시 들어가 묵묵히 청소를 한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낙서를 지우는 전용 약물(클리너)은 필수품이다. 조씨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사방에 유성 사인펜으로 그려진 대형 낙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음란한 내용의 낙서가 사방에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낙서를 닦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아예 낙서 지우는 일이 화장실 점검 수칙에 있다. 하루에 4번 환경 담당 직원이 청결도를 검사하러 온다. 그래서 그들은 직원이 검사를 하러 오기 전에 셀 수 없이 화장실을 오가며 낙서를 지운다.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화장실 천장이 누런 이유

화장실 천장을 걸레로 닦은 부분이 하얗다. 반면 아직 걸레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은 누렇다. 이렇게 화장실 벽면이 누런 이유는 담배를 피우는 시민이 많아 화장실 천장이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 걸레질 한 번 했을 뿐인데... 화장실 천장을 걸레로 닦은 부분이 하얗다. 반면 아직 걸레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은 누렇다. 이렇게 화장실 벽면이 누런 이유는 담배를 피우는 시민이 많아 화장실 천장이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 엄민

관련사진보기


"화장실 천장, 잘 보면 누렇지? 왜 이런 줄 알아? 담배 연기가 벽면에 배여서 그래." - 이정하(가명·62)씨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전체를) 락스칠을 하거든. 그러면 담배 때문에 청소하고 난 물이 연탄물 같아." - 김이현씨

"담뱃불을 변기 뚜껑에 지지고 가면 그걸 어떻게 닦나? 닦아도 닦이지 않는데…." - 조명희씨

지하철 3층에 위치한 한 여자 화장실엔 입구까지 포함해 금연 포스터만 5개가 붙어 있다. 화장실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많이 피워 취한 조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로 담배 연기가 사방에 배어 있기 때문에 이 아주머니들은 일주일에 1번씩은 전체를 소독하고 닦는다. 그때마다 담배연기가 배인 물이 천장을 흘러내린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연탄물'로 불린다.

담배를 피우고 변기 뚜껑 위에 담뱃불을 끄고 갈 때도 있다. 그 경우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변기 뚜껑 위에 그대로 남는다. 워낙 그런 경우가 자주 있는 데다 부서지지 않으면 교체하지 않는 게 방침이기 때문에 변기 뚜껑을 자주 바꿀 수 없다. 담배를 화장실에서 피울 경우 경범죄처벌법에 의거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고발 조치를 할 수 있으나 그런 법은 소용이 없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매번 감시할 수도 없고, 수적으로 워낙 많기 때문이다.

'화장실 선진화', 시민의식부터 키워야

화장실 문과 벽 낙서 제거 유무를 하루에 4번 체크한다. 청소 점검 항목에 낙서유무가 있을 정도로 화장실 낙서는 흔하다.
 화장실 문과 벽 낙서 제거 유무를 하루에 4번 체크한다. 청소 점검 항목에 낙서유무가 있을 정도로 화장실 낙서는 흔하다.
ⓒ 엄민

관련사진보기


정부는 '한국의 화장실이 더럽다'는 외국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2002년부터 화장실 선진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화장실 개선 정책을 펼쳐왔다. 올해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도 11회를 맞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08년 '화장실 선진화 선포식'까지 했다. 한 예로 지난해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수상한 문경시의 경우, 새재도립공원을 리모델링하면서 지역의 특징을 살려 테마형 화장실을 만들었다. 여성용, 장애인용 화장실에는 특별히 태양열 센서, 은나노 항균처리 손잡이, LED조명 등 화장실의 아름다움을 위해 각종 시설을 들여놓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첫째 시민들이 변기 물 잘 내리고, 둘째 가래나 침을 아무데나 뱉지 않고, 셋째 휴지나 이물질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 조명희씨의 새해소망이다. 그의 말이 오늘날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민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2010년에 우리가 이뤄야 할 것은 '화장실 시설의 선진화'가 아니라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민의식의 선진화'가 아닐까?


태그:#화장실 청소부 , #변기물 , #화장실 선진화, #시민의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