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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자전에세이 책표지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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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정래 작가의 저전 에세이 <황홀한 글 감옥>(시사IN북 펴냄)을 읽느라 며칠 동안 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틀은 책 읽기에, 또 하루 한 나절은 '초서'로 몇 시간을 보냈다. 조정래 하면 가장 먼저 '태백산맥'이 떠오른다. <태백산맥>을 읽은 지가 언제였더라.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15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그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을 한 권 한 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태백산맥에 이어서 나온 <아리랑>도 읽었지만 태백산맥이 주었던 감동까지 미치진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태백산맥'이 주었던 감동의 여운이 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조정래 작가를 <황홀한 글 감옥>을 통해 다시 만났다. 이번에 나온 <황홀한 글 감옥>은 뜻밖에도 조정래 작가 생활 40년, 자전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자전적 이야기이며 작가는 자전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정래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글 속에 녹아있음을 보게 되었다. 아들, 며느리에게 자신의 책을 필사하도록 만들었던 작가는 매일 매일 성실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고 했던가. 매일 16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글쓰기의 노동시간을 바쳤고, 한 번 붙잡은 것은 끝까지 맹렬하고 미련하도록 밀어붙이는 그 열정과 치열함에 기가 꺾이지만 도전이 된다.

자고로 작가란 이래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먹고, 자고, 쓰고...'그렇게 살아온 작가, 스스로 황홀한 글 감옥에 갇혀 살았던 작가, 자기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작가, 그렇게 해서 그 많은 대하소설을 한편도 아니고 세편이나 쓸 수 있었던 것이리라.

텔레비전 시대를 넘어 인터넷 시대에 주5일 근무 이후, 국민의 대다수가 주말 시간을 텔레비전과 인터넷, 핸드폰 사용에 3-4시간, 책 읽는 시간은 신문을 포함해서 7~8분인 이 시대에 문자를 통해 감동을 주기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그들을 감동시키려면 그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20년 동안 글 감옥에 갇혀있었던 작가.

'먹고, 자고, 쓰고'의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던 작가의 치열함, 작가의 이런 것만 보아도 그의 소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정신으로 소설을 썼다면 어찌 감동하지 않겠는가. 작가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년씩 계속해서 글에 몰두하다 보니 몸이 이상하게 변하는 경험도 했다고 말한다.

전선에 저릿저릿 전기가 통하는 현상이 나타나 문고리 같은 쇠붙이도, 아내의 손을 잡을 수도 없었고 전화통에도 시퍼렇게 불이 붙으면서 전기가 끊기는 경험(현대과학이 입증한 바에 따르면 예술가가 작품에 몰두해 있을 때는 뇌파가 보통사람의 다섯 배까지 발산된다고)을 했다는 작가, 오직 글을 쓰는데 바쳐온 삶이었다.

"저는 하고자 하는 일을 끝내 다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둘러보니 마흔의 나이가 예순이 되어 있고, 그 숱 많던 머리도 마구 빠져 헤싱한 가을 숲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뿌듯하고 떳떳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일에 대해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고자 했던 일을 다 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 얼마나 될까. <황홀한 글 감옥>은 조정래 작가가 1970년에 등단했고 문학인생 40년이 되어 그동안 작품을 쓰느라고 하지 못했던 것, 지난 20여 년 동안 꽤 많은 강연을 다녔지만 독자들에게 충분히 답해주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단다.

마침 참언론을 위해 어깨동무하고 나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시사IN> 인턴기자 희망자들이 보낸 질문 5백여 가지 중에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을 간추려 이 책에 수록한 것이 84가지의 질문과 답변이다. 언젠가 읽은 에세이 <나홀로 선 나무>에 실린 내용도 일부 실려 있어 반가웠다. 84가지의 질문은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문학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유익하리라 본다.

이 책에서 조정래의 작가론과 작품론 인생론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소설쓰기에 관한 작가의 조언과 글쓰기 인생이었던 그의 진솔하고 치열했던 삶을 만나면서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정신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소설은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옛날 왕권이 신성시되던 봉건 시대에 왕의 다스림과 그에 따른 이야기 외에는 모두가 하찮고 잡스러운 이야기로 무시되었을 때 신분상의 낮은 백성들의 희로애락을 적은 이야기책은 의당 소설(小說)로 불릴 수밖에 없었지만, 세상은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변혁의 조류를 타고 대중인식이 확장되고 혁명의 파도를 타고 민주의식이 신장되어 나갈 때 왕권의 포악성과 지배계층의 비이간적 횡포 같은 것을 정면으로 묘사하고 비판함으로써 대중을 이끌고 역사를 변혁하는 '큰 이야기'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라고 강조하며 소설가의 위상을 높인다. 소설가의 산소역할의 산소란 '진실'이다. '사회적 진실, 역사적 진실, 인간적 진실을 옹호하고 육성하고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산소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최소 5백 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소설을 쓰려고 펜을 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5백 권이란, "세계문학전집 1백권, 한국문학전집 1백권, 중,단편 소설집 1백권, 시집 1백권, 기타 역사, 사회학 서적 1백권'이란다. 그것도 한차례씩만 읽고 말 것이 아니라 5년을 주기로 되풀이해서 읽고 그때그때 발간되는 신간을 골라 읽는 꾸준한 독서생활과 글쓰기의 병행, 그 보다 더 좋을 것이 없다고 부연한다.

또한 책 한 권 읽는 데, 이틀 걸렸으면 이틀을, 사흘 걸렸으면 사흘을 생각하는 일에 바치라고 조언한다. 또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당신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 난 뒤에 아무리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아, 잘 썼다. 그치만 별 것 아니네. 나도 딴 방법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객기든, 만용이든, 오만이든, 오기든 좋은 작품을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 그것이 당신의 영토이며 당신이 차지할 수 있는 빈자리'라고 말한다. 수백, 수천편의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그 '빈자리'는 당신의 의식 속에 꼭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작가되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죽고 가위눌려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작가는 역사를 몰라서는 작품을 쓸 수 없지만, 역사가는 문학을 몰라도 역사연구를 할 수 있다"면서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이 재미있는 오락거리이고 흥미로운 잡다한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은 소설의 여러 기능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며 작가의 역사의식, 사회의식을 일깨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 시대와 더불어 흑인 노예의 삶을 포괄하는 미국을 이해하게 되고 <고요한 돈강>은 오래된 역사가 무너지고 새 역사가 잉태되는 러시아의 격랑시대와 함께 거대한 대륙에 뿌리내린 코사크 족의 삶에 깊이 감동하게 되듯, <레미제라블>에서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인간성 옹호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를 보게 되는 것처럼, 세계적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 거의가 그 민족과 그 땅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한다.

84가지 질문과 답변 속에는 소설가의 싹수가 보였던 어린 시절의 조정래가 있고, 문청시절과 시인 김초혜와의 연애와 결혼 생활 등도 따뜻하게 실렸다. 또한 글쓰기, 읽기 등에 대한 답변, 그가 쓴 대하소설들을 쓴 배경과 그 소설들을 쓸 때 겪었던 힘겨웠던 일화들도 만나볼 수 있다. 치열하게 행복하게 글 감옥에 스스로 가두고 살아온 작가생활 40년... 그는 대하소설 세 편을 써 낸다는 것에 대해 그야말로 추호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저는 어리석을 만큼 제 자신을 믿는 데가 있고, 경쟁이 아닌 제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실패가 없다는 확신을 저는 단순할 만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까지 그렇게 제 자신을 믿어도 좋을 만큼 빈틈없이 살아왔던 것이고, 한 번 세운 계획에 대해서는 늘 초과달성을 해왔던 것입니다."(p242)

"막장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광부만이 석탄을 캘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글을 쓰고자 한다면 당신은 언제나 막장에 서 있는 광부여야 합니다. 40년, 50년 글을 쓰는 작가도 한 문장을 쓸 때마다 한 번 곡괭이질 하는 광부의 노동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과연, 그래서 이렇게 쓸 수 있었구나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어찌 이런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소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누가 끌지 않아도 소설이 독자를 꾀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것이니까 말이다.

1970년대에 등단해 문학인생 40년이 된 조정래 작가는 오늘이 이다지도 빨리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태백산맥을 읽었던 것도 생각해보니 참 오래되었다. 세월이 참으로 빨라 날아가는 듯하다. 작가 생활 40년을 회고하면서 펴낸 작가의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 감옥>에서 독자들이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것들을 알고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흘러간 40년이 아니기에, 치열하게 작가의 사명을 다해 살아온 삶이기에 더욱 깊은 감동과 유익을 안겨 주리라 생각된다. 문득 그의 소설들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저는 하고자 하는 일을 끝내 다 마쳤습니다...." 그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 하다. 그래, 작가 생활 40년의 삶이 녹아 있는 '황홀한 글 감옥'을 만나고 나서 읽는 그의 소설은 더 새롭게, 의미 깊게 다가올 것 같다. 작가가 소개한 '카잘스'이야기를 인용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카잘스는 세계가 인정하는 천재 첼리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천재에 어울리지 않게 '연습벌레'였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세 시간씩 따로 연습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따로'란 교향악단이 합동연습을 하는 날에도 혼자 또 연습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지독한 끈질김은 여든을 넘기고 아흔을 넘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그 노력이 당연히 화제가 됐습니다. "선생님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정상입니다. 그리고 연세까지 아흔을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매일 세 시간씩 연습을 하시는 겁니까?" 기자가 물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카잘스의 나직한 대답이었습니다."(p95)

덧붙이는 글 | 책: <황홀한 글감옥>
저자: 조정래/출판사: 시사 IN
분류:자전 에세이
값:12,000원/2009.9.30 발행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시사IN북(2009)


태그:#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자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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