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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0년간 한국인의 개인 저축률 동향
▲ 개인 순저축률 추이 최근 30년간 한국인의 개인 저축률 동향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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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저성장,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인의 돈에 대한 관점과 생각은 이전과 판이하게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가 '저축에 대한 태도'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무턱대고 돈만 모으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따라서 적극적인 투자 활동을 통해 자산을 증식해 가지 않으면 불안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한국인의 개인 저축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10억 만들기 프로젝트, 부자아빠 신드롬, 주식·펀드·경매·부동산을 넘나드는 재테크 열풍 등이 개인 및 가계 저축률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고 놀던 베짱이가 겨울에 찾아오지 않는 것을 궁금하게 여긴 개미가 베짱이에게 가보니, 취입한 음반이 '대박'이 터져서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서 회자되던 것도 벌써 옛말이 되었을 만큼, 개미의 삶은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재량소득을 놓고 볼 때, 단순히 저축만으로도 충분히 미래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조차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가계 재무구조의 건강을 훼손시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소득은 많은데 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며, 재무상담을 신청한 맞벌이 가정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남편은 40대 초반의 대기업 건설회사 차장, 아내는 30대 후반의 공무원으로 이 가정의 연간 부부합산소득은 1억 원이 넘었다. 나이와 소득을 감안할 때, 꾸준히 저축만 했더라도 몇 억의 자산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이었는데 놀랍게도 순자산이 1억 원에 불과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잘못된 소비습관이었다. 두 사람 모두 미혼 시절부터 '필요한 건 일단 사고 본다는 소비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 습관은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또한 급여통장을 각자 관리하고 있다 보니,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이 소비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쓰고 남으면 좋고, 남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무계획성의 전형이라고 할까? 당연히 돈이 모일 리가 없었다.

두 번째 원인은 남편의 잘못된 투자행태였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탓에 부동산 투자정보나 투자 성공사례를 많이 접하다 보니, 부동산에 완전히 '꽂혀' 있는 상태여서 오직 투자이익만을 생각하고 무리한 대출을 해 투자를 실행하고 있었다. 부동산 보유비용(등록·취득세 등 각종 세금, 부대비용, 대출이자 등)과 투자 기대수익(시중은행 금리)을 비교해 보았더니 연간 1000만 원 이상 차이가 났다.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매년 1000만 원 이상 오르면 본전이고 그 이상 올라야 수익이 나는 구조였는데, 투자수익률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가정은 소득이 높기 때문에 굳이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아도 원하는 미래를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월 300만 원씩만 저축한다면 1년에 4000만 원씩 자산을 늘릴 수 있으므로 저축만으로도 상당한 자산을 모을 수 있었지만, 적금 금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높은 수준의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잘못된 소비습관과 매몰된 투자행태로 재무관리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출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의 소비에 치중하는 경향이 높고, 그로 인해 근시안적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저축을 어려워하는 것일까? (현재 한국인들의 정기적금 유지율은 1년 만기가 67%, 3년 만기가 29%, 5년 만기는 11%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하면, 목적 의식과 판단 기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모아야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얼마를 저축해야 하는지 그래서 현재 어느 정도로 소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세우는 일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그런 계획(인생주기에 따른 합리적 소비, 지출 계획서)을 깊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저축 무시하는 투자만능주의, 당신 가족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

생애주기별 주요 재무 관심사항
▲ 인생곡선(Life cycle) & 연령별 재무 관심사항 생애주기별 주요 재무 관심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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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당장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감각적인 소비가 이루어지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신용카드를 꺼낸다. 사전에 예산 계획이 서 있었다면 미루거나 포기했을 구매행위를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신용카드 미소지자들이 신용카드 사용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더 많은 저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현실적인 미래 재무계획을 세우고 예정된 소비를 하는 것이 가계 재정을 튼실하게 해준다는 증거다. 특정한 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간의 동기부여와 단순한 합의(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저축으로 돌리자)만으로도 종업원들의 저축률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저축 결정에 있어 목표와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나타내는 사례다.

저축을 할 것인가, 투자를 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순한 재테크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다. 지금 당신에게 총 100개의 사과가 있다고 하자. 사과는 우리 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주식(主食)이다. 만일 당신이 집안의 가장이라면, 매달 일정량의 사과를 가지고 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는 창고 안의 사과를 꺼내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창고 문을 여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써야 할 사과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져오는 사과 숫자를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만만치 않다. 초조해진 당신은 창고 속의 사과를 불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어느 날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이기면 사과를 몇 배로 불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불과 몇 개의 사과만을 비상용으로 남기고 이 게임에 사과 전부를 걸어보기로 결심한다.

경기장에는 단지 사과 몇 개가 아니라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사과를 걸고 게임을 하는 큰손들이 즐비하다. 당신은 경기장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경기를 하지만 번번히 패한다.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다. C급 정보를 가지고 A급 정보를 가진 상대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과의 대부분을 잃고 망연자실한 당신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내 머릿속에는 단지 사과를 불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 처음에 각각의 사과를
왜 다른 바구니에 따로 담았는가를 잊어버렸다. 자산 증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사과들이 필요한 재무목표대로 올바로 쓰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모두 같은 사과였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쓰임새는 달랐던 것인데, 왜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까?"

그렇다. 당신은 가용할 수 있는 자산의 대부분을 날림으로써 가정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저축이란 단지 돈을 모으기 위함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미래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 아닌가? 당신은 더 많은 재산을 만들겠다는 욕심 때문에, 만일 이 게임에서 실패했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를 망각했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을 잘 지키는 것이 항상 첫 번째라는 생각을 먼저 했어야 했다. 저축과 투자는 단지 수익률의 차이가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했다. 당신은 금융공학적 측면에서 저축과 투자를 구분했을지 모르지만, 저축이 가지는 본래 의미와 목적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저축은 시간과 이율로 구성된 2차 방정식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얼마의 금리로 축적해 가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저축의 성패는 목표 금액(종잣돈)을 만들 때까지 밀고 나가는 힘에 달려 있다. 한편, 투자는 수익률의 함수다.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돈을 버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는 상승하기도 하고 하락하기도 한다. 따라서 투자는 근본적으로 가격변동성의 위험을 안고 있다. 변동성 그 자체가 투자의 본질적 속성이다. 변동성을 원천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가격변동성을 줄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머니 게임(Money game)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비전문가가 위험을 줄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만일 지금 당신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자금 운용 과정에서 범했던 가장 큰 실수는 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 지켜야 할 돈(守錢)의 크기를 먼저 정한 다음, 지출 흐름을 통제하기 바란다. 재무설계에서는 이 방법을 '통장 쪼개기'라고 부른다. 현금이 유입되는 통로는 하나지만, 유출되는 통로는 쓰임새에 맞게 분리, 운용하는 방식이다. 돈의 쓰임새가 원천적으로 강제되기 때문에 새는 돈을 방지할 수 있고, 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

부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고, 저축을 경시하는 태도, 투자만능주의,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 잘못된 소비습관 등은 가정경제의 건강과 미래를 해치는 요인들이다. 저축은 미래의 지출을 위하여 현재의 소비를 포기하는 행위이며, 소비 지출에 대한 일종의 자기 통제 수단이다. 생애주기 가설(사람들은 남은 평생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소비를 결정한다는 이론)에 입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득 발생구간이 줄어들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생각할 때, 미래 지출을 위해 저축이라는 수단을 강제하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행한 미래뿐이다.



태그:#저축, #미래계획, #가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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